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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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7년 이원정이 목판본으로 간행한 성주목과 칠곡도호부의 사찬 읍지. 이원정(李元禎)[1622~1680]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사징(士徵), 호는 귀암(歸巖)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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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목의 고지명을 확인할 수 있는 17세기 초에 제작한 역사 지도이며 도별 지도. 『동여비고(東輿備攷)』는 1책 57장의 채색 필사본으로 가로는 37~33㎝, 세로는 42~68㎝로 이루어져 있다. 32종의 지도를 60면으로 나누어 한 책에 수록한 지도첩이다. 앞 부분은 역사 지도이고, 그 뒤에 도성도(都城圖) 등의 특수 지역도가 있으며, 대부분은 도별도와 군현도로 되어 있다. 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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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년부터 1895년까지 성주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고려 시대에 성주 지역은 940년(태조 23)부터 주로 경산부(京山府)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1308년(충렬왕 34)에 ‘성주목’으로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성주’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로 성주목은 행정 구역과 이름이 몇 차례 바뀌기도 했지만, 1895년(고종 32) 칙령 제101호로 8도제를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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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성주목을 관할하던 최고위 관직. 조선 개국 당시 성주는 경상도에서 가장 넓은 간전 결수(墾田結數)[간전은 개간하여 만든 밭]를 보유하였고, 많은 제언(堤堰)이 축조되어 있는 등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곳이었으며, 인재도 많이 배출한 영남의 거읍 중 하나로 상주, 진주와 함께 경상우도의 중심된 큰 고을이었다. 이에 따라 조선 건국 이후에도 계속 경산부(京山府)로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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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역사. 성주 지역 청동기 시대는 고인돌군의 형태로 미루어 여섯 개의 생활권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이 지역은 기원전 1세기 고조선 혹은 낙랑 지역 유이민 파동에 따라 한(漢)의 발달된 철기 문화가 급속히 전파되었고, 철제 무기 및 농기구 제작 기술의 발달로 정치체들 간 정복과 통합이 활발히 일어났다. 철기 문화와 함께 무늬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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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경산지』를 재필사한 『영남읍지』의 성주목 읍사례. 1894년 7월 1일 군국기무처는 각도의 감영·병영으로부터 주부군현(州府郡縣)·진(鎭)·역(驛)·보(堡)에 이르기까지 읍지(邑誌)와 읍사례(邑事例)를 편찬하여 올리게 하였다. 읍지와 읍사례 수집의 실질적인 업무는 의정부가 주관하였다. 『첩보존안(牒報存案)』에 따르면, 경상감영에서는 1895년 2월 27일에 읍지와 읍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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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이전에 편찬한 읍지를 바탕으로 재필사하여 경상도 도지에 수록한 성주목 읍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읍지(邑誌)』 경상도편(제37~50책)은 경상도의 71개 고을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1878년(고종 15) 경상도 71개 고을 읍지의 완질을 갖추기 위하여, 이전에 편찬한 읍지를 바탕으로 재필사하면서 환적 등에 지방관을 추기한 것이다. 원래는 열고관에 있던 『읍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