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660
한자 扶餘 長蝦里 三層石塔
영어공식명칭 Three-story Stone Pagoda in Jangha-ri, Buyeo
이칭/별칭 한산사지석탑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536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소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31년 -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해체 및 보수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1년 -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에서 상아제 불상 등 발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2년 -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해체 및 보수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2년 -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에서 사리 용기 발견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보물 제184호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 -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해체 및 보수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보물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536 지도보기
원소재지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536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부여박물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지도보기
성격 석탑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4.85m
소유자 대한민국
관리자 부여군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

[개설]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扶餘 長蝦里 三層石塔)은 충청남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한 고려 시대 백제계 석탑이다. 한산사지석탑이라고도 한다. 1931년 해체 복원되면서 1층 몸돌에서 범자(梵字) 다라니경 조각과 상아제 불상 등이 발견되었다. 1962년 해체 때는 2층 몸돌의 원형 공간에서 이중의 사리 용기가 발견되었다. 유물은 모두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8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보물로 변경되었다.

[위치]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536번지 한산사터에 있다.

[형태]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의 높이는 4.85m이다. 기단은 좁고 낮으며, 석탑의 일반적인 건축 기단이 아닌 계단식으로 삼단의 층을 이루고 있다.

1층은 좌우 기둥돌과 중앙의 면석(面石)을 조합하여 쌓고, 위에 두 단의 지붕돌 받침을 놓았는데, 상단은 모죽임 형태이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끝이 살짝 들려 있는데 풍탁을 달았을 구멍이 있어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형태가 동일하다. 지붕돌 위에는 두 단으로 이루어진 몸돌 받침이 있는데,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과 전라북도 정읍 은선리 삼층석탑에서만 보인다. 3층 몸돌의 사면 상단부에 네모난 홈을 팠는데, 감실(龕室), 혹은 면석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한다.

많은 석재의 사용, 좁고 낮은 기단, 1층 지붕돌의 폭이 기단 폭보다 넓은 점, 1층 몸돌의 민흘림 기둥, 1층 기둥돌과 면석을 각각 다른 돌로 쌓은 점, 지붕돌이 얇고 넓으며 끝이 살짝 들린 형식 등 백제계 석탑의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계단처럼 쌓은 기단과 길고 가는 조형은 백제계 석탑과 다른 점이다.

[현황]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은 네 종류 이상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졌으며, 상륜부는 대부분 유실되고 노반으로 보이는 석재만 남아 있다. 중앙에서 3층 지붕돌까지 지름 8㎝, 깊이 40㎝의 구멍이 있는데 찰주를 꽂았을 것이다. 1931년과 1962년 해체 복원되었으며 2006년 다시 해체 복원되었다. 보존 과학적 조사 결과 현재 석탑 모두 풍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석탑 좌측의 박리 박락이 가장 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