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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창민요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320
한자 濟州市唱民謠
영어음역 changminyo
영어의미역 folk song
이칭/별칭 가창유희요,가창요,통속민요,잡요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영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7월 24일연표보기 - 제주시 창민요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20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제주시 창민요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재지정
문화재 지정번호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정의]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도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전승되어 온 노래.

[개설]

제주시 창민요는 넓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에 의해 불린다 해서 통속민요라 칭하기도 하고, 놀이요의 성격을 갖는 민요와 한데 묶어 잡요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요즘에는 노래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춤추기나 윷놀이 등을 통해서 얻는 즐거움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아 노래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들을 가창유희요라고 하여 유희요의 범주에 넣어 다루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하나의 분류명이 모든 경우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워 필자마다 경우에 따라서 다른 명칭을 쓰고 있다.

제주 지역에서는 제주시 창민요의 전승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오돌또기」, 「이야홍」, 「너영나영」, 「신목사타령」, 「봉지가」, 「산천초목」, 「동풍가」, 「중타령」, 「질군악」, 「용천검」, 「계화타령」, 「사랑가」 등 50여 종의 노래들이 전승되고 있다.

[분류]

제주시 창민요는 제주 전역에서 전승되어 온 노래와 과거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노래 그리고 신민요의 세 분류로 나눌 수 있다. 그중 제주 전역에서 전승되어 온 노래로는 「오돌또기」, 「이야홍」, 「너영나영」, 「서우젯 소리」 등이 있다.

과거 관변 지역 등 특정 지역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노래로는 「관덕정앞」, 「계화타령」, 「질군악」, 「사랑가」, 「용천검」, 「중타령」, 「동풍가」, 「봉지가」, 「산천초목」, 「오광산타령」 등이 있다. 신민요로는 「영주십경가」, 「한강수타령」, 「청춘가」, 「양산도」, 「창부타령」, 「뱃노래」, 「박연폭포」, 「베틀가」, 「잡가」 등이 있다.

[분포]

제주 지역 창민요(가창유희요)는 악곡에 따라 분포 지역이 매우 편중되어 있다. 대체로 제주목의 관아가 있던 제주시 지역과 정의현의 현청 소재지인 성읍 지역, 대정현의 현청이 있었던 보성을 중심으로 한 대정 지역, 육지와 인적·물적 교류가 많았던 조천관 등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제주도는 1416년(태종 16)부터 1914년 이래 약 오백 년 동안 제주목(濟州牧), 정의현(旌義縣), 대정현(大靜縣)의 1목 2현으로 나뉘어 통치되었는데, 제주목의 고을이었던 제주시, 대정현의 고을이었던 대정골, 정의현의 고을이었던 정의골과 제주목의 교통 요지인 조천 등은 관변 지역이거나 문화, 문물, 교통의 유입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제주 지역의 가창유희요들은 옛 제주관아가 있던 관변 지역, 육지와 문물·문화 교류가 있었던 포구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제주시 창민요 중 「오돌또기」, 「이야홍」, 「너영나영」 등은 정서적 공감대에 의해 폭넓은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하면서 제주시를 비롯하여 제주 전역에 고루 분포하고 있고, 「동풍가」, 「산천초목」, 「신목사타령」 등은 관변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특정 지역인 성읍에서만 전승되고 있는 노래도 있다.

[채록/수집상황]

제주시 창민요는 동네의 잔칫집과 같이 여흥적인 장소, 마을회관이나 노인회관에서 모여서 놀 때, 경로잔치, 웃어른을 모시고 마을 공동으로 새해 인사를 드리는 자리 등 소리판이 형성되는 곳에서 주로 불린다. 요즘은 전문 소리꾼들에 의해 무대에서 많이 가창되고 있다. 여기에 수록된 노래들은 양영자가 2005년에 소리꾼 김주산과 김태매에게서 채록한 것들이다.

[가사]

1. 「오돌또기」

오돌또기 저기 춘양 나온다/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거나

둥그데당실 둥그데당실 여도당실 연자 버리고/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거나

한라산 중허리에 시러미 익은송 만송/서귀포 해녀가 바당에 든송 만송

둥그데당실 둥그데당실 여도당실 연자 버리고/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거나

2. 「너영나영」

너녕 나녕 두리둥실 놀고요/낮에낮에나 밤에밤에나 쌍사랑이로구나

아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저녁에 우는 새는 임이 그려 우는다

너녕 나녕 두리둥실 너녕/낮에낮에나 밤에밤에나 쌍사랑이로구나

3. 「이야홍」

이야홍 소리에/정떨어졌구나 이야홍/좋기도 좋구나 이야홍

야아홍 그렇고말구요/야아홍 이야홍 다 을말이냐

한라산 산상봉/높고도 높은봉 이야홍/백록담이라 이야홍

야아홍 그렇고말구요/야아홍 이야홍 다 을말이냐

4. 「서우젯 소리」

어양 어허양 어야뒤여도 상사니로다/아~하 아하아양 어허어양 어허요

이물에는 이사공아 고물에는 고상공이로구나/아~하 아하아양 어허어양 어허요

허리띠 밋테 화전화야 물때 점점 늦어나진다/아~하 아하아양 어허어양 어허요

5. 「산천초목」

산천초목 속닙이 난데/구경가기가 얼화 반갑도다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잎은 따서 입에다 물고

오름에 올라 들구경난/천하일색은 얼화 반갑도다

6. 「신목사타령」

관덕정 문앞에 형리방 걸음을 걸어라/아기작 쿵 아장거려서 신목사 후리러 나간다

계화자 좋을소 대명당 허리로다/아기작 쿵 아장거려서 신목사 후리러 나간다

산지포 바당에 갈농선 떳고/김녕포 바당에는 에리화 조기선 떳구나

계화자 좋을소 대명당 허리로다/아기작 쿵 아장거려서 신목사 후리러 나간다

7. 「봉지가」

봉지가 진다 봉지가 진다/봄철 낭긔에서 봉지가 진다

에헤 리이리 리이리 리이리 야아야/에헤 리이리 리이리 리이리 야아야

야아 헹~ 에헤엥 에헤가 얼씨구나

8. 「용천검」

찻든 칼을 쑥빼고 보난/난데 없는 용천의 검은 검이라

엥에라 데야 엥에라 뎅에라 상사어로구나

명사십리 해당화에/꽃이나 진다고 설어를 말아

엥에라 데야 엥에라 뎅에라 상사어로구나

9. 「질군악」

아하 아하 에-헤에에 나니나노 헤

에헤에용 요나노나 에기나 노나니라

청사초롱 불밝혀들고 에헤이용

춘양이 방으로 에헤엥 에헤야 밤소일 간다

아하 아하 에-헤에에 나니나노 헤

에헤에용 요나노나 에기나 노나니라

10. 「중타령」

중들의 굴갓이 수리수천냥이 가 하 이야도 지야절로 심중만 탄다

에이용 에야 에헤용 에야

요리저리나 하 이야도 지야절로 심중만 탄다

11. 「실실이 동풍가」

실실이 동풍~ 궂은비 하나둘씩 오는데/세월아 동풍에 임소식만 드는다

에헤엥 에헹 에헤이요/어럼마 디동동 내사랑이 아니냐

난봉이 났구나 에리화 실난봉 났구나/남으집 귀동자 팔난봉이 났구나

에헤엥 에헹 에헤이요/어럼마 디동동 내사랑이 아니냐

[가락과 장단]

제주 지역의 창민요들은 제주 지역의 노동요에 비해 기교가 발달하고 선율이 풍부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육지에 비해서는 선율 처리 방식이나 가창 기교가 비교적 단순하다. 이는 육지의 창민요들이 대부분 악기를 수반하여 전문적인 소리꾼들에 의해 불리는 것과는 달리, 제주의 창민요들은 허벅을 이용하여 즉흥적인 장단에 맞춰 불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러 한가하게 노래를 부를 여유를 갖지는 못했지만 마을의 잔치나 큰일에 몇 사람만 모이면 자연스럽게 둘러앉아 노래판이 형성되고, 일하는 도중 비라도 내리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는 즉흥적인 소리판이 만들어지면서 일상생활의 도구가 노래의 연행에도 활용된 것이다.

소리판도 즉흥적으로 형성되고, 장단도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연행 방식은 선율 구조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제주 지역의 창민요는 지리적으로는 전라도와 가깝지만 육자배기조 민요보다는 경서도 민요에 가깝다. 이것은 제주 지역의 민요목이 전라도 민요 육자배기목과는 아주 다르고 경서도 민요목과 비슷한 데서 오는 연유로 보고 있다.

[현황]

악기 및 도구로는 허벅을 이용한 장단이 수반되는데, 최근의 전문 소리꾼들은 장구를 이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옷차림으로는 민간에서 불렀던 노래이므로 제주 지역의 평상복인 갈옷이 주요 옷차림이지만, 최근 민요의 무대화와 더불어 전문 소리꾼들은 한복이나 개량 한복을 입고 부르는 경향이 많다.

[의의와 평가]

제주시 창민요는 제주 사람들의 사회적 공감대에 의해 형성되고 제주 지역의 자연환경과 사회문화적 환경을 담으면서 독특하게 전승되어 왔다. 제주 지역 가창유희요들 중 육지 민요가 유입된 민요들도 제주 지역의 인문·사회 환경적 요인을 반영하면서 제주 지역의 현실과 실정에 맞게 변용되면서 제주다운 모습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중에는 육지에서 사라져버린 민요도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어 다른 지역의 민요와의 비교·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009년 7월 24일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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