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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1439
한자 美術
영어음역 misul
영어의미역 art / the fine arts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유정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인간의 미적 활동에 의해 표현된 조형 예술.

[개설]

미술은 인간이 생활하는 데 있어서 미적인 즐거움을 주는 분야이다. 미술의 풍부한 표현은 넓게는 모든 희로애락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대체로 쾌(快)와 불쾌(不快)의 감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작품을 감상할 때 그 작품에 대해 ‘곱다’, ‘아름답다’라는 감정이 들었다면 그 작품에는 미적인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며, 다른 어떤 작품을 봤을 때 ‘징그럽다’, ‘흉측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작품은 불쾌를 유발시키는 작품이다. 쾌는 밝고 긍정적이고 불쾌는 어둡고 비판적인 이미지로 발전하기도 한다.

미술은 조형 예술을 포괄하는 말로서 미술 작품에는 창작자 자신의 의도나 사회적 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미술은 언제나 개인의 표현 충동과 사회적 의식을 반영하며 새로운 조형적 가치들을 생산하면서 세기를 넘어왔다. 그러기 때문에 미술은 그 인식하는 정도가 시대에 따라 규정된다.

미의 가치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미를 어떻게 보느냐, 미의식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가령 중세의 미인과 오늘의 미인을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 그 한 예이다.

인간의 자유로운 표현을 선호했던 20세기의 미술은 내면의 욕망과 무의식, 형태의 변형과 왜곡을 표현했으며 추상 미술의 등장으로 조형 예술의 근대적 혁명을 가져왔다. 또한 그것은 고전주의, 낭만주의, 자연주의 등의 전 시대를 역사적인 사조에 머물게 했다.

[장르]

조형 예술은 우리 세계를 감각적으로 파악하며 고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예술이다. 조형 예술에는 조각, 회화, 그래픽, 판화, 공예 등이 있다. 조형 예술은 세부적으로 평면과 입체로 나눌 경우 평면은 화면에 그리는 회화적인 행위, 즉 서양화, 한국화, 판화, 그래픽 등의 장르를 포함한다.

입체는 3차원의 형태를 가진 조형적 요소, 즉 조각, 공예, 설치미술, 오브제 미술을 포함한다. 미술의 장르론을 넘어서는 미술의 성격적 분류인 이 구분은 현대 미술을 가치 평가하는 데 있어서 전통적 분류 방식의 한계를 초월한다.

회화는 공간을 하나의 이차원적인 평면 위에 모사하거나 표현한다. 점, 선, 면 색채 등으로 이루어지며 시계(視界), 시점(視點), 소실점(所失點) 등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서양화와 동양화는 재료상의 차이, 그림을 보는 관점, 미학적 차원에서 그 특징이 다르게 나타난다.

조각은 실재하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물체들에 대한 입체적·공간적 묘사를 제공해주는 조형 예술이다. 조각은 ‘잘라내다’ ‘깎아내다’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스쿨페레(sculpere)’에서 유래하였다.

공예는 수공업적인 방식의 생활 도구를 제작하는 것으로 실용성과 미적 즐거움을 주는 감상성을 포괄하면서 예술류로 분류되었다. 설치미술은 공간을 이용하거나 물체를 이용하여 테마를 표현하는 것이다.

오브제는 다양한 물질이나 물체를 이용하여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개념을 도출하는 미술이다. 그 외에도 극적 요소와 신체적 행위를 이용한 퍼포먼스 등이 색다른 미술 장르에 속한다.

[특징]

미술은 조형성을 다루는 예술인만큼 미술가의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래서 미술가 한 사람을 개인성과 사회성으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개인성을 형성하는 개인적 자아는 선천적인 본능과 유전자, 그리고 부모, 학교,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형성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사회성을 형성하는 사회적 이데올로기는 법, 제도, 관습, 사회 조직으로부터 묵인되거나 영향 받는 제반 사회적 요소들에 대한 개인의 대사회적 작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미술가 개인은 사회적 계급성을 띠며 그 표현 방식에도 계급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풍토성은 해당 지역의 기후, 자연, 환경, 사회적 조건들에 의해 반응하는 일종의 지역적 특수성을 말한다. 풍토성은 그 지역적 조건에서 만들어지는 심성, 색채, 표현 방식의 한 국면을 만들어 낸다.

고갱의 타히티에서의 작품은 타히티의 풍토성이 강하게 결합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듯이 미술가 자신이 어떤 지역을 여행했을 때 한 번 그곳에 갔는가, 두 번, 세세 번 아니면 장기 체류를 했느냐에 따라 그 지역 풍토를 이해하는 범위가 확장된다.

폭풍의 화가 변시지 화백의 경우 일본 유학 시기의 작품, 한반도 체류 시기의 작품, 제주도 정착기의 작품이 각기 다르다. 변시지가 제주도에서 창작한 작품은 제주의 풍토성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는 모델링으로 볼 수가 있다. 미술에 있어서 지역적 형상성은 곧 미술가 개인의 계급성을 기반으로 하여 풍토적 맥락과 깊숙이 닿아 있다.

[제주미술의 근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술의 근원을 제주에서 찾기란 매우 어렵다. 제주는 본토와 멀리 떨어진 섬인데다 땅이 척박하고 잦은 왜구의 내침, 그리고 중앙에의 토산물 공납으로 도민들의 곤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탐라사례』에 의하면 제주에는 공장의 종류가 25종이 있었는데, 그 중 화아장이 있었다. 이는 화공을 말하는데, 이들은 순수 미술 내지 정통파의 회화와는 거리가 있어 공청의 건조물 등의 단청, 또는 고졸한 도색의 화조도나 문자도 등의 민화를 그렸다.

보물 제652-6호로 지정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는 제주목사로 재임할 당시인 이형상 제주목사가 제주 관내를 순회하면서 자연, 산물, 풍속, 방어 시설 등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한 40폭의 채색 그림으로 매 화폭마다 하단에 자필 설명을 적고 화첩으로 꾸민 것이다.

[변천]

1. 태동기

1950년 6월 25일 발발된 한국전쟁으로 인해 우리나라 미술 활동은 전반적으로 중지되었으나 제주의 경우는 긍정적 측면에서 문화 예술의 발전을 가져왔다. 한국전쟁은 제주 지역 미술에 새로운 여명기를 태동시켰다.

제주도로 피난 왔던 미술가들 중 이중섭·장리석·홍종명·최영림·김창열·이대원·최덕휴·구대일·옥파일 등은 제주도에서 짧게는 6~7개월, 길게는 4년 동안 체류하였다.

이들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이나 후진 양성에 적극적이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삶 자체가 미술 학도들에게 직접·간접의 영향을 끼치며 제주 현대 미술의 발아에 좋은 토양을 만들어 주었다.

특히 이중섭은 1951년 봄 서귀포에서 6~7개월간 머물면서 많은 활동을 하였고 이런 인연으로 지금 서귀포시에는 이중섭미술관과 ‘이중섭 거리’가 있으며 이중섭을 기념하기 위한 미술제도 개최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 초기에 피난 화가들이 제주에 끼친 영향은 제주 미술의 근간을 이루는 미술협회의 탄생과 함께 제주의 젊은 미학도들에게 1950년대 말 서울 유학의 길을 터 주었다. 피난시절 유명 화가들은 제주의 화단 생성에 직·간접적으로 큰 몫을 한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1950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형태의 근대적 미술전이 열리고 1940년대에 볼 수 없었던 교육 제도의 일반화로 화가의 꿈을 키우는 새로운 세대가 증가하였으며 미술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2. 형성기

1940~1950년대 정상적인 미술 교육을 받은 제주 출신 신진 화가들이 고향으로 들어오면서 제주의 근대 미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신진 화가들의 지도로 1962년 제주시 내 중·고등학교 미술부들이 ‘귤동인’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후 학생 미술은 1970년대 제주대학교 미술교육과가 설립되기 전까지 오현중학교·오현고등학교의 강광과 양창보, 신성여자중학교·신성여자고등학교의 좌연선과 김택화, 제주여자중학교·제주여자고등학교의 강영호, 공립으로는 제주일중학교·제주일고등학교의 정청용과 조석춘이 중심이 되어 활발한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이 바탕은 1965년 이후 전국학생미술실기대회에 대거 참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제주 출신 화가들은 국전에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으며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제주도에는 종전 문총과 같은 성격의 예총지부가 창립되었다. 중단 상태에 있던 미술협회도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해마다 제주도 미협전이 개최되었다.

3. 정착기

1972년 제주대학교 미술교육과가 신설됨에 따라 제주대학교 출신 젊은 작가들은 중앙 화단의 미술 공모전과 제주도 미술대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미술 교사로서 제주 미술의 밑거름이 되는 중등 미술 교육을 통하여 화단 형성에 새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975년 제주신문사가 주최한 최초의 공모전인 제주도전은 제주 미술 발전에 큰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으며 양적인 팽창과 함께 제주 미술의 기반이 되어 왔다. 1970년대 후반 개인전 위주의 작품 발표 형식이 다양한 성격을 띠며 동호인 혹은 그룹전으로 창립되었으며 주로 젊은 미술인들로 구성되었다.

4. 성장기

1980년대는 전문 사설 화랑들과 제주도 문예회관이 개관됨에 따라 각종 기획전과 타지방과의 교류전이 활발하게 이루어짐에 따라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작가들의 고민이 작품에 배어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80년대는 제주대학교 미술과 출신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단체 활동이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일어났으며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창립된 코지는 민중 미술과 함께 제주 화단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다.

5. 도약기

1990년대는 제주 미술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격적인 지방 자치의 전개와 더불어 세계화의 진정이 이루어짐에 따라 지역이 주체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각종 기획전과 교류전 등은 지역적 특성을 되살리며 지역 미술 문화의 활성화를 가속화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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