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1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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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興樵軍廳 |
영어공식명칭 | Sunheung Choguncheong |
이칭/별칭 | 초군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임기원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지역 농민들이 개항기부터 운영하는 농촌자치조직.
[개설]
순흥초군청(順興樵軍廳)은 영주시 순흥면 지역 농민들의 농촌 조직으로, 농민들의 권익을 보호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마을 간의 결속과 단합을 도모하여 지역 사회의 결속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농부들의 품삯과 머슴의 새경을 정하거나 동네 부역을 관장하는 한편 성황제, 줄다리기, 풋구 등 지역 단위로 이루어지는 행사를 담당했다.
[내용]
순흥초군청은 개항기 순흥 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 속에서 결성되었다. 순흥 지역에서는 지방관과 토호들이 농민을 수취하고, 자신들이 소유한 사유지에서의 벌목을 금하는 등의 횡포가 심하여 농민과 나무꾼[樵軍]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교림(金敎林)[1865~1938]은 토호들의 수취와 횡포에 대항하고 농민과 나무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인 순흥초군청의 결성을 주도한다. 순흥초군청은 1900년대 초반, 초대 좌수(座首)로 신영두(申永斗)를 추대하면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순흥초군청 조직의 인적 구성에 대해서는 사료가 남아 있지 않지만, 과거 순흥초군청 좌상(座上)을 역임한 지역 노인들의 구술에 의하면 순흥 지역의 순흥초군청 조직은 대표 격인 좌상 혹은 좌수와 지역 원로들로 구성된 자문 기구인 고문이 있었다. 한편 현임 좌상은 전임 좌상 중에서 원로를 선임하였다. 좌상 밑에는 총무 또는 간사가 있고, 총무 밑에는 서기, 서기 밑에는 마을 단위로 실무를 담당하였던 역원이 1~2명씩 있었다. 역원은 재판할 때 재판받을 사람을 데려오거나 마을마다 소식을 전달하였다. 순흥초군청의 대표인 좌상은 순흥면 전체를 총괄하는 면좌상(面座上)이라고도 하는데, 순흥면에 속한 각 마을의 동좌상(洞座上)을 총괄하였다.
음력 7월 중순쯤에 행하는 풋구 행사는 순흥초군청 좌상의 권위를 확인할 수 있다. 7월 초순경 순흥초군청 좌상은 각 마을의 좌상에게 ‘사발통문’을 돌려서 지금의 순흥면 전체가 풋구를 같은 날 같은 시에 행하게 하였으며, “좌상은 왕이라, 좌상 명령이면 그만이라. 말 안 들으면 국물 없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순흥초군청 좌수는 순흥 지역에서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었다.
[현황]
순흥초군청은 시대가 변하고 사회구조가 바뀌면서 순흥초군청 본래 기능과 권한도 축소되었으며, 결속력도 예전과 비교해 줄어들었다. 그러나 현재도 순흥초군청 성황제를 주재하는 등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순흥초군청 좌수를 역임하는 것은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자 명예였지만, 현재는 선뜻 맡으려는 사람이 나서지 않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십여 년 전부터 좌수 아래에 부좌수 제도를 만들었으며, 부좌수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차기 좌수로 선출되어 순흥초군청을 이끌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