화북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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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마을. 제주시 화북1동 서쪽 바닷가에 있는 자연 포구 이름이자 자연 마을이다. 이 마을은 제주4·3사건 때 폐동되었다. 고놀개라고 부르다가 소리가 고늘개로 바뀌면서 곤을개로 인식하여 곤을포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차자표기로 고로포로, 일제 강점기부터 곤을포가 되었으며, 마을 이름도 고로촌 또는 고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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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풍속(風俗)·풍광(風光)·사적(史蹟) 등을 둘러보는 유람 활동. 제주시는 탐라의 역사 발상지일 뿐 아니라 제주도의 역대수부로서 행정·산업·교육·문화의 중심지여서 독특한 인문적 관광자원을 간직하고 있다. 제주시 지역은 제주도의 관문이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제주시를 통해 방문하게 된다. 제주 방문 관광객의 경우 1971년도에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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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돌이나 쇠붙이에 새겨 넣은 글씨나 그림. 금석에 새겨진 문자나 도형은 쉽사리 마모되지 않고 오랜 세월 견뎌내기 때문에 내구성이 높아 과거의 사실을 고증하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금석문은 크게 금문(金文)과 석문(石文)으로 구분된다. 금문은 금속제의 용기, 악기, 무기, 화폐, 인장(印章), 경감(鏡鑑), 범종(梵鐘), 도량형 등에 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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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었던 포구.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금돈지와 엉물머릿개를 두고 이른 말이다. 화북포(禾北浦)는 화북촌(禾北村)이라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이다. 화북촌(禾北村)의 포구는 연디밋코지와 남당머리콪 사이 후미진 곳에 있다. 썰물 때 모습을 드러내는 ‘지방여’ 와 ‘여’는 어느 정도 북풍을 막아 준다. 그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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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1270년(원종 11)년 고려 군사들이 남하하는 삼별초 군사들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같은 해 삼별초 선발대가 들어와 제주에 있던 고려군 수비대를 물리치고 여몽 연합군을 막기 위해 다시 정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 성으로 활용되어 1845년(헌종 11)까지 증축, 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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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목을 맡아 다스린 정3품 외직 문관. 제주 목사는 형옥·소송의 처리, 부세의 징수, 군마(軍馬)의 고찰, 왜구의 방비 등 제주 지방에 대한 모든 행정을 집행하였던 정3품 당상관에 해당한 관직이었다. 제주도에 목사를 파견한 것은 고려 1295년(충렬왕 21)부터 간헐적으로 이루어져왔으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제주목의 설치는 1397년(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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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 1동·화북 2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제주시 동부권의 생활 중심지로서 예로부터 제주의 관문인 화북포구를 통해 외부와의 문물 교류가 활발하였다. 최근에는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다. 옛 이름은 벨돗개 혹은 벳뒷개이다. 문헌상 화북(禾北)이라는 명칭은 17세기 중반부터 사용되었으나 이보다 먼저 별도(別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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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전기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한 9개 진(鎭)의 외곽을 빙 둘러서 축조한 성곽 중 조천진에 축조한 성곽. 화북포는 조선 시대 제주 지역의 대표적인 수전소로 방어의 요새였다. 이원진의 『탐라지』에 의하면 화북포에는 판옥전선이 중부, 좌부, 우부에 각각 1척씩 있다. 또한 비상 양곡이 6석, 격군이 180명, 사포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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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진영 터. 화북진지는 조선 시대 제주도의 군사적 방어 시설인 화북진이 설치되어 있던 자리이다. 진(鎭)은 지방의 군사를 관리하던 지방 관제의 하나로 진영의 줄임말이다. 화북진의 서북쪽에는 제주목사 김정이 방파제를 쌓았다는 화북포구와 김정의 공적비가 있으며, 방파제와 연접한 공지에는 해신에게 바다에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