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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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景尹 |
이칭/별칭 | 상지(尙之),귀은(龜隱),임경우(任景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602년 - 임경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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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23년 - 임경윤 성시 급제, 급제 취소 |
몰년 시기/일시 | 1666년 - 임경윤 사망 |
출생지 | 구지산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구련리 |
묘소|단소 | 선산 주아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 |
사당|배향지 | 귀은재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구련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아주(鵝洲) |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풍천(豊川). 초명은 경우(景雨), 자는 상지(尙之), 호는 귀은(龜隱). 기자전(箕子殿) 참봉 임희겸(任熙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성부 우윤 임훈(任勳)이고, 아버지는 주부 임내중(任乃重)이며, 어머니는 증 승지 신흘(申仡)의 딸 아주 신씨(鵝洲 申氏)이다. 부인은 참봉(參奉) 박진경(朴晉慶)의 딸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활동 사항]
임경윤(任景尹)[1602~1666]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특하여 8세에 문장의 의미를 깨달았으며, 경학과 문장이 날로 발전하여 고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16세에 향해(鄕解)[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장인이 장현광(張顯光)의 사위로, 그를 배행하며 학문과 언행을 본받게 되었다고 한다.
1623년(인조 1) 발해(發解)[향시 초시 합격] 후, 성시(省試)에 급제하였으나 대신(臺臣)이 근래 과거 시험장에 세력을 믿고 자제와 수종인을 함부로 들어오는 폐단이 있다며, 파방(罷榜)[합격 취소]을 청하는 계문을 올려 급제가 취소되었다. 이 해는 인조 즉위 직후로 광해군 연간 과거 급제자에 대한 합격 취소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성시 급제가 취소된 후, 그는 과거의 뜻을 버리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주력할 것을 다짐하였다. 이에 구산(龜山)[현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구련리] 아래에 서실(書室)을 짓고 문중 자제들과 학규(學規)를 세우니, 배우러 오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1666년(현종 7)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그가 살았던 구련리에 귀은재(龜隱齋)가 있다. 후손들이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보이는데 건립 시기는 미상이며, 해방 이후 지금의 위치인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구련리로 이건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