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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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漉 |
영어공식명칭 | Park Nok |
이칭/별칭 | 자징(子澄),취수헌(醉睡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환 |
출생 시기/일시 | 1542년 - 박녹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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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박녹 임진왜란 창의 |
활동 시기/일시 | 1594년 - 박녹 태릉참봉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98년 - 박녹 사근도찰방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03년 - 박녹 의금부도사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30년 - 박녹 통정대부 승계 |
몰년 시기/일시 | 1632년 - 박녹 사망 |
거주|이주지 | 박녹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문정동 |
부임|활동지 | 박녹 부임지 - 경상남도 함양군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반남 |
대표 관직 | 사근도찰방|의금부도사 |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박녹(朴漉)[1542~1632]은 천거로 사근도찰방·의금부도사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 영주에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가계]
박녹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징(子澄), 호는 취수헌(醉睡軒)이다.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박승임(朴承任)[1517~1586], 어머니는 집의를 지낸 권오기(權五紀)[1463~?]의 딸 정부인 예천권씨(醴泉權氏), 할아버지는 진사 박형(朴珩)[1479~1549], 증조할아버지는 홍주판관을 지낸 박병균(朴秉均)이다. 부인은 생원 허사렴(許士廉)의 딸 정부인 김해허씨(金海許氏)이다.
박녹의 반남박씨 가문은 할아버지 박형 대에 처음 경상도 영천군(榮川郡)에 정착하였으며, 박녹이 영천군 초곡방(草谷坊)[지금의 영주시 문정동 한정마을 일대]으로 이거 하면서, 초곡방 일대에 박녹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었다.
[활동 사항]
박녹은 시(詩)와 예(禮)에 밝았지만, 아버지 박승임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켰는데, 고을 사람들이 박녹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이때 박녹은 정탐과 복병을 통해 왜군이 영천군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박녹은 1594년 천거를 통해 태릉참봉에 제수되었고, 1595년 집경전참봉으로 옮겼다. 1598년에는 사근도찰방으로 부임하여, 병란으로 피폐해진 민졸들을 안정시켰다. 1603년(선조 36)에는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다. 1630년(인조 8)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에 올랐고, 90세가 되기 전 가선대부의 품계가 내려졌다.
[상훈과 추모]
박녹은 고향 초곡방에 정자를 짓고 소요하였는데, 아버지 박승임이 ‘하한정(夏寒亭)’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1938년 후손들이 하한정이 있던 자리에 삼락당(三樂堂)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