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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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있는 대(臺). 경파대는 조선 고종조 사인(士人) 정임교(丁壬敎)가 향토의 사우(士友)들과 수창(酬唱)하던 승경지(勝景地)다. 정임교는 이황(李滉)의 문인인 고암(顧庵) 정윤희(丁胤禧)[1531~1589]의 후손으로, 자는 남서(南瑞), 호는 매촌(梅村), 일명 규열(奎烈)이라고도 하며, 효행으로 이름난 인물이다. 정임교는 양산향교의 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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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준여(俊如), 호는 둔재(鈍齋). 제숙공(齊潚公) 김곤(金稇)의 후손이다. 형은 고종 대에 무과에 합격하여 영장(營將)을 지내고 장수하여 정헌대부(正憲大夫)의 품계를 받은 김재현(金載鉉)이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중형(仲兄) 김재현을 부모처럼 섬기며 학문을 연마하였다. 1872년(고종 9) 흉년이 들자 사재를 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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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정여(鼎如), 호는 암서(巖棲). 제숙공(薺肅公) 김곤(金梱)의 후손이다. 집안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일찍부터 학문이 깊었다.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었으며, 말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였다. 고종(高宗)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조선시대 각 진영의 으뜸 장수인 영장(營將)으로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수직(壽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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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유학자. 자는 여윤(汝胤), 호는 경산(耕山). 나이인(羅以仁)의 후손이다. 성품이 엄격하면서도 너그럽고 온화하였으며, 마을에서 유학자의 본보기가 되었다. 고종(高宗)이 나라 일을 살피기 위해 돌아다닐 때 불러서 마주 대하였다.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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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 출신으로 일제에 저항한 인물들. 양산 지역에서의 본격적인 항일 독립 운동은 1919년 3·1운동 이후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양산 지역에서는 인근의 밀양이나 울산 지역에서처럼 3·1운동을 주동적으로 이끈 비밀단체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윤현태와 같은 선각자들이 조선국권회복단에서 활동한 만큼 윤현태의 영향을 받은 지인과 후배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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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삼계1마을은 삼계마을에서 분동되었다고 하여 삼계1마을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한편 본 마을의 명칭을‘삼계’라고 칭한 것에 대한 유래나 문헌적 자료가 없어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통도사 뒷산인 영취산에서 발원하여 마을 앞을 흐르는 양산천, 천성산 지푸네골에서 발원한 시내, 내석 마을에서 발원한 내석천 이 세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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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에 있는 경주김씨 재실. 경주김씨 문간공파(文簡公派)의 후손들이 조선(祖先)의 음덕을 기르기 위하여 1995년 10월 10일에 준공한 재실이다. 「상인재창건기」에 따르면, 상인재는 정족산 아래 장군등(將軍嶝) 기슭에 1995년 10월 10일에 준공한 전통 한옥 건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경주김씨 문간공파는 신라 경순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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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에서 활동한 문신. 송정렴의 정치적 행적은 송시열에 대한 치죄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숙종 즉위 초에는 남인이 정국을 주도하였고 이에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장악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송시열이다. 1680년(숙종 6)에 경신대축출이 일어나 서인이 정국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후의 송정렴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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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척화비. 조선 후기 고종 때 프랑스와 미국은 천주교 탄압과 통상 문제 등을 빌미로 강화도를 침범하여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를 일으킨다. 이들을 물리친 흥선대원군이 제국주의의 통상 요구를 강하게 거부하고, 안으로는 천주교 탄압에 대한 의지를 굳히면서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비의 앞면에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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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880년(고종 17) 통도사 백련암에서 간행된 불교 경전.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화엄경』과 함께 한국 불교 사상 확립에 큰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법화경』의 주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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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에 있는 대웅전과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신라시대 석조 계단.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이곳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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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내송리에 있는 김해김씨 삼현파(三賢派)의 재실. 김해김씨 삼현파의 중시조인 정성헌 문정공 김관(金管)의 15세손인 가선대부 김경구(金景九)의 위패를 모시는 재실이다. 영모재(永慕齋)라고 한 것은 조상의 은덕을 영원히 사모하겠다는 뜻이다. 조상 중에 둔재 김재복(金載馥)과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후손들이 영모재를 건립한 듯하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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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중백(仲伯), 호는 소파(小波). 아버지는 고종 때에 가선내장원경(嘉善內藏院卿)과 특진관(特進官)을 지낸 오기영(吳璣泳)이며, 형은 고종 때에 진사에 합격하여 통정비서승(通政秘書丞)을 역임한 오덕근(吳德根)이다. 오창근은 음직으로 관료에 진출하여 장릉참봉(章陵參奉)과 승훈랑(丞訓郞)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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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시에 원동관이 위치한 곳에 있었던 나루. 양산 지역에서 밀양으로 건너가던 나루로, 원래는 원동관이 있던 곳이라 원동이라 불렸고, 원댕이, 원리라고도 불렀다. 원동은 신라와 가락국의 국경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래서 이곳에 작원관원(鵲院關院)을 두고 육로와 뱃길을 감독, 관리하였다. 그래서 ‘원이 자리한 마을(洞)’이라는 뜻의 ‘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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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성서(成瑞). 진사 윤소(尹沼)의 7세손이다. 윤소는 1631년(광해군 5)에 진사과에 합격한 인물이다. 윤창응은 고종 때에 음직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1898년(고종 35)에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역임하였고, 1907년(순종 1)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의정부총무국관보과(議政府總務局官報課)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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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활동하며 화엄종을 개창한 승려. 신라 625년(진평왕 47)에 태어나 702년(성덕왕 1)에 입적하였다. 성은 김씨이며, 김한신(金韓信)의 아들로서 계림부(鷄林府) 사람이다. 의상대사는 19세 때 황복사에서 출가하였으며, 출가한 지 얼마 안 되어 원효(元曉)와 함께 중국으로 가던 중 요동(遼東)에서 고구려 군에게 붙잡혀 정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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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의 선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진(元眞), 호는 우남(愚南).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양산에서 학행으로 이름을 얻은 사람으로, 총명하고 뛰어났으며 학문에 뜻을 두었다. 서당을 세워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가난한 친구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도와주기를 좋아하였다. 고종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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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조선 말기 영의정 이유원(李裕元)을 기리는 영세불망비. 고종의 특별한 신임을 받아 영의정이 된 이유원이 덕치에 힘써 양산 고을 백성들이 온전히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 양산시 교동에 있는 양산향교 앞 양쪽 비석군 가운데 왼쪽 비석군의 뒷줄, 정문 담장으로부터 5번째에 놓여 있다. 비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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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있는 통도사는 우리나라 삼보 사찰 중의 하나로서 양산 예술혼의 뿌리이다. 양산의 전통 예술을 대표하는 「양산사찰학춤」도 통도사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양산사찰학춤」은 신라 646년(선덕여왕 15) 통도사가 창건된 이래 불교대제, 영산재, 수륙재, 생전예수재, 종무대재 때 의례 행사무로 시작되어 통도사 승려들을 중심으로 현대까지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