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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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자귓벵듸 또는 당오롬과 높구메다. 고산은 높구메오롬으로 오늘날 수월봉의 한자 차자 표기이다. 1300년(고려 충렬왕 26)에 차귀현촌의 설치로 거주가 시작되었으며, 왜구의 침입이 심하여 차귀진성을 축조하였다. 1837년 두모·금등 지역에서 이주민들이 들어와 신두모리라 불리다가 1861년 당산봉을 근거로 당산리·차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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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자귓벵듸 또는 당오롬과 높구메다. 고산은 높구메오롬, 오늘날 수월봉의 한자 차자 표기이다. . 고려 말에 성을 쌓고 말을 기르던 곳이었으며, 1440년(세종 21)에 큰 성을 쌓고 성내에는 군기고까지 마련하였던 중요한 요새지였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차귀진이 있었으므로 차귀진·차귀소·차귀 또는 두모리에서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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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1,950m]은 남한 최고봉으로 백두산과 더불어 국토를 잇는 상징적인 산이다. 한라산은 예부터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으로 백록을 탄 신선이 사는 영산이라 알려져 왔고, 불로초를 찾아 영주산을 찾았다는 서불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또한 한라산의 여신 설문대할망이 솥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 제주인의 풍부한 상상력과 영감의 보고이다. 또한 한라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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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방어 요충지에 설치된 진(鎭). 방호소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침입이 예상되는 요충지에 설치하여 방호 임무를 수행하던 군대의 경계 감시소이다. 각종 읍지나 『제주계록』에는 ‘진(鎭)’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방호소에 관해서는 『세종실록』에 “도내 군인이 주둔하는 곳은 본주 동쪽은 김녕·조천관, 서쪽은 도근천·애월·명월이며, 대정현 서쪽은 차귀, 동쪽은 동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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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 지역에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옛 일본 해적.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우리나라와 중국 연안에서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인 해적을 총칭한다. 흔히 고려 후기까지의 왜구를 전기 왜구, 그 이후의 왜구를 후기 왜구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기 왜구가 우리나라를 주요 약탈 대상으로 삼았다면, 후기 왜구는 약탈의 대상지가 중국과 동남아 지역으로 확대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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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지삿개와 벗개다. 지삿개는 기와를 구웠던 곳이라는 데서 붙여졌다고 하나, 벗개는 뜻이 확실하지 않다. 용수리는 19세기 후반 붙여진 좋은 물이 많이 나는 곳 또는 용당리에 있는 용못의 한자어 표기에서 왔다. 1418년(태종 18)에 왜적이 차귀 등지에 침입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거주는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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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돌담은 제주 선민들의 생존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돌담은 제주도를 먼저 살다가 떠난 제주 선민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잘 활용하라’는 유언장(遺言狀)과도 같은 존재로서,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의미체라 할 수 있다. 또한 돌담은 제주도를 상징하는 미학적(美學的) 요소이다. 제주도를 상징하는 다른 요소들, 즉 한라산과 오름, 청정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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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예의판서 한리(韓理)이다. 아들은 한서룡(韓瑞龍)·한서봉(韓瑞鳳)·한서구(韓瑞龜) 등 3명이다. 1437년(세종 19) 2월 최해산(崔海山)의 후임으로 제주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로 부임하기 전, 의정부에서 제주 방어는 중요하므로 봉화·척후(斥候)를 엄하게 하고 군대를 정비하여 왜선이 정박할 요해처를 잘 방어하라고 지시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