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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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1876년(고종 13)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강화도 조약 이후 서산 일대에도 예외 없이 개화의 물결이 들이닥쳤다. 당시 국가 권력의 해체 과정에서 관료들의 수탈과 약탈이 횡행했는가 하면, 대외 무역의 확대에 힘입어 만석꾼으로 성장한 부호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이른바 시대 변화에 편승하여 경제력과 권력을 거머쥔 새로운 주도 세력이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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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 불교의 중심지로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과 해미면, 예산군 덕산면에 걸쳐 있는 산.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갯가에서 바라보이는 가장 높은 산을 ‘개산’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개산은 그 지역의 해상 교통, 즉 항해와 관련하여 지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대에는 해안선을 따라 높은 산과 같은 지표를 확인해 가며 항로를 잡는 연근해 항해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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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잠홍동에 있는 지역 주간 신문. 『내포시대』는 내포 지역 주민들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지역 언론 매체가 필요하다는 뜻을 가진 지역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내포 지역을 대변하는 최초, 대표 지역 신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간되었다. 본래 『내포시대』는 박해철 발행인이 2007년 5월 21일부터 개인적으로 운영해 오던 인터넷 신문이었다.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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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0월 2일 충청남도 서산에서 인천으로 향하던 정기 여객선인 녹도환(鹿島丸)이 침몰된 사건.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철도나 1등 국도가 지나지 않았으므로 육지 교통은 불편하였으나 포구가 발달하여 근대화 이전부터 인천 등지와의 교통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1920년대 중반 서산 지역에서 가장 번성했던 포구는 팔봉면 호리의 구도포, 성연면 명천리의 명천포, 서산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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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일어난 반봉건·반외세 농민 봉기. 서산 지역은 일찍부터 동학이 왕성하던 곳으로, 1894년 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킬 때, 예산과 더불어 예포 농민군의 중심 근거지였다. 예포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운 홍주성 전투는 대단히 규모가 큰 전투였으며, 서산 지역에서는 해미성 전투와 매현 전투 등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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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와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에 걸쳐 있는 산. 뒷산의 고개는 한티, 한치, 대티, 홍주한치 등으로 불렸다. 한티, 한치, 대티는 큰 고개라는 의미이며, 홍주한치란 조선 시대 내포 지역의 중심지였던 홍주[지금의 홍성]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뒷산 밑의 삼거리라는 지명 또한 덕산과 홍성, 해미로 간다는 의미에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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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전국을 9주로 나누었다. 서산 지역은 웅천주[웅주] 소속의 부성군(富城郡)으로 2개의 영현이 설치된 가운데 해미면과 고북면 및 홍성군 갈산면 일대는 이산군(伊山郡)의 영현인 목우현(目牛縣)으로 편제되었다. 삼국 통일 후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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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풍물을 치고 풍어놀이를 벌일 때 부르는 노동요. 「배치기」는 뱃고사나 풍어제를 지낼 때, 고기 잡으러 갈 때, 고기가 많이 잡힐 때, 만선(滿船)하여 돌아올 때, 정월 초사흗날 당맞이를 할 때 등 마을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놀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이를 「붕기 타령」이라고도 한다. 신명나는 가락에 풍물과 함께 어우러져 부르는데, 이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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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백제 시대의 역사를 소재로 하여 개최하는 문화 예술 축제. 백제 닷개 내포 문화제는 약 1500년 전 백제 무령왕의 즉위식과 백제 사신 행렬을 테마로 하여 기획된 종합 문화 예술 축제이다.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에 의하면 ‘내포’란 과거 예산·당진·홍성·서산 일대를 일컫던 지명으로, 내포는 아직도 예산군 삽교읍에 자연 마을명으로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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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고려 시대에 번창한 사찰.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상왕산 기슭의 보원사(普願寺)는 서산 마애삼존불, 백제의 미소에 가깝게 위치해 있는 고려 시대의 절터이다. 고려 시대의 절터라고 말하는 이유는 현재 이 폐사지를 지키고 있는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서산 보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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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보원사는 백제 때 건립되어 신라 때 화엄 10찰의 하나였으며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존속한 서산 보원사지 옆에 위치한 사찰이다. 건립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몇 십 년 전 암자 형태로 유지되다가 2004년 12월 9일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 말사로 등록하였고 2006년 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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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동학 농민 전쟁 때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최후 전투지. 서산 지역은 일찍부터 동학이 왕성하던 곳이었다. 특히 서산 지역의 농민군은 1894년 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킬 때, 예포 농민군의 주력군 역할을 수행하였다. 예포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싸운 홍주성 전투는 전주성 전투에 버금가는 규모였다. 현재 서산시 소탐산에 위치한 매현(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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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를 비롯한 삼국 시대 백제의 서쪽 지역을 관할하였던 지방의 중심 성(城). 사비 시기[538~660] 백제는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지방 통치 제도를 개편하였다. 수도인 사비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을 5방으로 나누고, 중심 성인 방성에 군과 현급의 성을 예속 관계로 설정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서방에는 도선성(刀先城)[역광성(力光城)]이 설치되었으며, 그 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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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서산문화발전연구원에서 매년 발간하는 학술지. 『서산문화춘추』는 서산문화발전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간행해 온 학술지로 2011년에 제6권을 간행하였다. 『서산문화춘추』는 서산뿐만 아니라 예산, 홍성 등 내포문화권의 역사 문화를 고찰하기 위한 간행되었다. 서산문화발전연구원은 2004년 6월 서산 지역과 연고가 있는 국내의 주요 대학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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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음력 1월 15일과 2월 1일에 풍년을 기원하는 의례를 재구성하여 연출한 민속놀이. 서산볏가릿대놀이는 서산 지역에서 전승되는 볏가릿대 세우기와 화간제(禾竿祭) 등을 민속놀이로 재구성한 것이다. 서산볏가릿대놀이는 1985년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제2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충청남도 대표로 출연하여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면서 전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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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절터. 서산 보원사지(瑞山普願寺址) 사역 내에 있는 서산 보원사지 석조(瑞山普願寺址石槽)[보물 제102호],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瑞山普願寺址幢竿支柱)[보물 제103호],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瑞山普願寺址五層石塔)[보물 제104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普願寺址法印國師塔)[보물 제105호]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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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명승 8개소. 조선 시대의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는 서산을 비롯한 내포(內浦) 지역의 풍요로운 물산과 아름다운 인심에 대해 극찬하고 있다.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을 총칭하여 내포라 한다. 토지는 기름지고 평탄하며 넓다. 물고기와 소금이 넉넉하여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도 많다. 서울 남쪽에 있어서 서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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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에 있는 서산 해미성당 소속 공소. 공소는 신부가 상주하는 성당과 멀리 떨어진 마을이나 소도시에서 신부의 임명을 받은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신자 공동체이다. 공소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지만 성당에 소속되며, 대개는 교우촌인 경우가 많았다. 공소에는 1년에 두 차례 ‘판공성사’[신자들이 일 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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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읍성.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은 1416년(태종 16) 이후 예산 덕산(德山)에서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이 서산으로 이설된 뒤, 1652년(효종 3) 청주로 옮겨 가기 전까지 약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던 거점성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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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시(市). 서산시는 태안반도에 속하는 지리적인 이점과 최근의 대산항 건설 및 서해안고속국도 개통이 맞물려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고 있어 서해안 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도시이다. 가야산 인근의 내포 지방 문화가 발전한 지역이며, 백제 조상미술의 선진 지역이다. 서산시를 상징하는 새는 가창오리와 장다리물떼새이다. 가창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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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음력 1월 15일에 볏가릿대를 세우고, 음력 2월 1일 볏가릿대를 내리는 볏가릿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가정의 평안을 축원하는 의례와 놀이. 충청남도 서산시를 비롯한 내포[충청남도 서북부 가야산 주변] 지역에서 가장 특징적인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 및 이월 초하루 민속[음력 2월 1일]은 볏가릿대를 세우고 내리는 전통이다. 볏가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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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해미읍성에서 매년 6월에 개최되는 역사 문화 축제. 해미읍성 축제는 서산시에서 2000년부터 매년 6월에 개최하는 지역 축제로 해미읍성을 중심으로 서산 일대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문화재, 민속 그리고 주요 인물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옛날 병영성의 특성을 살린 국내 유일의 ‘병영 체험 축제’라는 것이다.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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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신종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제도 종교에 비해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종교로 신흥종교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신종교는 대체로 19세기 말부터 발생하였으며, 사회적 변화 및 혼란에 따른 민중의 구원 의식의 발로와 기존 종교의 설득력 상실 등으로 이를 보완하는 의미에서 등장한 경우가 많았다. 서산 지역에서도 1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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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판소리 명창 겸 가야금 연주자. 본관은 청송. 아버지는 피리와 퉁소에 능했던 심팔록이다. 아들은 판소리 명창 심재덕(沈載德)[1899~1967]이고, 딸은 심매향(沈梅香)[1907~1927]이다. 막내아들은 심화영(沈嬅英)[1913~2009]으로 ‘중고제의 마지막 계승자’로서 2000년 충청남도 무형 문화재 제27호 승무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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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어업 조합. 『충청남도도세일반(忠淸南道道勢一斑)』 민적(民籍) 자료를 참고하면 서산군 바닷가에 인접한 면에 많은 어업 인구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내포라는 별칭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서산군에는 소규모의 포구를 중심으로 연안 어업이 발달하였다. 1908년 서산군의 어업자는 71호에 238명, 태안군은 117호에 375명, 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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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천주교 무명 순교자들의 합장묘. 해미천이 지나는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일부와 조산리 일대는 천주교 박해기 천주교도들의 생매장 처형지로 알려져 왔다. 1935년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이루어진 발굴 작업에서는 상당수의 유골이 발견되어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순교하여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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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와 문화. 한반도의 중서남부에 돌출한 태안반도에 자리한 서산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선진 문물이 해양을 통해 충청 내륙 지방으로 전달되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다수의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으며, 법인국사 탄문, 정인경(鄭仁卿)[1237~1305], 유숙(柳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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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운천면(雲川面)에서 ‘운’자와 부산면(夫山面)에서 ‘산’자를 따서 운산면(雲山面)이 되었다. 운산면이라는 이름이 가야산에서 유래하였으며 구름 속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 가야산과 전혀 관련이 없이 생겼다. 운산면은 서산시에서 연혁이 가장 복잡한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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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윤찬구 가(家)에 소장되어 있는 윤시영(尹始永)의 일기와 관련 문서. 윤시영(尹始永)[1855~1913]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1891년(고종 28) 문과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다 1902년(광무 6) 함흥 민요(民擾)에 안핵사(按覈使)로 파견되어 수령의 장부(臧否)를 조사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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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충청남도 서산시의 절대적 위치 즉, 수리적 위치는 북쪽 끝이 북위 37°00′[서산시 대산읍 화곡리], 남쪽 끝이 북위 36°36′[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동쪽 끝이 동경 126°39′[서산시 운산면 와우리] 서쪽 끝이 동경 126°22′[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이다. 서산시의 지리적 위치는 충청남도의 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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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왕조의 지방지배체제는 ‘갑오·을미개혁’ 이후 커다란 변화를 거쳤다. 『서산군지(瑞山郡誌)』에 따르면, 1895년 부(府)·군(郡)·현(縣)제를 일체 폐지하여 군으로서 명칭을 통일하고 각 군을 군세(郡勢)에 따라 4등급으로 분류하였다. 그런 뒤 군에는 군수를, 면에는 면장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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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와 조산리에 있는 천주교의 성지. 해미순교성지는 한국 천주교회 사상 가장 중요한 순례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숨져간 이른바 ‘무명 순교자’가 가장 많은 곳이며, 그 처형 방법도 자리개질·생매장과 같이 가장 참혹했다. 조선 후기 충청도 서북 지역의 군사와 치안을 함께 관장하던 해미진영(海美鎭營)은 이 지역의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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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를 거쳐 천안과 장항을 잇는 철도. 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서산 등의 내포 지역은 일제 강점기 철도 교통의 사각지대에 속하였다. 1931년 8월 천안과 장항을 잇는 충남선[현 장항선]의 완공으로 기존에 바닷길을 통해 인천을 경유하던 서산 지역의 물산이 철도를 통해 장항이나 경성[천안 경유] 방면으로 이출되기 시작하였다. 서산 지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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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사찰이 없어지고, 그 터만 남은 곳. 절터는 과거의 융성했던 사찰의 모습은 사라지고 초석이나 유물만 남아 있는 곳이다. 서산 지역 절터의 대부분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해당되는 유적으로, 건물의 터였던 곳에는 불상을 비롯하여 축대, 초석, 기와, 자기 등의 유물이 확인된다. 확인된 절터들은 문헌 기록상에 전하지 않던 곳이다. 대부분이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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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내포 지역을 중심으로 전해 내려오는 판소리 유파. 중고제 판소리는 동편제와 서편제의 중음 판소리로서 경기도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판소리를 일컫는다. 판소리는 지역적으로 구분하는데, 잘 알려져 있는 동편제와 서편제는 전라도 섬진강을 중심으로 나뉜다. 강의 동쪽의 판소리는 동편제로 칭하고, 서쪽의 판소리는 서편제라고 칭한다. 중고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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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중고제 판소리 보존 단체. 경기도와 충청도 일원에서 불리던 판소리를 중고제로 칭한다. 그러나 중고제 판소리는 동편제와 서편제라는 판소리계의 큰 흐름과 달리 충청남도 무형 문화재 제27호 기능 보유자 심화영(沈嬅英)에 의해 겨우 그 명맥만 유지되고 있으며 소리꾼은 물론이고 학계에서도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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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음력 정초에 지신에게 지내는 제사. 지신제는 음력 1월 초에 지신(地神)에게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이다. 서산 지역에서는 집안의 뒤꼍에 지신이 깃들어 있다고 하여 극진하게 위한다. 정초[음력 1월 초]에 지신제를 잘 모시면 집안에 드는 1년 액운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정에 따라서는 지신을 성주보다 오히려 더 높은 신으로 받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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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형성되어 있는 지표면의 기복 형태. 서산시는 산지가 대부분 300m 내외로 고도가 낮고 저평한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서산시에서 가장 높은 산인 가야산의 서쪽은 해안 평야와 해안 지형들이 발달해 있고, 동쪽으로 평야가 펼쳐져 있다. 북쪽에는 연화산과 팔봉산 등이, 남쪽에는 도비산 등이 형성되어 있다. 이들 산지로부터 북쪽으로는 대산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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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천도교 사무 행정 기관. 천도교 종리원은 제3대 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사후 중앙과 지방에 있었던 천도교의 사무 행정 기관이었다.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내포 지역 농민 전쟁의 진원지라 이야기 될 만큼 동학의 교세가 강력한 지역이었으며, 이런 교세는 천도교 창립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1910년대 말부터 서산 천도교 종리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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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1784년(정조 8)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된 이래 가장 왕성한 포교가 이루어진 곳은 충청도 내포 지역이었다. 한편 1785년(정조 9)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으로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韓佛修好通商條約)이 체결될 때까지 백 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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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형성된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공동체 마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자 신자들은 보다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이러한 교인들이 모여 신앙 공동체를 이룬 곳이 교우촌이다. 천주교 박해기에 교우촌은 서양인 선교사들의 은거지와 신자들의 피신처 역할을 하였으며, 박해 이후에는 그대로 공소로 발전하였다. 이들 교우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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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천주교 박해로 인하여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서 발생한 천주교인들의 순교 사건. 조선 후기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확산되면서 내포(內浦)[충청남도 서북부 가야산 주변을 통칭하는 지역] 지방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가 발생하였다. 호서좌영(湖西左營)이 자리했던 해미에서는 문헌상 179명의 순교자가 확인되고 있으나, 이름도 남기지 못한 무명 순교자가 더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해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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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서산 해미읍성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충청병마절도사영(忠淸兵馬節都使營). 조선 초기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은 원래 덕산(德山)에 설치되었다가,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한 방비와 서해안의 수호가 중요시되면서 1417년(태종 17) 이후 해미로 이설되었다. 해미로 옮겨진 이후, 충청병마절도사영으로 개칭되었고 1652년(효종 3)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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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년 태종이 현재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일대인 해미현에 머문 사건. 1416년(태종 16) 2월 16일 태종이 도비산에서 사냥을 하고 해미현에 머물렀다. 이 기록은 『태종실록(太宗實錄)』에 단 한 줄의 기록으로 남아 전할 뿐이다. 『태종실록』에 왕이 도비산에 사냥을 나왔다가 해미현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보인다. 당시 순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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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대치리에서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로 넘어가는 가야산의 한 고개로 천주교 신자들이 압송되던 길. 내포 지방은 가야산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여러 고을들을 포함한 지역을 이른다. 따라서 내포의 각지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해미 진영으로 압송되어 가기 위해서는 가야산을 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삽교천 인근에서 체포된 교인들이 해미로 압송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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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1월 충청남도 서산의 해미성에서 벌어진 내포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 1894년 이른바 예포[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봉기를 일으킬 때, 서산 지역의 동학 교도들은 예포 농민군의 주력군 역할을 수행하였다. 홍주성 전투는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동학 농민 전쟁사에 새롭게 기록해야 할 중요한 전투였다.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한 농민군은 이후 해미성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