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서 여성들이 맷돌을 돌리면서 불렀던 노동요. 「가래 가는 소리」는 제주도 전역에 걸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서귀포시 지역에서도 해안가 마을이나 중산간 마을이나 간에 두루 전승되고 있는 민요이다. ‘래’는 맷돌의 제주어이다. 때문에 이 민요는 일반적으로 ‘맷돌질 소리’라고 부르고 있다. 1960년대 이후에 제주대학교 김영돈 교수를...
-
조선 후기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열녀. 서귀포 지역 대정현 하예리[현재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예동] 강응록(姜應祿)의 아내 이씨는 19세에 결혼하였는데, 다음해에 남편이 병을 앓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치료하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정화수를 떠놓고 자기 몸으로 대신할 것을 빌었으나 끝내 남편이 사망하였다. 남편의 졸곡(卒哭)[상례(喪禮)에서 삼우(三虞)가 지난 뒤 3...
-
조선 시대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열녀. 열녀 김씨는 창천리 유생 강응주(姜應周)의 아내인데 시집가서 일년도 되기 전에 남편이 죽자 김씨는 따라 죽기를 맹세하고 물 한모금 입에 넣지 아니하였다. 아버지가 울면서 이르기를, “너는 임신한 것이 틀림없는데, 혹 아들을 낳으면 네 남편의 영혼도 굶주리지 않을 것이 당연하거늘, 어찌하여 스스로 죽으려 하느냐” 하였다. 김씨는 이를 깨달아 마...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 양지바른 숲에서 드물게 자라는 양치식물. 거구리개고사리는 탐라뱀고사리, 또는 거꾸리개고사리라고도 부르다. 개고사리과에 속하는 양치식물로서 국내에서는 제주도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주도의 온난다습하고 다양한 서식지 환경 때문에 거구리개고사리를 비롯한 많은 종의 양치식물들이 다양하게 자라고 있다. 거구리개고사리는 제주도의 숲속에서 자...
-
조선 후기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열녀. 오씨(吳氏)는 오원번(吳元番)의 딸로서 의귀리 김창언(金昌彦)의 처이다. 자식을 낳고 한 달이 되기 전에 남편이 말에서 떨어져 죽자, 너무 슬퍼 장사하는 날 물에 몸을 던져 남편의 뒤를 따랐다. 열부 칭호는 1812년(순조 12)에 정표되었다. 열녀 오씨의 비는 비각이 있으며 비신의 높이는 63cm이다. 비의 앞면 상단에는 가로쓰기...
-
조선 시대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열녀. 열부 김씨는 경주 김씨 김남채의 딸이며 중문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유생 김창은(金昌銀)의 아내이다. 18세에 시집가서 부인의 도리를 다하였고 또 여자로서 행하여야 할 행실을 지녔으니, 시부모가 그녀의 효성을 말하였고 마을 사람들이 탄복하여 크게 칭찬하였다. 남편이 병이 들어 위독하자 간절히 하늘에 기도하며 자기 몸으로 남편을...
-
일제 강점기 제주도 서귀포 출신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가. 일제 강점기 3·1 운동에 참가한 후 제주청년동맹·신인회·제주야체이카 등에서 항일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해방 후인 1945년 10월 9일 건국준비위원회 제주도위원회 보안부장을 맡는 등 사회주의 계열의 대표적인 활동가였다. 1946년 10월 미군정이 지명수배하자 경남 삼천포[여수라는 설도 있음]로 도항하던 중 침몰 사고로 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의 그늘진 숲에서 드물게 자라는 희귀 양치식물. 처녀고사리과 식물은 국내에 18종이 분포한다. 그 중 서귀고사리라고도 하는 나도진퍼리고사리는 습기가 많은 음지에 자라는 상록 양치식물로서 잎자루에는 털이 없고, 비늘 조각이 드문드문 붙는다. 잎에는 연한 털이 산재하고, 잎맥은 단조롭거나 1~2회 Y자 모양으로 갈라진다. 제주도 서귀포 근...
-
조선 시대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효자. 남평 문씨인 문달민(文達敏)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이웃에서 칭송이 자자했으며, 1851년(철종 2) 11월 부친이 갑자기 병이 나서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소생시켰다. 목사와 판관이 그 효행을 칭찬하였고, 제주 목사는 부역을 면제하는 복호(復戶)[조선 시대에 충신·효자·군인 등 특정한 대상자에게 부역이나 조세를 면...
-
조선 시대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효자이자 충신. 문달복(文達福)은 역시 효자인 문달민과 사촌간으로, 성품이 순박하고 공손하였고, 편모슬하에서 자라났으나 그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소생시켰다. 또한 철종의 국상(國喪) 때에는 바다를 건너 서울에 있는 도감청(都監廳)에 가서 흙일 할 것을 자청하여 충성스러운 백성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이...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 한라산 중산간 양지바른 습지에서 자라는 습지식물. 세계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서는 전라남도·경상남도·제주도에 분포한다. 제주도의 자생지는 매우 좁고 드물다. 불까치수염·물까치수영이라고도 한다. 높이 40~60㎝이고 털이 없으며 모서리에 각이 져 있다. 잎은 어긋나며 좁은 도피침형(倒披針形) 또는 넓은 선형(...
-
조선 시대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효자. 대정군 구억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의 효자 박창진(朴彰振)은 밀양 박씨이며 가선대부 박봉천의 손자이며 향교 직원 박영상의 아들이다. 박창진은 시골에서 자라 배우지는 못하였으나 어려서부터 박학하였을 뿐만 아니라 천성이 착하였다. 부모를 아끼는 성의와 어른을 공경하는 도리가 보통 사람들과는 달라 사람들이...
-
일제 강점기 제주도 서귀포 출신의 의사, 항일운동가. 변태우(邊太祐)는 제주도 내 천주교 사제들과 함께 항일운동을 하였으며, 의사로서 인술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모슬포금융조합을 잘 이끌어 지역민들이 일제 강점기에 생활 경제를 실천하도록 계몽했던 항일운동가이다. 변태우(邊太祐)[1899~1950]의 본관은 원주(原州)로 아버지는 변양근이다. 1899년 대정읍...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상록수림의 나무에 붙어 자라는 난초과 식물. 우리나라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일부 지역에서만 확인되어 제주난초라고도 하며, 일본·중국에서만 관찰되는 종이다. 한라산 남쪽 경사진 곳의 계곡에 있는 노거수에 착생하여 자라고, 지금까지 밝혀진 개체수가 매우 적다. 또한 관상용으로 무단채취의 대상이 되어 자생지 절멸이 우려되는 종이...
-
조선 시대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열녀. 정의향교 계집종인 송천향(宋千香)은 송시중의 딸로 정의현의 관리 강시한(康時漢)에게 첩으로 들어갔다. 나이 20세에 아들을 하나 얻었는데 일찍이 남편이 병으로 눕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하늘에 축원하였으나 남편이 죽었다. 남편의 뒤를 따르려 했지만 어린 자식의 울음소리에 차마 죽지 못하였다. 젊은 과부는 정절을 잃기 쉽다는 오명을...
-
일제 강점기 제주도 서귀포 출신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가. 오대진은 일제 강점기 3·1 운동에 참가한 후 제주청년동맹·제주야체이카[혁우동맹] 등에서 항일 운동을 주도하였고, 해방 후인 1945년 10월 9일 건국준비위원회 제주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1947년 2월경 결성된 남로당 제주도위원회의 주요 구성원으로 제주도 사회주의 계열의 대표적인 활동가였다. 1949년...
-
일제 강점기 제주도 서귀포 출신 사회주의 계열 항일 운동가. 본관은 고부이며 이원옥의 아들로 1909년 대정읍 가파리에서 태어났다. 이도백(李道伯)[1909~?]은 1923년 대정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목포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4학년때인 1929년에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영향으로 퇴학을 당하였다. 그 후 서울의 경성고학당을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를 다니다 중퇴하였다. 보성...
-
일제 강점기 제주도 서귀포 지역 출신의 항일운동가이자 남파 간첩. 1917년 대정읍 가파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고부(古阜)이고, 아버지는 이재춘(李在春), 어머니는 김경량(金庚良)이다. 형제로는 이창국·이치효[이창주]·이창화·이창흥·이창삼·이창복·이창계가 있다. 김성숙은 이선실의 시숙부였다. 이선실은 신유의숙의 스승이자 제주향토사학의 대가 김태능의 제수이기도 하였는데, 일제 강...
-
일제 강점기 제주도 서귀포 지역 출신의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가. 1929년 광주학생항일독립운동 이후, 학생전위동맹을 중심으로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검거당한 학생의 석방과 나아가서는 ‘조선 독립’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학생들의 시위운동을 전개하고, 여세를 몰아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려고 서울 시내 각 학교에 격문을 배포하고 동맹휴학 시위운동을 벌였다. 이 일로...
-
일제 강점기 학생전위동맹에서 활동한 제주도 서귀포 지역 출신의 항일운동가. 1929년 광주학생항일독립운동 이후, 학생전위동맹을 중심으로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검거당한 학생의 석방과 나아가서는 ‘조선 독립’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학생들의 시위운동을 전개하고, 여세를 몰아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려고 서울 시내 각 학교에 격문을 배포하고 동맹휴학 시위운동을 벌였다....
-
한국전쟁 중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 피난 와 거주하면서 활동한 서양화가. 이중섭이 제주도 서귀포로 피난 온 때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경이었다. 이중섭이 일본 여자인 이남덕[본명 야마모토 마사코]과 결혼해서 북한 지역인 원산에서 살다가 피난길에 나선 것은 1950년 12월 10일로 그때까지 그린 작품을 고향에 있는 어머니께 맡기고, 그리다 만 풍경화 한...
-
1950년 이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활동했던 화가 이중섭과 그의 작품들. 이중섭(李仲燮)[1916-1956]은 한국전쟁 발발 후 제주도 서귀포 지역에 피난와 거주하면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바닷가의 아이들」·「서귀포의 환상」 등의 대표작을 남긴 화가이다. 1950년 12월 10일 이중섭은 그때까지 그린 작품들을, 함께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께 맡기면서 “이...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바위 또는 나무 겉에 붙어서 자라는 양치식물. 일엽아재비는 다시마고사리라고도 한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대만·중국·태국·말레이시아·인도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만 분포한다. 땅속줄기는 짧게 기고, 털이 많으며 비늘조각으로 덮인다. 땅속줄기는 짧게 옆으로 자라며 비늘조각이 빽백하게 붙어있고 잎이 다...
-
조선 시대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열녀. 양씨는 서귀포 지역 대정현 상예래리[현재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 사람으로 처사 임도관(任道寬)의 처이다. 열녀 양씨는 시부모를 섬기는 데 효도와 존경을 다하였고, 남편을 섬기는 데 예로서 행하였다. 남편이 원인 모를 병에 걸린 반년 동안, 양씨는 지성으로 간호하며 밤낮으로 하늘에 빌면서 자기 몸으로 대신할 것을 원하였다....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 있는 전통 초가. 민가(民家)라는 것은 항상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인문 환경의 독자적인 성격으로 인해, 지역마다 다른 양상을 보이게 마련이다. 제주의 초가(草家) 역시 제주 지역이 갖는 독특한 인문 환경과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한 민가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서귀포 지역에도 이러한 민가 형식의 초가가 다수 중요 민...
-
조선 시대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효자. 현재옥(玄才玉)은 본관이 연주(延州)이다. 천성이 어질고 행실이 착했으며 가난하였지만 부모를 공양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부모를 공양하기 어려운 지경에서도 동에 가서 품을 팔고 서에서 품삯을 받아 쌀과 고기를 얻게 되면 반드시 부모님의 구미에 맞게 음식을 만들어 드렸다. 부모의 상을 당하자 장례와 제사를 예로써 극진히 하였으므로...
-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제주도 서귀포 출신 항일 노동운동가. 1910년 1월 18일 성산읍 성산리 출생. 본관은 연주(延州)이며 할아버지는 현승오, 아버지는 1930년대 동아통항조합장을 지낸 현길홍이다. 형 현호진과 누이동생 현호옥도 노동운동가이다. 현호경(玄好景)[1910~1949]은 사상적으로 김문준의 영향을 받았으며, 중학교 졸업 학력의 토목노동자로 일명 전태...
-
조선 후기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효자. 홍달한(洪達漢)은 정의현 고성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서 1666년 출생하였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으나 효성이 지극하고 나라에 대한 충성도 대단했던 효자였다. 성산읍 수산초등학교 뒤쪽에는 효자문 거리라고 불리는 도로가 있는데 홍효자라고 불리는 홍달한과 관련된 거리이다. 홍달한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
조선 후기 제주도 서귀포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성징(聖徵). 아버지는 황건(黃鍵), 할아버지는 황세구(黃世耉), 생조(生祖)는 황신구(黃藎耉)이며, 외조부(外祖父)는 이문행(李文行)이다. 1744년(영조 20) 갑자정시(甲子庭試)에 급제한 아들인 황합(黃柙)이 있다. 황구하(黃龜河)[1672~1724]는 1705년(숙종 31) 을묘 알성시(乙酉謁聖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