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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612
한자 李源達去思碑
영어음역 Yi Wondal Geosabi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Yi Wondal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 99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순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거사비(去思碑)
관련인물 이원달(李源達)
높이 73㎝
너비 37.5㎝[위]|33.5㎝[아래]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 996 지도보기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이원달을 기리는 비.

[개설]

이원달은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37년(헌종 3) 11월에 부임하고, 1839년(헌종 5) 3월에 사직하였다.

[건립경위]

재임 중 평역미(平役米) 4말에 4되를 감해주었고, 경민편(警民篇)을 인출(印出)하여 각 동리에 나누어주었는가 하면, 곡식이 기재된 장부를 샅샅이 조사하여 환곡의 폐단을 막았다. 또한 생마(生麻), 어물(魚物)의 미봉자(未捧者)를 혁파하기도 하였다.

그의 임기 중에는 표류를 가장하기 위하여 풍랑을 무릅쓰고 배를 띄웠다가 익사하는 사건이 많이 발생하였다. 제주인 고한록(高漢禄)의 경우 표류를 하다가 중국을 거쳐 돌아 왔으며, 1838년 다시 표류를 기도하다가 동행중에 익사자가 많이 발생하였다.

이에 고한록을 처참(處斬)하고 무모한 표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고하였다. 이러한 그의 공을 찬양하기 위해 비가 세워졌다.

[형태]

높이 131㎝의 석각(石閣) 속에 안치되어 있는데, 높이가 73㎝, 너비는 위가 37.5㎝, 아래가 33.5㎝, 두께가 12㎝이다.

[금석문]

비의 앞쪽 가운데에는 “使相李公源達去思碑(사상이공원달거사비)”라 새겨져 있고, 앞쪽 좌우로는 “문서상의 폐단 모두 소생시키고 넘치는 잡역 다 제거하였네. 은택을 잊기 어려우니 칭송은 글로도 다할 수가 없다네.(籍弊□(俱)蘇 濫□(雜)悉除 澤何難忘 頌不勝書)”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비신(碑身) 자체가 파손이 심하고 석각도 왼쪽 부분은 균열된 상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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