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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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경춘(韓慶春)·한여현(韓汝賢) 부자가 편찬한 충청남도 서산의 사찬 읍지. 『호산록(湖山錄)』은 1619년 서산의 사족[문벌이 높은 집안]인 한경춘·한여현 부자(父子)가 편찬한 사찬 읍지로, 1600년대 이전 서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조선 초기 사찬 읍지가 흔치 않은 가운데 특히 충청남도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사찬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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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있는 지방 어항. 간월도(看月島)에 있는 간월암(看月庵)은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무학대사가 어렸을 때 공부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나, 조선 초기까지는 왜구 출몰에 따른 도서 거주 금지 조처에 의해 거주자가 없었다. 1530년(중종 25)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간월도가 추가로 기록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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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갈현리(葛峴里)의 ‘갈’자와 산지동(山芝洞)의 ‘산’자를 따서 갈산리(葛山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갈우고지[葛峴里], 회츈골[會仙洞], 무르틔[山芝洞], 좌셰[佐世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갈산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회선동리와 좌세리(佐世里) 지역이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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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강촌(江村)의 ‘강’자와 서당동(書堂洞)의 ‘당’자를 따서 강당리(江堂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강촌, 셔당동[書堂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강당리는 조선 시대에 화변면 우천리 지역이었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시 강촌, 시동(詩洞), 서당동으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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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1876년(고종 13)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강화도 조약 이후 서산 일대에도 예외 없이 개화의 물결이 들이닥쳤다. 당시 국가 권력의 해체 과정에서 관료들의 수탈과 약탈이 횡행했는가 하면, 대외 무역의 확대에 힘입어 만석꾼으로 성장한 부호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이른바 시대 변화에 편승하여 경제력과 권력을 거머쥔 새로운 주도 세력이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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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파도리(古波島里)는 본래 파지도(波知島)라 하였는데, 1974년에 간행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고려 때 파지도영(波知島營)을 두었다가 조선 태종 때 호리로 수영을 옮기게 되면서 옛파지섬 또는 고파지도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세조실록(世祖實錄)』에 “파지도만호(波知島萬戶)의 수영이 바다 가운데 30리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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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도의 수군 편제에 따라 서산에 속해 있던 방어 시설. 고려 후기 서해안 지역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여 1373년(공민왕 22)에는 태안군이 폐군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서해안 일대에 군사 시설을 마련하면서 파지도에 성을 쌓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 들어와서는 고파도에 파지도만호진을 설치하였고, 태종 때에 파지도만호영을 태안 호리로 옮기면서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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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자연환경과 풍속, 사적 등을 경험하며 유람하는 일. 서산시에는 131㎞의 해안선, 가로림만의 갯벌, 서산AB지구의 철새 도래지, 가야산 등의 자연 자원이 있다. 또한 충청남도의 북서부에 돌출한 태안반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예로부터 대륙 문화 수입과 교류의 장으로 다양한 문화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내포 문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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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시화(市花)로, 쌍떡잎식물 국화목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서산시는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되고 있는 국화가 지닌 인정 어린 순수함이 서산시의 이미지를 상징하여 시화로 정하였다. 한편 서산시 고북면에서는 매년 10월 말에서 11월에 국화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10만㎡ 규모의 전시장에서는 노란 국화 꽃밭을 배경으로 가을 햇살을 잔뜩 머금은 사과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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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에 있었던 운하. 고려에서 조선까지 수도가 개성과 한양에 설정됨에 따라 서해 연안 해로의 운송로 기능은 극대화되었다. 당시 세곡과 각종 공납품의 가장 중요한 공급지는 경상, 전라, 충청의 삼남 지방로서 물류의 대부분이 태안반도 연안을 경유하여 개성 혹은 한양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이 조운의 과정에서 태안반도 안흥진 앞의 안흥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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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군(郡).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郡)·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서산시 일대는 기군(基郡)으로 편제되었다고 여겨진다. 기군에는 성대혜현(省大兮縣), 지육현(知六縣)의 2개 성(城)이 예속되었다. 삼국은 고대 국가로 발돋움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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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 자는 명옥(明玉), 호는 한월당(寒月堂). 아버지는 김덕재(金德載)이고 어머니는 연안 이씨(延安李氏)로 이승원(李昇遠)의 딸이다. 아들은 김홍제이다. 김상정(金商玎)[1875~1954]은 1918년 고종 황제의 승하 소식을 듣고 손가락을 끊어 ‘대명의리(大明義理)’라는 혈서를 써서 깃발을 만들어 달았다.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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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에 은거하였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또는 미재(美齋). 조선 개국 공신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남식(南烒)이고 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남일성(南一星)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로 권박(權瞨)의 딸이다. 남구만(南九萬)[1629~1711]은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와리에서 태어났으며, 송준길(宋浚吉)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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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 불교의 중심지로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과 해미면, 예산군 덕산면에 걸쳐 있는 산.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갯가에서 바라보이는 가장 높은 산을 ‘개산’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개산은 그 지역의 해상 교통, 즉 항해와 관련하여 지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대에는 해안선을 따라 높은 산과 같은 지표를 확인해 가며 항로를 잡는 연근해 항해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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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제와 식민지 지주들의 억압과 수탈에 대해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농민 저항 운동. 1930년대 초반 공황의 여파로 농민들의 경제생활이 열악해지자 전국적으로 대중 투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예를 들면 소작 쟁의와 노동 쟁의, 부당 수세 반대 운동, 국유지 부당 불하 반대 투쟁, 호세 연납 및 채권 문서 소작 투쟁, 산림 조합 반대 투쟁, 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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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일반적으로 덕지천동(德之川洞)은 덕지내라고 불려 왔다. 덕지천이라는 길고 큰 내[川]가 구불구불 흐르면서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해서 붙여진 의미 깊은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덕지[德之川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영조 때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면 서산군 오산면 덕지천리로 54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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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독립운동가들로 국가보훈처에서 공식 인정한 인물들. 국가보훈처가 운영하는 공훈전자사료관에 탑재되어 있는 포상자 공적 조서 중 서산 출신은 147명[1명은 당진 출신자로 서산 지역에서 활동, 현 당진군 대호지면도 당시 서산군 소속이므로 합산함]으로 확인된다. 훈격별로 보면 애국장 5명, 애족장 49명, 건국포장 4명, 나머지는 대통령 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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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의 천장사에서 활동하였으며, 근대 선불교의 중흥을 이끈 대표적 승려. 본관은 여산(礪山). 법명은 월면(月面), 법호는 만공(滿空). 속세의 성은 송씨이다. 아명은 바우였으며, 행자 시절에는 도암(道巖)으로도 불렸다. 근현대 불교의 선풍을 일으킨 경허(鏡虛)의 대표적인 제자이다. 만공(滿空)[1871~1946]은 13세 때인 1884년에 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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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면 행정 자문 기구. 1917년 6월 총독부 제령[제1호]에 따라 조선면제(朝鮮面制)가 실시되면서 전국의 모든 면에 일종의 ‘법인격’[독자적인 사업 능력과 권한]이 부여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배경 아래 1920년 지방 제도 개혁 과정에서 면협의회가 설립되었다. 3·1 운동 직후인 1920년 총독부는 조선의 유력자 집단을 지배 체제 내로 포섭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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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인류 문화 활동의 소산으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문화재 보호법에 의한 지정의 유무에 따라 지정 문화재와 비지정 문화재로 구분된다. 지정 문화재는 학술적·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와 시·도 문화재 보호 조례에 의한 시·도 지정 문화재, 법령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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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미술사는 조선 3대 화가의 한 사람인 안견(安堅)과 그의 작품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빼면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안견이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서산시 지곡면에는 안견기념관이 있고 매년 안견 예술제와 미술 대전이 열리고 있다. 이와 함께 서해안고속국도의 개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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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고, 밀양을 본관으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세거 성씨.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조선 전기의 각종 기록 중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그리고 『호산록(湖山錄)』의 서산 성씨조에 ‘서산의 속성’, ‘지곡의 촌성’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의 『여지도서(輿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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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관아에서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봉수는 옛날에 널리 쓰인 통신 수단이다. 이를 봉화, 봉수대, 봉화대 등이라고도 한다.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로써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신호를 보내어 변경의 위급을 중앙에 통보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고려 때부터 비롯된 봉수 제도를 이어받아 좀 더 체계적인 봉수 제도를 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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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적돌강(積乭江)에 있는 커다란 바위가 마치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부석면(浮石面)이라 하였다. 백제 시대에는 기군(基郡) 지역에, 신라 시대에는 부성(富城)에 속하였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까지 서산군(瑞山郡)에 속하였다. 본래 마산면(馬山面)이라 하여 시동(柿洞), 갈마동(渴馬洞), 월계리(月溪里) 등 11개 리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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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부성산성(富城山城) 성내에서 백제 토기편과 기와편이 다량으로 수습되어 오래전부터 삼국 시대 백제에 의해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왔고, 성내에서는 삼국 시대 유물만이 아니라 통일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물도 수습되어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된 중요한 성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성산성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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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최치원(崔致遠)을 기리는 사당. 부성사(富城祠)는 고운(孤雲) 최치원[857~?]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최치원은 통일 신라 육두품 출신의 지식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868년(경문왕 8)부터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특히 879년(헌강왕 5)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키자 종사관이 되어 「토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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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산. 옛 서산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보면 부춘산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북산이나 북주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춘산이란 이름은 1927년에 간행된 『서산군지』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호산록』이 조선 1619년(광해군 11)에 편찬된 사실을 감안하면, 부춘산이란 이름은 아마도 그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여겨진다. 부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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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산동(山洞), 내동(內洞), 부성동(富城洞)이 합해지면서 산동에서 ‘산’자와 부성동에서 ‘성’자를 따서 산성리(山城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부셩동, 산동, 내동 등의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지곡면 이살리였으나, 1895년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부성동, 산동, 내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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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3·1 운동 당시 서산에서는 12개 면에서 독립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특히 4월 4일 서산 지역 천도교인들이 주도한 대호지면 만세 사건은 상당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 대통령 윌슨이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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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교육 종사자 단체. 서산교육회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 교육의 개선과 진보를 위해 설립되었다. 학교비나 학교 조합과는 별도로 존재했던 일종의 교육 종사자 단체로서 정식 명칭은 ‘조선교육회 충청남도교육지회 서산분회’였다. 서산교육회는 1923년 6월에 설립되었으며 창립 당시 회장 1명, 부회장 2명, 평의원 약간 명이 두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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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종(明宗)의 태실과 비. 명종대왕 태실(明宗大王胎室)은 조선 제13대 임금인 명종[1534~1567]의 태를 모셨던 곳으로, 1538년(중종 33)에 건립되었다. 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셔 두는 작은 돌방을 말한다. 태를 모신 것을 기념하기 위한 비 3기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대군춘령아지씨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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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고분군.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음암 임대 아파트 신축 공사 부지에 대한 문화 유적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조사 지역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 219-2번지 일대이다. 조사 지역의 자연 지형을 살펴보면, 해발 35~50m 정도의 구릉으로 주변에 대교천이 집수되는 성암저수지가 있어 구릉과 계곡부, 평야 지대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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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읍성.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은 1416년(태종 16) 이후 예산 덕산(德山)에서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이 서산으로 이설된 뒤, 1652년(효종 3) 청주로 옮겨 가기 전까지 약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던 거점성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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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조선농회의 지부. 일제 강점기 서산 지역의 대지주들은 조선 총독부의 지도 감독 아래 농업을 개발하고, 농민을 수탈하고, 농촌을 통제하는 삼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1926년에 체계화된 이른바 계통 농회였다. 서산군 농회 역시 이러한 계통 농회의 하나이다. 주요 임원은 대부분 서산 지역의 재지 대지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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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강당리에 있는 회안대군(懷安大君)을 기리는 사당. 서산 숭덕사(瑞山崇德祠)는 조선 태조의 넷째 아들 회안대군[1364~1421] 이방간(李芳幹)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회안대군은 조선이 건립되자 회안군에 봉군되었고, 1398년(태조 7) 회안공으로 개봉되면서 의흥삼군부좌군절제사가 되었다. 제2차 왕자의 난으로 1400년(정종 2) 토산(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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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양대동에 있었던 항구. 경남철도주식회사에 의해 충남선[현 장항선]의 건설이 시작되어 1922년에 천안~온양 구간, 1931년 8월에 온양~장항 구간 노선이 개통되었다. 그러자 주로 인천을 통하던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의 물류가 철도를 통해 장항이나 경성 지역으로 이출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당시 경성과 호남 지방으로 가는 것은 천안이나 대전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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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후 이른바 ‘4대강 사업’으로 운하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연안 해로를 중요한 교통로로서 사용해왔던 만큼 운하의 필요성이 높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찍이 태안반도에 운하를 개착한 것은 매우 특이한 사건이었다고 할 만하다. 운하 건설은 1134년(인종 2)에 처음 시작되어 1669년(현종 10)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에 걸쳐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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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선성군(宣城君)을 기리는 사당. 운산면사무소의 전면 주유소 사잇길로 1㎞ 정도 가면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경로당과 마을 창고 사이에 서편으로 난 소로가 나타난다. 소로를 따라 300m 가면 우측[북쪽]에 샛길이 있는데, 선정묘(宣靖廟)는 샛길을 따라 다시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선정묘는 조선 정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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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세거 성씨는 15세기 전반까지 각 읍 성씨의 존재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사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토성(土姓), 조선 시기의 재지 세력으로 동성(同姓) 마을[집성촌]의 성씨들이 대표적이다. 세거 성씨는 전근대 사회에서 지역 사회의 토착 세력으로 향촌 사회를 좌우하며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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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소작 농민이 지주·소작 관계, 소작 조건의 개선을 위해 벌인 농민 운동. 일제는 식민지 지주제를 확립한 후 조선의 농업 개발 및 농민 수탈, 농촌 통제를 일삼았다. 이런 과정에서 조선의 농촌 사회는 자작 농민의 소작인화, 소작료의 고율화, 소작권의 불안정화, 마름의 중간 수탈 현상 등이 심화되었다. 사정이 이러하자 농촌 사회 내부에는 소작 쟁의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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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에서 송덕암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1994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130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송덕암은 해미면에서 덕산으로 넘어가는 지방도 가에 위치해 있다. 이 암자에는 미륵불을 봉안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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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설치되었던 진(鎭). 순성진(蓴城鎭)은 1397년(태조 6) 이루어진 지방 군제 개편에 따라 서해안 수호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진을 설치하고 지군사(知郡事)를 두어 관할하던 곳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적으로 시행하였는데, 이는 고려 말부터 자행된 극심한 왜적의 침입에 대처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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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해미읍성에서 매년 6월에 개최되는 역사 문화 축제. 해미읍성 축제는 서산시에서 2000년부터 매년 6월에 개최하는 지역 축제로 해미읍성을 중심으로 서산 일대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문화재, 민속 그리고 주요 인물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옛날 병영성의 특성을 살린 국내 유일의 ‘병영 체험 축제’라는 것이다.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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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 교육 운동. 일제 강점기에 보통학교라도 다닐 수 있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당시에는 대략 20~30% 정도의 아동만이 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보통학교는 공립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학부형들의 부담에 의거해 운영되었다. 사정이 이러하자 조선의 농촌에는 사설 강습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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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어업 조합. 『충청남도도세일반(忠淸南道道勢一斑)』 민적(民籍) 자료를 참고하면 서산군 바닷가에 인접한 면에 많은 어업 인구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내포라는 별칭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서산군에는 소규모의 포구를 중심으로 연안 어업이 발달하였다. 1908년 서산군의 어업자는 71호에 238명, 태안군은 117호에 375명, 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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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전개된 조선어 신문사 지방 지국의 투쟁. 일제 강점기 『동아일보』 지방판에 소개된 민원 사건으로는 1926년 1월 서산 소방조 문제 관련 민원, 1927년 6월 소작 관계 개선 문제[특히 경성 지주의 이중 운반 강요, 운반비 강요 문제]에 관한 민원, 1931년 1월 서산 지역 유치원에 관한 민원, 1930년대 초반 해미 수리 조합 문제 관련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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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와 문화. 한반도의 중서남부에 돌출한 태안반도에 자리한 서산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선진 문물이 해양을 통해 충청 내륙 지방으로 전달되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다수의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으며, 법인국사 탄문, 정인경(鄭仁卿)[1237~1305], 유숙(柳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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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역로의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역원은 전통 시대 역로(驛路)에 설치되었던 국영 숙식 시설이다. 관리가 파견되어 역마와 역로를 관할하고, 길을 지나는 관원에게 말과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공문서의 신속한 전달과 관수 물자를 운반하는 육상 교통의 핵심 기관이다. ‘역(驛)’은 대로변에 12㎞마다 설치한 교통 통신 조직이라면, ‘원(院)’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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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의 소속 군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땅. 월경지는 소속 읍과 따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군현(郡縣)의 특수 구역이었다. 월경지라는 독특한 행정 구역이 존재했던 것은 큰 고을의 물자 조달 문제와 관련이 있다. 즉 월경지는 소속된 고을과 경계를 접하지 않고 다른 지역에 동떨어져 있지만 조세는 당연히 소속 고을에서 거두었다. 이것은 과거의 연고지, 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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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孔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儒敎)는 공자 및 맹자(孟子), 주자(朱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유교에도 중심 경전이 있지만 일정한 계통을 갖춘 사원이나 교회를 만드는 것과 같은 교조화된 신앙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즉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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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문신이자 천문학자. 유방택[류방택, 柳方澤][1320~1402]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천문 지리에 밝았다. 그가 만든 역서(曆書)는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던 중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부름을 받아 천문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제작에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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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천문학자. 본관은 서령[서산(瑞山)]. 호는 금헌(琴軒). 서령부원군 유성간(柳成澗)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유굉(柳宏)이고, 아버지는 유성신(柳成臣)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손애(孫埃)의 딸이다. 자식은 유백유(柳伯濡)·유백종(柳伯淙)·유백순(柳伯淳) 세 아들과 딸 둘을 두었다. 서산의 서령 유씨는 대부분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의 셋째 아들인 유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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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문신. 유백순(柳伯淳)[?~1420]은 조선 개국 후 어지러운 정치 질서를 바로잡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학문과 경서에 뛰어나 성균관대사성을 지냈으며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또한 효경과 절의로 이름이 높았다. 본관은 서령[서산]. 호는 위촌(葦村). 아버지는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이고, 형은 유백유(柳伯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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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순부(淳夫), 호는 저정(樗亭). 아버지는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이고, 동생은 유백순(柳伯淳)이다. 유백유(柳伯濡)는 동생 유백순과 함께 이색(李穡) 밑에서 공부하였는데, 사람들은 형제를 ‘유씨쌍벽(柳氏雙璧)’이라고 불렀다. 유백유는 목은이색의 손서(孫壻)이다. 유백유는 춘추관수찬으로 박실(朴實)·김도(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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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임백(任伯), 호는 도천(道川) 또는 수본재(守本齋). 할아버지 윤응시(尹應時)는 광해군 때 공조참의에 올랐던 문인이자 관료였으며, 아버지 윤사(尹泗)는 강직한 성품과 문학적 재능으로 유명한 문인이었다. 무송 윤씨의 주요 세거지는 태안군 소원면 시목리로, 증손인 윤재(尹梓)와 현손인 윤선무(尹宣茂) 등 많은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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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송곡서원에 제향된 고려 말 충신.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후송(後松). 할아버지는 합문지후예조전서(閤門祗候禮曹典書)를 지낸 윤영찬(尹英贊)이고, 아버지는 도평의록사(都評議錄事)를 지낸 윤수균(尹守均)이다. 부인은 지안주사(知安州事)를 지낸 이광필(李光弼)의 딸 신평 이씨다. 윤황(尹璜)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살았던 문신이다. 고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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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에서 은을 캐냈던 광산. 조선 전기에 조정에서 은광을 발굴하기 위해 특별히 서산 지역에 은장(銀匠)을 보내 은을 채굴하게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17년(태종 17) 해미현 호장(戶長) 김연(金鍊)이 지곡현(地谷縣)에 은돌[銀石]이 있다고 보고하자, 관가에서 이를 확인하고 파내어 납 1근 8냥을 녹여 정련하니 백은(白銀) 1전 3푼가량이 나왔다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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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읍내동(邑內洞)은 서산의 중심지로서 조선 태종 때 쌓았다는 읍성의 내부에 있던 지역으로 성내마을, 중앙촌, 성밑마을 등의 지명에 근거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대사동면(大寺洞面)의 동문리(東門里), 군내면의 셔문리[西門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의 서산군 대사동면 읍내리, 남문원리와 군내면 노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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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의 집성촌은 고려 후기인 1300년대 후반에 형성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조선 시대에 여러 성씨가 입향하여 대대로 거주하며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920년에 발간된 『조선의 성(姓)』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성씨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한 자료로 당시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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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왕조의 지방지배체제는 ‘갑오·을미개혁’ 이후 커다란 변화를 거쳤다. 『서산군지(瑞山郡誌)』에 따르면, 1895년 부(府)·군(郡)·현(縣)제를 일체 폐지하여 군으로서 명칭을 통일하고 각 군을 군세(郡勢)에 따라 4등급으로 분류하였다. 그런 뒤 군에는 군수를, 면에는 면장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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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전국을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조선은 관군과 각처에서 모집된 의병 등이 총력전을 펼쳤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명(明)이 개입하여 조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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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 전체의 모양이 노루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노루 장(獐)자를 써서 장동(獐洞)이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오산면에 쇼장동[小獐洞], 장동[大獐洞], 왜장이[下獐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장동은 조선 영조 때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면 서산군 오산면 장동리 지역이었다.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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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 창령군(昌寧君)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세거 성씨. 전주 이씨는 서산의 유력 성씨로 회안대군(懷安大君) 이방간(李芳幹)[?~1421]의 둘째 아들 창령군[1389~?]의 후손과, 덕천군(德泉君)[정종의 10남]의 증손 변성군(邊城君) 이계연의 후손 등이 확인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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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 이전 시기의 교육. 백제가 관할했던 삼국 시대의 서산 지역 교육에 대해서는 관련 기록이 현존하지 않아 상세한 모습을 알 수 없다. 통일 신라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당시 부성군(富城郡)의 태수로 최치원(崔致遠)[857~?]이 부임했던 기록을 통하여 최치원이 당시 서산 지역의 교육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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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실직(實職) 또는 송산(松山). 고려 말의 문신인 정을보(鄭乙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공조참판에 오른 바 있는 정윤표(鄭允彪)이고, 어머니는 양주 송산 출신의 기계 유씨(杞溪兪氏)이다. 아들은 정홍인(鄭弘仁)이다. 정건(鄭謇)[1554~?]은 사헌부집의(執儀) 벼슬을 지낼 때 친족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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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출신으로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英祖)의 계비. 본관은 경주. 경주 김씨 김한구(金漢耉)[1723~1769]와 원주 원씨의 장녀이다. 김한구는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고, 황해도관찰사를 지내다 강옥 사건(姜獄事件)으로 장살당한 김홍욱(金弘郁)의 현손이다. 김한구 가문은 경주 김씨의 양대 명문으로, 추사 김정희(金正喜)를 비롯하여 8명의 정승과 정순왕후를 배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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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振忠祠)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유품.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정충신 장군 유품은 총 5종으로 영정(影幀) 1점, 갑옷 1착, 서군사명기(西軍司命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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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갑옷. 정충신 장군 유품[갑옷]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갑옷의 바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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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사명기(司命旗). 정충신 장군 유품[서군사명기]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호-3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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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영정(影幀). 정충신 장군 유품[영정]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1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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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향로(香爐). 정충신 장군 유품[향로]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4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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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향합(香盒). 정충신 장군 유품[향합]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5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향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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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 호는 지산(芝山). 할아버지는 정윤표(鄭允彪)이고,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정건(鄭騫)이다. 정홍인(鄭弘仁)은 서산 지공(芝公)에서 출생하여 지산이라는 호를 썼다. 광해군[재위 1609~1622]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인조 때 이조참판을 지냈으며,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임금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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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서산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이었던 서산군과 해미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산군과 해미현은 독자적인 역사 문화적 배경과 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서산군은 본래 백제의 기군(基郡)이었으나 통일 신라 때 부성군(富城郡)으로 고쳐졌다. 이어 고려에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지다가 지서산군사(知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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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수초(守初), 호는 용호(龍湖) 또는 정곡(鼎谷). 할아버지는 증판서 조연손(趙連孫)이고 아버지는 조준수(趙俊秀)다. 부인은 용인 이씨로 이신충(李藎忠)의 딸이다. 둘째 아들은 병조판서를 지낸 조계원(趙啓遠)이다. 조존성은 증좌찬성 조남(趙擥)에게 입양되었다. 조존성(趙存性)[1554~?]은 성혼(成渾)·박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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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행위의 총칭.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의 다양한 종교가 발달되어 있는 지역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면서 한국 종교계가 탄압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들 종교는 독립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 현재까지도 지역 문화 발전 창달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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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충청남도 도령(道令)에 따라 충청남도 서산에서 조직된 단체. 1916년 8월 충청남도 도장관 오하라 신조[小原新三]가 각 군에 훈령으로 미풍양속 보호 및 유지, 지방 개량을 목적으로 옛날부터 내려온 향약례를 모방하여 마을 단위로 진흥회를 조직하는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1926년 10월 24개 면의 진흥회 회장들이 서산군청의 농회장(農會場)에서 모여 서산군연합진흥회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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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집성촌은 혈연관계가 있는 동성(同姓)의 여러 집이 모여서 사는 곳이다. 이를 동족마을이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 특히 17세기 중엽 이후의 향촌 사회는 조선 전기와는 다른 친족 의식이 일반화되었다. 이전까지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과 공평한 재산 분배 등의 풍습에 따라 사위, 외손자 등 성(姓)이 다른 친족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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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에 있는 포구.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일대는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왜현리(倭懸里)였으며 왜구의 침입이 잦아서 조선 태종 때 도비산에서 강무(講武)[왕의 친림 하에 실시하는 군사 훈련]를 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수군의 배를 매어 두던 주사창이 있어서 주사창리라 불렸던 곳으로 300년의 전통을 자랑하며 음력 정월 초사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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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천주교 박해로 인하여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서 발생한 천주교인들의 순교 사건. 조선 후기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확산되면서 내포(內浦)[충청남도 서북부 가야산 주변을 통칭하는 지역] 지방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가 발생하였다. 호서좌영(湖西左營)이 자리했던 해미에서는 문헌상 179명의 순교자가 확인되고 있으나, 이름도 남기지 못한 무명 순교자가 더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해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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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사회 운동. 일제 강점기 때 서산은 교통이 불편하여 신문화 유입이 더딘 지역이었다. 그러나 3·1 운동 이후 보통학교 교육이 보급되고, 동경이나 경성 등지의 외지 유학생들까지 대거 귀향하면서 청년 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서산 지역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농촌 개량이나 농민 계몽을 목표로 한 실력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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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서산 해미읍성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충청병마절도사영(忠淸兵馬節都使營). 조선 초기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은 원래 덕산(德山)에 설치되었다가,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한 방비와 서해안의 수호가 중요시되면서 1417년(태종 17) 이후 해미로 이설되었다. 해미로 옮겨진 이후, 충청병마절도사영으로 개칭되었고 1652년(효종 3)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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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 반곡마을에 설치되었던 진(鎭). 평신진(平薪鎭)은 1711년(숙종 37)~1895년(고종 32)에 충청도 북서부 해안을 수호한 진으로, 종3품의 첨사가 관할하였다. 또한 평신진은 목장까지 관리하는 겸목관 체제를 채택하였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적으로 시행하였다. 더욱이 서산과 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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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명천리에서 무학대사(無學大師)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서산민속지』 하의 204~205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최운식·김창진 등이 1986년 12월 25일 충청남도 서산군 성연면 명천리[현 서산시 성연면 명천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이억룡[남, 71]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옛날 서산시 부석면 간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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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석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 따르면 호리성(虎里城)은 1516년(중종 11)에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둘레는 1,337척이고 높이는 11척이며, 그 안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서산과 태안은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어 해적이 왕래하는 요충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한 진영을 설치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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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강당리 숭덕사에서 지내는 회안대군(懷安大君) 이방간(李芳幹)의 기제사. 회안대군 이방간 불천위제사는 그의 위패를 봉안한 숭덕사(崇德祠)에서 매년 음력 3월 9일에 지내는 사당 제사이다. 불천위(不遷位)는 나라에 큰 공적을 세우거나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남긴 이들에게 내려지는 것으로, 사대 봉사(四代奉祀)의 원칙과 상관없이 자손 대대로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