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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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閥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고려 |
집필자 | 이우석 |
[정의]
인주 이씨, 안산 김씨를 포함한 고려시대 시흥 지방의 지배 세력.
[개설]
고려시대에는 신라와 달리 이성 귀족(異姓貴族)들에 의한 정치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은 호족이었던 시절의 출신지를 본관(本貫)으로 칭하였고, 본관은 그들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자연히 문벌(門閥)이 중시되었고 호적마저도 평민과는 별도로 작성되었다. 문벌을 중시했다는 특징을 고려하여 고려의 새로운 이성 귀족들을 흔히 문벌 귀족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들 문벌 귀족들이 국정을 주도해 나갔다는 점에서 고려를 문벌 귀족의 사회라고 일컫는 것이다.
고려시대에 오늘날의 시흥 지역 지방 통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던 문벌로는 인주 이씨(仁州李氏)와 안산 김씨(安山金氏) 가문이 있다. 이들의 세력권은 지금의 경기 남부의 해안 지역으로 아래로는 안성·평택·오산·수원을, 위로는 인천·김포를 경계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전통 지리 개념으로는 안성 칠장산에서 김포 문수산에 이르는 한남정맥의 수암봉에서 철마산에 이르는 해안 지역에 해당한다. 한남정맥의 위쪽 경계인 철마산에서 갈라진 지맥 가운데 문학산이 위치하고 있고, 이 일대가 인주 이씨 가문의 세력 거점이었다. 또한 아래쪽 경계인 수암봉에서 갈라져서 군자봉에 이르는 지맥 일원에 안산 김씨 가문의 근거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주 이씨와 안산 김씨는 혼인을 통해 인척 관계를 맺고 왕실과도 통혼권으로 연결되지만, 그 출자(出自)·정치적 성격·세력권에서는 서로 지향점을 달리하는 독자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주 이씨는 가락 김씨(駕洛金氏), 가락 허씨(駕洛許氏)를 출자로 하여 중국과의 사행(使行)을 통해 세력 거점을 확보하고 부평·과천·한양 등 한강 유역 세력과 연대하는 한편, 한강·임진강을 넘어 예성강가의 왕도(王都) 개성으로 북상하는 정치적 지향점을 보인다. 이에 반해 안산 김씨는 신라 왕실인 경주 김씨(慶州金氏)를 출자로 한 몰락한 왕실 후예로 머물러 살 만하거나 살기 좋은 곳를 찾아 정착하면서 형성되었고, 수원 지역과 동일한 정치 세력권을 이루면서 안성천, 호서정맥을 넘어 금강을 경계로 한 공주 지역 등으로 남하하는 정치 성향을 보여준다.
[인주 이씨]
인주 이씨의 자연적 근거지인 소성현[지금의 인천광역시 남구]은 고려 초기 그 읍세가 호구 약 1,500호, 간전(墾田) 약 1,500결 정도 되는 읍으로, 주현(主縣)인 과주를 매개로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 정치 권력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소성현의 유력 가문인 인주 이씨의 선계는 신라의 대관(大官)이었다. 원래 가락 허씨였는데, 756년 신라 경덕왕 때 허기(許奇)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공을 세워 중국 당나라의 현종으로부터 이씨 성을 하사받았다. 허기는 신라로 돌아온 후 이름을 이허기로 바꾸고, 인천 지역을 본관으로 하여 가문을 세웠다.
이허기의 자손 이허겸(李許謙)은 안산현 출신인 김은부(金殷傅)의 장인이다. 김은부의 세 딸은 현종의 비로 원성후(元成后), 원혜후(元惠后), 원평후(元平后)가 되었다. 이허겸의 손자인 이자연(李子淵)은 딸 셋을 모두 문종의 비[인예왕후(仁睿王后), 인경현비(仁敬賢妃), 인절현비(仁節賢妃)]로 들여 세력을 장악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다. 이자연의 맏딸 인예왕후는 순종, 선종, 숙종, 대각국사 의천(義天) 등을 낳았다. 또한 이자연의 아들 이호(李顥)의 딸이 순종의 비가 되었고, 이호의 아들 이자겸(李資謙)의 딸들이 예종과 인종의 비가 되는 등 왕실과 통혼하였다.
[안산 김씨]
안산 김씨의 근거지인 안산현[지금의 경기도 시흥시와 안산시]은 인주 이씨의 근거지인 소성현과 거의 엇비슷한 읍세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인주 이씨와 안산 김씨의 통혼도 이러한 조건에 힘입었을 것이다. 안산현의 유력 가문인 안산 김씨의 선대에 대한 기록은 정사(正史)에서 찾을 수 없지만 시흥 군자봉 성황제, 잿머리 성황당에서의 서희(徐熙) 설화 등으로 유추해 볼 때 그 출자를 경주 김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안산 김씨로 정사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는 김긍필(金兢弼)이다. 김긍필의 아들 김은부는 현종 초에 공주절도사(公州節度使)가 되었는데, 이때 거란의 침입을 피해 온 왕을 극진하게 대접하고 장녀를 시집보내면서 형부시랑(刑部侍郞)에 제수되었다.
김은부는 3녀 2남을 두었는데, 세 딸 모두 현종의 비가 되었다. 장녀 원성후[원성태후]는 덕종, 정종, 인평왕후(仁平王后), 경숙공주(景肅公主)를 낳았다. 차녀 원혜후[원혜태후]는 문종, 평양공(平壤公) 기(基), 효사왕후(孝思王后)를 낳았으며 삼녀 원평후[원평왕후]는 효경공주(孝敬公主)를 낳았다. 장남 김충찬(金忠贊)은 병부상서에까지 올랐고, 차남 김난원(金爛圓)은 11세에 수좌(首座) 홍수(弘睡) 밑으로 출가하고 여러 승직을 거쳐 60세에 왕사(王師) 도승통(都僧統)에 올랐다. 안산 김씨의 중앙 정계 진출과 관련해서는 김은부의 장남 김충찬이 지중추원사 병부상서에 올랐다는 기록 이후 고려시대 내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