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661
한자 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
영어공식명칭 Five-story Stone Pagoda at Jeongnimsa Temple Site, Buyeo
이칭/별칭 평제탑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소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7세기 -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건립
훼손 시기/일시 660년 -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훼손
문화재 지정 일시 1962년 12월 20일연표보기 -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국보 제9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국보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 지도보기
원소재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
성격 석탑
관련 인물 소정방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8.8m
소유자 대한민국
관리자 부여군
문화재 지정 번호 국보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터에 있는 백제 시대 석탑.

[개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은 백제 사비 도성의 중심 사찰인 정림사터에 건립한 7세기 오층석탑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현존하는 두 기의 백제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목탑 형식으로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조성되는 고려 시대 백제계 석탑의 시원이 된다. 2021년 국보 제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국보로 변경되었다.

[위치]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에 있다. 정림사터는 백제 사비 시대 도성의 중축대로 동쪽에 해당한다.

[형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이는 8.8m이다. 지대석 위에 좁고 낮은 1층의 기단을 구성한 후, 5층의 몸돌을 올렸다.

1층에 비하여 2층부터 몸돌의 크기와 폭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기단과 각 층 몸돌의 모서리 기둥에는 안쏠림 현상이 나타난다. 1층 몸돌에 출입문은 없지만, 기둥돌 사이에 두 개의 넓고 평평한 돌[면석]을 끼워 마치 문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지붕돌 아래에는 여러 장의 돌을 조합하여 두 단의 지붕 받침을 두었는데, 상단은 모죽임 처리를 하여 목조 건축의 공포(栱包)처럼 표현하였다. 몸돌에 비하여 지붕돌의 폭이 넓으며, 얇고 넓은 지붕돌의 끝을 살짝 들어 올려 목조 건축의 내림마루[隅棟]를 묘사하였다. 지붕돌 끝에는 풍탁을 달았을 구멍이 위아래로 뚫려 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목탑을 번안한 석탑의 특징이 나타난다. 그러나 탑의 크기를 축소하여 석재의 수를 현저히 줄이고 세부 형식을 간략화하여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보완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목탑의 흔적이 강한 익산 미륵사지 석탑보다 진전된 석탑으로 평가받고 있다. 양식적 특징을 통하여 백제 무왕 때 건립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보다 늦게 건립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지만 반대 의견도 있다. 일본 나라[奈良]현에 있는 호류지[法隆寺] 오층목탑은 크기는 다르지만 체감 비율이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동일하다.

[금석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에는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1층 몸돌 사면에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이라고 새긴 글이 남아 있다.

[현황]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5층 몸돌 위의 상륜부는 노반석 일부만 남아 있으며, 상륜부를 고정시켰던 찰주 구멍이 5층 지붕돌까지 뚫려 있다. 정림사터에 대해서는 1942년 조선총독부박물관 부여 분관의 발굴 조사를 시작으로 2011년까지 10차례 조사가 있었다. 그러나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해체 및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리 공간의 유무와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목탑에서 석탑으로의 이행을 보여 주는 백제 석탑이며, 세련되고 조형미가 뛰어난 작품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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