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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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谷洞-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병권 |
간행 시기/일시 | 1999년 5월 21일 - 『장곡동의 어제와 오늘』 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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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9년 5월 21일 - 매꼴마을 유래비 제막식 개최 |
소장처 | 시흥문화원 - 경기도 시흥시 연성로 13번길 3[하중동 875-1] |
간행처 | 시흥문화원 - 경기도 시흥시 연성로 13번길 3[하중동 875-1] |
성격 | 향토지 |
편자 | 시흥시 향토사료실 |
간행자 | 시흥문화원 |
표제 | 장곡동의 어제와 오늘-조선시대 인선왕후가 살던 마을유래비 제막 |
[정의]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의 마을 유래와 역사적 인물을 다룬 향토지.
[개설]
시흥시 장곡동에 1999년 연성2지구 택지 개발 사업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자연 마을인 진말, 매골, 안골 등이 사라지게 되자 마을 유래비 건립과 함께 발간한 향토지이다.
[편찬/간행 경위]
『장곡동의 어제와 오늘』은 시흥시 장곡동의 마을 유래와 역사적 인물을 다룬 향토지이다. 장곡동은 조선시대 안산군 마유면 장하리, 도촌리, 응곡리였다가 1912년 2월 5일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7호로 안산군 내 동·리의 구역과 명칭을 변경할 때 장곡리로 합쳐졌다. 장곡리의 명칭은 장하리에서 ‘장’을, 응곡리에서 ‘곡’을 따서 지은 것이다. 이후 1914년 시흥군 군자면에 속했다가 1989년 시흥시가 승격하면서 장곡동이 되었다.
장곡동의 자연 마을은 진말, 매골[매꼴], 안골[안꼴], 섬말, 진촌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안골은 덕수 장씨(德水張氏)가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다. 덕수 장씨의 입향조는 장유(張維)의 형인 장륜(張綸)으로, 이곳에 사는 장씨는 대부분 그의 후손이다. 동생 장신(張紳)의 종택이 있었으며, 장곡동 산68번지에서 장유가 12년간 은거하는 동안 장선징(張善澂)과 인선왕후를 낳았다.
진말, 매골, 안골이 시흥시 연성2지구 택지 개발 사업으로 1996년에 폐동된 뒤 1999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중 삼성아파트가 들어선 매골은 안골 동쪽에 있고, 풍수로 보아 엎드려 있는 꿩을 매가 낚아채는 지형인 복치형(伏雉形)이므로 ‘매골[응곡(鷹谷)]’이라 불렀다. 이렇듯 택지 개발로 장곡동의 자연 마을이 사라지게 되자 시흥문화원, 시흥시 향토사료실, 덕수 장씨 안산종회가 장곡동 매꼴마을 터에 자리한 삼성아파트 앞에 삼성물산(주)의 후원을 받아 매꼴마을 유래비를 건립하면서 발간한 향토지이다.
[서지적 상황]
시흥시 향토사료실에서 기획, 제작하고 시흥문화원에서 발간하였다. 시흥문화원, 시흥시 향토사료실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장곡동의 어제와 오늘』의 규격은 국배판이고 총 15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내용]
『장곡동의 어제와 오늘』은 마을 유래비 비문(碑文) 전문, 인선왕후의 생애 및 가계도와 한글 편지, 장곡동의 인물인 조선시대 문신 장륜·장유·장선징과 독립운동가 장수산(張壽山), 고양군수를 역임한 이영호(李永鎬)가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장곡동의 전설로 노루우물에 얽힌 이야기, 홈뿌리우물에 얽힌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밖에 장곡동의 지명 유래와 함께 장유·장신의 초상화, 인선왕후와 효종의 합장릉인 영릉(寧陵), 장곡동의 잊혀 가는 옛 모습, 장곡동의 변모한 오늘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1989년 시로 승격한 시흥시는 도시화에 따른 변화가 매우 빠르며 과거 시흥시에 속했던 자연 마을들이 사라지고 있다. 따라서 시흥시의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장곡동의 마을 향토지로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