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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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입동은 제주시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제주항 주변과 동문로터리 동북쪽, 사라봉 서쪽 일대를 가리킨다. 2000년 복원된 산지천을 서쪽 경계로, 사라봉을 동쪽 경계로 하고 북쪽에는 제주항이 자리 잡고 있고 남쪽으로는 일도동이 있다. 건입동은 영주 십경 중 사봉 낙조(紗峯落照)와 산포조어(山浦釣魚)의 아름다움을 지닌 마을이다. 사봉 낙조는 곧 사라봉에 올라 저녁놀이 물든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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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때부터 조선 초까지 제주 지역의 토착 세력 가운데 최상위 토호가 역임했던 관직. 통일신라 때 제주의 고후(高厚)와 고청(高淸), 그리고 셋째가 바다를 건너와서 왕에게 조공을 바치자 왕은 고후에게 성주(星主), 고청에게 왕자(王子), 셋째에게는 도내(徒內)라 하는 관직을 주었는바, 성주라는 명칭은 통일신라 때부터 비롯되었다.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관직으로, 외관의 역할을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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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역사. 제주도는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한반도 남쪽을 거쳐 일본 큐슈[九州]로 이어지는 해상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 지역을 왕래하던 선박들의 중도 기항지가 되었던 것이다. 제주도의 과거 유물·유적의 분포지가 대부분 제주도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중국이나 한반도로부터의 선진문물의 유입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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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내지 조선 전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의 삼성신화(三姓神話)가 수록된 문헌. 『영주지(瀛洲志)』의 저자는 미상이나 유창한 문장으로 보아 한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의 저작임을 알 수 있으며 사서의 기록과 부합되는 구체적인 사실도 있기 때문에 『영주지』가 다만 전설을 들어서 기술하였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피의(皮衣) 육식(肉食)과 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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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때부터 조선 초까지 제주 지역의 토착 세력 가운데 차상위 토호가 역임했던 관직. 통일신라 때 제주의 고후(高厚)와 고청(高淸), 그리고 셋째가 바다를 건너와서 왕에게 조공을 바치자 왕은 고후에게 성주(星主), 고청에게 왕자(王子), 셋째에게는 도내(徒內)라 하는 관직을 주었는바, 왕자라는 명칭은 통일신라 때부터 비롯되었다.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관직으로, 성주와 더불어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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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제주의 옛 이름은 탐라(耽羅)·탁라(乇羅)·탐모라(耽毛羅)·동영주(東瀛洲)이다. 1295년(충렬왕 21) 제주의 행정단위는 제주목으로 개편되었다. 목(牧)은 경(京)과 도호부의 격을 지닌 행정단위와 더불어 계수관(界首官) 지역으로 일컬어졌다. 계수관 지역은 최상의 독자적·개별적 행정단위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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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이전 쌓았을 것으로 보이는 토석단(土石壇)의 터 칠성단(七星壇) 월대(月臺)는 삼도리(三徒里) 지역이 제주성 내에 자리 잡은 5~7세기 후반 무렵에 이르러 세워졌다고 한다. 칠성단 월대 터는 전설에 의하면, 고(高)·양(良)·부(夫) 등의 삼성(三姓) 시조가 일도·이도·삼도라 일컫는 세 개 지역의 땅을 나누어 차지할 때 북두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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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말~10세기 백제·중국·일본 등과의 국제 교역을 하면서 ‘국(國)’을 형성 기반으로 하였던 제주의 옛 정치체. 탐라국은 ‘섬나라’라는 의미로서, 섬에 위치하여 오랫동안 독자적인 국가 형태로 존속하였던 국가이다. 탐라국에 관한 기록은 『구당서(舊唐書)』 「유인궤전(劉仁軌傳)」에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이미 『후한서(後漢書)』에는 섭라(涉羅), 『북사(北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