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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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望峰 |
영어공식명칭 | Gungmangbong Peak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상일 |
전구간 | 국망봉 - 경상북도 영주시|충청북도 단양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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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국망봉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
성격 | 산 |
높이 | 1420.8m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 있는 산.
[개설]
국망봉(國望峰)[1420.8m]은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 북동쪽 능선에 있다. 신라 마의태자와 조선시대 배순(裵純)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며, 특별보호구로 지정된 북간터골이 있다.
[명칭 유래]
『여지도서』 「영춘현」에 의하면, “소백산은 현 동쪽 40리에 있다. 강원도 강릉 오대산으로부터 뻗어 나와, 경상도 순흥부와의 경계를 이룬다. 수많은 산줄기와 산기슭을 품고 있는데, 소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국망봉이다.”라고 수록하고 있어 ‘국망봉’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1872년 지방지도』「순흥부지도」에는 읍치 북쪽 영춘현과 경계에 국망봉이 표기되어 있다.
국망봉에는 마의태자와 관련된 지명 유래가 전해진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의 왕자 마의태자가 신라를 회복하려다 실패하자 망국의 한을 달래며 개골산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 올라 멀리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곳을 ‘국망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국망봉에는 충신이자 효자인 배순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배순은 대장간을 차려놓고 좋은 물건을 만들었고, 행실이 착하고 부모와 조상에 대한 정성이 지극하였다. 당시 소수서원을 창건할 때 배순이 철물을 정성껏 공급하여 지역 유림사회로부터 칭찬이 자자하였고, 퇴계 이황이 직접 칭찬할 정도였다고 한다. 배순은 이황이 죽고 난 뒤 쇳곳[鐵]으로 상(像)을 만들고 삼년복(三年服)을 입었으며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매 삭망(朔望)에 정성 들여 음식을 장만하고 뒷산에 올라 북쪽 궁궐을 향해 3년간 곡제사(哭祭祀)를 지냈다. 이후 배순에 대한 소식이 궁 안에까지 들리자 나라에서 정려를 내리게 되었다. 당시 궁궐을 바라보며 곡을 했다는 산을 후에 사람들이 ‘국망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환경]
국망봉은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는 봉우리이다. 국망봉의 북동쪽으로는 상월봉[1,396m]과 늦은맥이재[1,260m]까지 이어진다. 국망봉의 주요 지질은 선캄브리아기의 반상 변정질 편마암과 화강암질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상부에는 초원이 펼쳐지고 주봉은 암석으로 되어있다. 국망봉의 남동쪽은 가파른 계곡이 나타나며 이곳을 북간터골이라 부르며 특별보호구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서 발원한 하천은 계곡을 빠져나온 뒤 남쪽으로 흘러 순흥저수지로 유입한다.
[현황]
국망봉으로 향하는 등산 코스는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에서 죽계구곡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 주요하다. 등산로 초입에 탐방지원센터가 있으며 1곡부터 9곡의 계곡이 발달하여 죽계구곡이라 불린다.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초암사가 나온다. 국망봉 아래 월명봉 동남쪽 기슭에 있는 성혈사에는 영주 성혈사 나한전[보물 제832호]이 있다. 나한전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층 맞배지붕에 다포계 건물이며 연꽃과 봉황 등을 장식한 창호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