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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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5월 제주도 야체이카 책임자 강창보를 친구인 강병희(姜炳喜)가 일본 오사카로 탈출시킨 사건. 강창보는 신인회 간부이자 국제 공산당의 승인을 받은 조선공산당 당원이었는데, 제주청년연맹 활동을 하다가 1928년 8월 제4차 조선공산당 검거 때 김택수·송종현과 함께 체포되었다. 1931년 1월 4일 석방되어 제주도로 돌아온 강창보는 제주청년동맹이 직면하고 있던 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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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제주도에서 구우면을 중심으로 서당 훈장들이 격문을 붙이다 발각된 사건. 1919년 3월 21일부터 3월 24일까지 신좌면 조천리(현재의 조천읍 조천리)에서 일어났던 독립 만세 시위는 제주도 전역에 독립 운동의 의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 운동에 영향을 받은 구우면 저지리(현재의 한경면 저지리)의 서당 훈장 박세현, 낙천리(현재의 한경면 낙천리)의 김여석·조무빈, 신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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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제주공립보통학교(제주북초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제주공립농업학교(제주관광산업고등학교의 전신)를 다녔다. 문제가 된 제주공립농업학교의 부당한 졸업사정사건의 발단은 교내 행사에서 일황의 칙어 낭독을 거부한 김원요(金源堯)와 일제의 황민화 교육과 민족적 차별에 대해 모멸감과 저항심을 갖고 있던 양두옥(梁斗玉)[1914~1966]과 신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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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김해. 자는 선구(善驅), 호는 양오(養吾). 김진호(金振鎬)의 4남이며, 김주호(金周鎬)에게 입양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제주시 조천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차례 걸쳐 연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지역도 조천에서 함덕·신흥·신촌 등으로 확대되었다. 최초의 거사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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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제주도에서 독립군 육성 군자금을 모금하여 상해 임시정부로 송금한 사건. 1919년에 상해 임시정부가 국내에 군자금을 모금하여 줄 것을 요청하자 제주 지역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군자금을 모아 송금하려는 목적이었다. 1919년에 상해 임시정부는 독립군 육성 군자금으로 5천 원을 모금하여 줄 것을 국내에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독립희생회의 연락원이었던 김창규는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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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녀 항쟁을 주도한 해녀.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보통학교 야학부에서 공부하였다. 1928년 제주도 해녀조합 산하 조직인 구좌면 해녀조합 대표로 선임되어 해녀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해녀조합은 어용화되어 해녀조합을 통한 일제의 수탈이 심하였다. 1931년 해녀조합이 하도리 해녀들이 수확한 감태와 전복 값을 터무니없이 강제로 싸게 매기려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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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에 있는 제주 전역의 사법과 재판 업무를 총괄하는 광주고등법원 및 대법원 산하 소속 사법 기관. 1895년(고종 32) 3월 20일 법률 제1호인 「재판소구성법」은 행정권으로부터 분리된 재판소의 설치를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재판소의 종류는 지방재판소, 한성재판소 및 부산 기타 개항장재판소, 순회재판소, 고등재판소, 특별법원의 5종으로 조직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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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어려서 서당을 다녔고 19세 때 서울로 유학하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설립한 기독교계 경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04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귀향하였고 1906년 23세 때 결혼하였다. 경신학교 재학 때 접한 기독교 신앙이 깊어 1908년(순종 2) 제주에 온 목사 이기풍(李基豊)과 신자 김재원·홍순흥·김행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