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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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木和- |
영어공식명칭 | Mokhwa-maeul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검바위1로 3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남 |
[정의]
경기도 시흥시 은행동에 있는 자연 마을.
[개설]
서울 목동 철거민들이 정부의 보상금을 받아 1986년 입주한 연립주택 마을로, 주위의 복음자리마을·한독마을과 더불어 하나의 공동체로 생활하였다.
[명칭 유래]
시흥시 은행동에 철거 이주민들이 새롭게 집단 주택을 건설하면서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화합하자는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1980년대 중반 서울시 목동 철거가 이루어지면서 이주민 36세대를 서울시 강서구청과 시흥시가 신천동 한독마을 공터에 합동으로 임시 천막을 지어 거주하게 하였다. 이후 이들이 입주할 건물 3개 동 105세대가 지어졌고, 1986년 9월에 철거민들이 입주하여 조성한 마을이 목화마을이다. 처음으로 정부에서 보상금을 받아 입주한 사례로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입주 예정자들과 복음자리마을, 한독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상량식을 대신하는 미사를 올리기도 하였다.
목화마을 주민들은 목화마을 주민자치위원회를 결성하여 운영하였다. 기존에 자리를 잡은 복음자리마을, 한독마을과 더불어 목화마을도 한 공동체로 인식하며 희로애락을 함께하였다. 목화마을 형성은 기존에 입주한 한독마을 입주민과 함께 지역에 인구가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 건축 당시에 지하에 세를 살았던 입주민[1966년생, 여]의 구술에 의하면, 22살[1987년]에 월세로 반지하에 들어갔는데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가 5만 원이 안 되었다고 한다. 화장실은 공중 화장실을 사용했으며 방 한 칸, 주방 겸 거실, 연탄 보일러실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월세 계약은 목화마을 주민자치위원회와 했다고 한다.
‘ㄷ' 자 건물 형태인 목화연립은 이웃집의 드나듦이 보여 사생활 보호는 어려웠어도 이웃 간의 소통이 수월하기도 하고 치안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인근 공장에 근무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이곳에 입주하게 된 청년들은 작은자리회관을 통하여 단오제 행사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 행사에 참여하면서 공동체 정신을 키웠다고 한다. 이후 주변에 저층 아파트들이 들어섰고 복음자리마을과 한독마을도 그 형태를 잃어버리고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목화마을은 목화연립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연환경]
목화마을 북서쪽으로는 소래산이 자리하고 서쪽으로는 신천, 동쪽으로는 멀리 은행천이 흐른다.
[현황]
목화연립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주변의 한영아파트, 연희아파트, 극동아파트와 더불어 은행동 주민들이 살아가는 주거 단지의 기능을 하고 있다. 주변에 검바위초등학교와 소래중학교, 소래고등학교가 있다. 골목 주변은 중소기업들이 입주하고 있고, 낡은 개인 주택들은 모두 다가구 주택으로 변모하였다. 노후된 건물이지만 은행동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근처로는 마을버스 1번이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