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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토지 조사 사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1553
한자 濟州土地調査事業
영어음역 Jeju Toji Josa Saeop
영어의미역 Jeju Cadastral Survey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동전

[정의]

1913년부터 1917년까지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시행한 대규모의 국토 조사 사업.

[개설]

제주도에서의 토지 조사 사업은 1913년부터 2년 동안에 걸쳐 토지 소유주로부터 신고를 받아 처리하고 불복 신고(不服申告)를 받아 재결(裁決) 결과를 처리하였으며 1917년 일제의 강권으로 완료되었다. 제주 지역에서는 세부 측량(細部測量)이란 명칭으로 통용하여 왔다.

[목적]

일제는 우리나라 전역에 대해 식민지 수탈적 토지 제도를 확립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었으며 그 첫 착상이 우리나라를 강점한 직후부터 1918년까지 실시한 토지 조사 사업이었다.

이는 식민지 수탈이란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실시되는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다. 토지 조사를 실시하는 목적은 전토(田土)의 경계와 면적 및 소유 관계를 정확히 조사하여 토지에 대한 지세 수입을 증대, 확충하기 위해서였다.

토지 조사 사업 완료 이후 조선 총독부가 소유한 토지는 동양 척식 주식회사라는 수탈 기관의 활동 무대가 되어 한국인을 소작인으로 이용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를 수탈·착취하기 시작하였다.

[내용]

제주도의 토지 조사 사업은 전 지역을 대상으로 총독부에서 실시되는 내용과 방법이 동일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일부 지역으로서 실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선 총독부의 고시에 충실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 총독부 『관보』에 의하면 제주 전 지역의 토지 조사 사업은 1913년부터 실시하여 1917년에 완료된 듯하다. 당시 행정 구역은 제주군·정의군·대정군 등 삼군 체제에서 1915년 이후 제주도라는 단일군으로 변경되었다.

처음 총독부 고시 제243호[1913.8.15]에 의하면 토지를 소유한 자는 소위 토지 조사령 시행규칙 제1조에 의해 신고서를 작성하여 정의군은 1913년 8월 16일부터 1914년 5월 15일까지, 대정군은 1913년 8월 16일부터 1914년 4월 30일까지 신고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제주군에 대해서는 1914년 3월 30일 고시에 의해 1913년 7월 1일부터 1914년 8월 31일까지로 그 기한이 변경되었다.

토지 조사 사업이 4년에 걸쳐 1917년에 완료되자 동년 7월 18일자로 제주도 토지 조사 위원회 실시위원인 도사 이마무라[今村鞆]와 송문옥(宋文玉)의 위원직이 해촉되었다.

이마무라와 송문옥의 면모로 보아 침탈자의 우두머리인 일본인이나 일제의 주구 역할을 하는 일제 관리들이 토지조사사업을 주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마무라는 1915년 부임한 초대 도백(島伯)이며 송문옥은 비록 제주 사람이지만 순사보(巡査補)로 재직하던 현직 경찰관이었다. 더구나 송문옥은 1916년 12월 27일 전라남도 경무부장으로부터 정근증서(精勤證書)를 받은 소위 모범 공무원으로 일제에 충실했던 자였다.

일제하의 제주 토지 조사 사업도 우리나라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우리 농민의 사회 경제적 위상 즉 농업·임업·어업 부분에 대하여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농민 상호간의 분쟁, 소유 경계의 분쟁, 수탈자에 대한 농민의 저항 등이 자주 발생하였다.

토지 조사 사업을 집행함에 있어 우선 면장, 이동장, 지주 총대(摠代), 주요 지주 등을 소집하여 토지 신고서 용지를 배포하고 토지 소유주가 신고한 것을 총대가 수합하여 이동별(里洞別)로 묶어 제출하였다.

이러한 신고주의에 의한 토지 조사 사업의 결과는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이에 따른 엄청난 분쟁이 일어나 동족끼리의 싸움으로 이어졌다. 본도에서도 토지 사정에 따른 불복 신고가 잇따라 발생하였다.

조선을 식민지화한 후 일본 유이민들이 제주성 내, 서귀포, 성산포, 한림, 추자 등지에 집단 거주하면서 국유지로 된 광대한 전토를 불하받아 어장 및 임항(臨港) 토지로 사용, 막대한 부를 형성하고 광주 농공 은행 제주 지점 혹은 식산 은행에서 이윤을 증식하면서 일본으로 송금하였다.

제주도민들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업체의 고용인으로 전락되었으며 국유지 소유의 증폭으로 우리 농어민이 개간할 가능성이 있는 토지는 점차 좁아졌으며 화전민의 자유 개간권도 상실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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