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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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 율산 마을에서 전해 오는 백운 도사 문이계에 관련된 이야기. 효자이며 형제간의 우애도 좋았던 문이계는 일찍이 부모 형제를 여읜 뒤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구름을 부린 백운 도사」는 문이계에 관련되어 전해 오는 기이한 이야기이다. 1994년 영암 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암의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숙종(肅宗) 때, 지금의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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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군 노아도의 희빈방 면세 전답을 작성한 토지 대장. 노아도는 현재 행정 구역으로는 전라남도 완도군에 속해 있는 섬이며, 희빈은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를 가리킨다. 희빈 장씨는 1686년(숙종 12)에 숙원(淑媛), 1688년에 소의(昭儀)에 책봉되어 왕자 균을 낳았으며, 1689년(숙종 15) 희빈에 봉해진 이후 궁방으로서 ‘희빈방(禧嬪房)’이 생겨나 전답 등의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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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에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에서 국제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포구. 상대포(上臺浦)는 예로부터 호남 3대 명촌으로 손꼽힌 영암 구림 마을에 있었던 옛 포구로, 백제 때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일본 등을 오가는 배들이 드나드는 국제 포구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 상대포는 각종 문물과 문화가 활발히 교류하는 국제 포구로서 전성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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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자협(子浹)이다, 좌찬성(左贊成)을 지낸 김인덕(金仁德)의 6세손이다. 김덕흡(金德洽)[?~1597]은 1597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전몽성(全夢星)·전몽진(全夢辰) 형제와 함께 의병을 규합하여 왜군을 여러 번 격파했다. 영암의 해암포(海岩浦) 싸움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에 전씨 형제와 함께 전사했다. 숙종 때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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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에 유배 온 문신. 김수항(金壽恒)[1629~1689)은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이다. 서인으로서 2차례의 예송(禮訟) 때 남인과 대립했다. 1675년(숙종 1)에 남인인 윤휴(尹鑴), 허적(許積), 허목(許穆) 등의 공격으로 관직을 빼앗겨 전라도 영암에 유배되었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이다.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했던 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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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영암 출신의 승려. 법휘는 도선(道詵), 시호는 요공(了空), 선각(先覺). 속성은 김씨(金氏)이며 영암에서 출생하였다. 신라 흥덕왕 원년인 826년에 출생하였고, 15세에 출가하여 불경을 공부하다가 20세에 선종으로 개종하고 동리산파 개조인 혜철(惠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863년(헌안왕 4)부터 35년간 백계산(白谿山) 옥룡사(玉龍寺)에 주석하며 제자들을 양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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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서약(徐鑰)은 아버지가 편찮으시자 변을 맛봐 병세를 살폈다고 전해질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본관은 이천(利川)이고, 아버지는 서희노(徐希怒)이다. 서약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지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림(柳琳) 의병 부대의 비장(裨將)이 되어 전쟁터로 나아갔다.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 고기를 먹지 않는 등 행동을 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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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여임(汝任)이다. 감사 신희남(愼喜男)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신광익(愼光翊), 동생은 신성필(愼聖弼)과 신성망(愼聖望)이다. 신성윤(愼聖尹)[1617~?]은 성품이 온후하고 부모님에게 예를 다하는 효자였다. 집안을 다스리는 데도 법도가 있었고, 살림이 어려웠으나 항상 예를 갖추며 지냈다. 1660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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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쌍효리에 있는 하동 정씨 집성 마을. 하동 정씨는 정도정(鄭道正)을 시조로 하고 있으나, 계통을 달리하는 세파가 있다. 한 계통의 시조는 하동 지방의 호족 출신으로 923년(경명왕 7) 후백제군이 신라를 침범할 때 하동성을 지킨 정도정(鄭道正)이고, 다른 한 계통은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금자광록대부 도첨의좌정승(金紫光祿大夫都僉議左政丞)을 지낸 정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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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호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영평리(永平里)의 영(永) 자와 회호정(回湖亭)의 호(湖) 자를 따서 영호리(永湖里)라고 했다. 영평 마을은 운월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영원히 풍요롭고 평안하라는 뜻으로 길 영(永) 자와 평안할 평(平) 자를 써서 영평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회호정 마을은 어느 도사의 말을 믿고 바다에 둑을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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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 사람들이 입었던 의복 및 이와 관련된 생활 풍속. 옷은 인간 생활을 영위하고 필수적으로 몸을 보호하며 예의를 갖추는 데 필요한 것으로 오랜 세월과 더불어 고유한 현상을 지니면서 변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는 고대로부터 조선 시대까지 남자는 바지·저고리, 여자는 치마·저고리를 기본으로 하는 복식이 이어져 왔다. 개항기 이후에 외래 문물의 유입과 서구화로 급격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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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무신·의병장. 이유길(李有吉)[1576~1619]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으며, 명나라 원군으로 출정하여 후금과 싸우다 요동백(遼東伯) 김응하(金應河)와 함께 전사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지(有之)이다. 할아버지는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에 책봉된 이후백(李後白),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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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무신·의병장.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응상(應祥)이다. 아버지는 충순위를 지낸 전방필(全邦弼)이며, 형제로는 전몽일(全夢日), 전몽진(全夢辰), 전몽태(全夢台)가 있다. 전몽성(全夢星)[1561~1597]은 1583년 무과에 급제하여 현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초토사 고경명(高敬命) 휘하에서 금산 전투에 참전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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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전몽성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전몽성(全夢星)[1561~1597]의 본관은 천안(天安)이고,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 군기시 주부(軍器寺主簿) 등을 역임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함께 금산 전투에 참전하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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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섭을 도시조, 전낙을 중시조로 하고 전승문, 전승무 형제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천안 전씨(天安全氏)는 조선 시대 영암 지역의 유력한 세거 사족으로, 1504년(연산군 10) 전승문, 전승무 형제가 강진군 퇴동 마을에서 서호면 엄길촌에 입향한 이후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다. 입향조 전승문의 맏아들인 전윤은 흥양 현감과 사헌부 감찰을 역임하였으며, 충순위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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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가운(嘉運), 호는 고죽(孤竹)이다. 아버지는 평안도 병마절도사, 영변대도호부사(寧邊大都護府使)를 역임한 최수인(崔守仁)이다. 아들은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최운서(崔雲瑞), 최구서(崔龜瑞), 최인서(崔麟瑞)이다. 최경창(崔慶昌)[1539년~1583년]은 학문과 문장에 능하여 백광훈(白光勳)[1537~1582], 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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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정를 시조로 하고 정의중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하동 정씨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영암 입향조는 장령공파의 정의중(鄭宜仲)이다. 하동은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동 정씨는 본관을 같이하면서 계통이 다른 세 파가 있다. 한 계통의 시조는 하동 지방의 호족 출신으로 923년(경명왕 7) 후백제군이 신라를 침범할 때 하동 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