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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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서 불리어지는 창민요. 「봉지가」 등의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창민요는 원래 조선조 500년 동안 정의현의 현청 소재지였으므로 관기들에 의해 전해지던 노래가 민간에 전해지면서 널리 불려지고 전파되었다. 제주 전역에서 불려지는 창민요는 「오돌또기」·「이야홍」·「봉지가」·「용천검」·「신목사타령[관덕정앞]」·「산천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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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김상헌(金尙憲)이 안무어사로 제주에 왔을 때 지은 일기체 형식의 글. 김상헌(金尙憲)[1570~1652]은 임금의 명을 받아 1601년 7월 제주에서 발생했던 길운절·소덕유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처벌될 것을 염려하던 제주도민을 위로하기 위해 제주에 오게 되었다. 『남사록(南槎錄)』은 이때의 일을 1601년 8월부터 6개월 간 기록한 것이다.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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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김성구(金聲九)가 정의 현감 재임 시의 일들을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글. 『남천록(南遷錄)』은 김성구[1641~1707]가 부수찬(副修撰)에 임명된 1679년(숙종 5) 3월 12일부터 정의 현감으로 좌천되었다가 1682년(숙종 8) 1월 16일 아버지가 임시로 사는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남긴 기록이다. 김성구는 정의 현감 재임 때의 일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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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년(숙종 30) 조선 후기의 문신 이형상(李衡祥)이 저술한 제주도 인문지리지. 이형상[1653~1733]이 제주도의 자연·풍속·인물·토산·고적·관방 등을 37개 항목으로 나누어 기록한 것으로, 제주 목사에서 물러난 52세 때[1704년] 경상북도 영천 호연정(浩然亭)에서 완성하였다. 『남환박물』 첫 장에 “효언이 탐라의 고적을 알고 싶어하여 1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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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광무 3)경 정의군에서 만든 읍지. 1899년(광무 3) 전국 읍지 상송령에 따라 전라도 대정군에서 작성한 읍지이다. 같은 때에 편찬된 『제주(군)읍지(濟州(郡)邑誌)』[규 10797]의 내제(內題)에 “광무 3년 5월 일 읍지” 라고 되어 있어 『대정군고지』와 함께 이때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갑오개혁과 광무개혁기(1894~1896)의 지방행정제도의 개편으로 말미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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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정조 17) 관청에서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목·대정현·정의현 3읍의 읍지. 정조대 편찬된 읍지들은 이전보다 군사와 부세에 관한 항목과 전임 벼슬아치들의 성명 등을 기록한 선생안(先生案)이 보다 자세하다. 이러한 경향은 『제주대정정의읍지(濟州大靜旌義邑誌)』에서도 보이는데 이전의 『제주읍지(濟州邑誌)』[규 10796]보다 진공(進貢)·상납(上納)·군기(軍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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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 제주의 군제(軍制)와 봉수(烽燧)·연대(烟臺)를 기록한 문헌. 『제주삼읍군제(濟州三邑軍制)』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제주병제봉대총록(濟州兵制烽臺摠錄)』[규 4485)] 수록되어 있는데 1880년대 서귀포 지역의 군제(軍制)와 봉수(烽燧)·연대(烟臺)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편자·간행지 미상의 필사본으로, 1책(冊) 18장(張)으로 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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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관청에서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대정·정의 3읍의 읍지. 『제주읍지』는 편자, 편년 미상의 제주·대정·정의 읍지로, 1780년부터 1782년경까지 작성된 「제주읍지」·「대정현지」·「정의현지」를 저본으로 편찬한 후사본(後寫本)으로 보이는 책이다. 1789년 간행된 『호구총수』와 1793간행된 『제주대정정의읍지(濟州大靜旌義邑誌)』의 호구수와 비교해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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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종친(宗親) 이건(李健)이 제주 유배기간 중 기록한 풍토기.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는 이건이 1628년부터 1635년까지 8년간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제주도의 기후와 토지상태·풍습·생활상 등을 기록한 것이다. 이건은 선조의 손자인 인성군(仁城君) 공(珙)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자강(子强), 호는 규창(葵窓)이다. 1628년(인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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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정(金淨)이 제주 유배 기간 중 기록한 기행문.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은 김정이 1519년(중종 14) 11월에 일어난 기묘사화로 인하여 진도에서 제주도로 이배되었던 1520년 8월부터 사사(賜死)되던 1521년 10월까지 16세기 제주 지역의 풍토와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제주풍토록』은 김정이 36세 되던 1521년 외질(外姪)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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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헌종 7) 제주목사이던 이원조(李源祚)가 재임 시 조정에 올렸던 장계(狀啓) 모음집. 『탐라계록(耽營啓錄)』은 1841년 윤3월 13일부터 1843년 5월 22일까지 마정(馬政), 환곡(還穀), 포폄(褒貶), 군액(軍額), 삼읍에서 올라 온 첩보(牒報)에 대한 보고 등이 수록되어 있어 19세기 후반 서귀포 지역의 당시 상황을 살필 수 있다. 1책의 필사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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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원조(李源祚)가 제주목사 재임 시의 일을 일기체 형식으로 적은 기록. 『탐라록』은 이원조가 제주목사로 임명되던 1841년 1월부터 1843년 7월까지 자신의 생활과 치적을 기록한 시문집류이다. 1843년 봄에 쓴 이주현(李周賢)의 서문(序文)을 통해 작성연대를 추측할 수 있다. 3책[상․중․하]으로 된 필사본으로 크기는 각각 31.0×20.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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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효종 4)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이 고홍진(高弘進)의 도움을 받아 간행한 제주목·대정현·정의현 읍지 이원진은 『성천지(成川誌)』를 편찬한 이상의(李尙毅)의 손자로, 『탐라지(耽羅志)』는 이원진이 제주목사[1651~1653]로 있을 때 고증할 문헌과 지도 등이 없어, 『여지승람』과 김정(金淨)의 『제주풍토록』에서 주요 내용을 간추리고 제영(題詠) 등을 수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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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헌종 7) 제주목사이던 이원조가 초고(草稿)한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의 읍지. 이원조(李源祚)[1792~1872]는 호는 응와(凝窩)이며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 사간원정언을 지냈으며 1841년(헌종 7) 강릉부사로 있던 중 구재룡(具載龍)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43년(헌종 9) 6월까지 재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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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원조(李源祚)가 제주목사 재임 시 하급기관에 발송했던 공문 모음집. 『탐영관보록(耽營關報錄)』은 이원조가 제주목사 재임시 영문(營門)에서 제주목 4면(面)과 대정현ㆍ정의현 및 각 진(鎭) 등에 하달한 전령(傳令), 감결(甘結) 등을 수록한 공문 모음집이다. 수록 기간은 1841년(도광 21) 3월 일부터 1843년(도광 23) 4월 초 5일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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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시리는 서귀포시 표선면 서북부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 표선면 전체 면적의 41.4%를 차지할 정도로 광활하다. 전통적으로 야초지가 풍부하여 목축업이 활발하다. 가시리의 옛 이름은 ‘가시오름을’ 또는 ‘가스름’이다. ‘가시오름을’은 현재 가시리 남쪽 세화1리(細花1里)와 토산1리(兎山1里)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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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서 사람의 거주 및 사회 활동을 위해서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을 갖는 구조물 및 그것을 만드는 행위. 건축물은 좁은 의미에서는 집과 같이 한정된 공간을 만들어 실내와 실외가 명확히 구분되는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성곽이나 정자와 같이 개방된 구조물이나, 공원과 놀이터와 같은 영역이 불분명한 구조물의 경우에도 인간의 활동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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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의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사앙(士昻), 일명 고만추(高萬秋). 아버지는 고원(高瑗), 할아버지는 고상흘(高尙仡), 증조부(曾祖父)는 1666년(현종 7)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지낸 고홍진(高弘進)이며, 외조부(外祖父)는 이인제(李仁濟)이다. 증조인 고홍진이 이호(梨湖) 오도롱 사람인데, 그의 조모가 감목관 김대명(金大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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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고성리는 고려 말부터 형성되었다 하며, 원래 정의현의 현청 소재지가 있던 지역이었으나, 이후 성읍으로 옮겨갔다. 해안변의 얕은 바다는 천연적인 양어장이 되고 있으며 과거에는 염전으로 소금을 제조했다고 한다. 고성리는 ‘옛 성이 있었던 마을’이라는 의미이며, 옛 이름은 옛성 또는 고성이다. 조선 초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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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귀포 지역에서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한 감귤을 재배했던 농장. 조선 시대 조정에서는 제주 감귤이 종묘 천신용, 빈객 접대 등 궁중에서 가치가 높아 주요한 진상품으로 재배하도록 했다. 이러한 감귤류 나무를 재배하던 장소가 과원이었다. 조선 시대에 본격적으로 제주 과원의 조성되기 시작된 것은 1526년(중종 21) 제주목사가 감귤을 진상하기 위해 5방호소[서귀(西歸)·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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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귀포 지역에서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한 감귤을 재배했던 농장. 조선 시대 조정에서는 제주 감귤이 종묘 천신용, 빈객 접대 등 궁중에서 가치가 높아 주요한 진상품으로 재배하도록 했다. 이러한 감귤류 나무를 재배하던 장소가 과원이었다. 조선 시대에 본격적으로 제주 과원의 조성되기 시작된 것은 1526년(중종 21) 제주목사가 감귤을 진상하기 위해 5방호소[서귀(西歸)·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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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서 대한제국 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이루어진 근대식 교육. 근대 교육은 근대 국가의 성립이나 자본주의 사회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된 교육으로 주로 계몽 사조를 기초로 나타난 계몽주의 교육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 교육은 근대를 어떻게 시기 구분하느냐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본격적인 개항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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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에 있는 조선시대 과원. 1653년(효종 4) 이원진(李元鎭)이 편찬한 『탐라지(耽羅志)』 과원조(果園條)에 정의현 지역에 정자·독학·별과원·우전·금물·향목·원통·성산 8개소가 등장한다. 이 자료에 의하면 금물과원(禁物果園)은 정의현 서쪽 50리에 있으며 유자 55그루, 산귤 2그루 외에 새로 심은 각종 과수 26그루, 치자 3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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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그 이후 시기에 조정에 말을 바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의귀리 출신의 공신(貢臣). 전국 최대의 목장지대였던 제주도에서 임진왜란 발발 당시 가장 많은 말을 소유하고 기르던 부자였다. 그는 목장 경영에 성공하여 많은 말을 소유하였고, 임진왜란 이후 계속되는 전란으로 중앙정부가 말 부족에 시달릴 때 자신의 말 중에 상당 부분을 국가에 바쳤고, 자신은 물론 아들 손자까지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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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난산리는 조선 시대에는 난미촌 또는 난독촌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양반 유림촌이 형성되어 있던 지역이다. 토질이 비옥하고 봉천수가 있는 곳에 취락이 형성되었다. 난산리의 의미는 나지막하면서 넓은 산 또는 나간 산의 뜻으로 추정되며, 옛 이름은 난뫼 또는 난믜다. ‘난산(蘭山)’은 이의 한자 차용 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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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증(李增)이 제주 어사로서 순무할 때의 일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책. 이증[1628~1686]은 1679년(숙종 5) 10월 불법으로 재물을 탐했다는 전 제주 목사 윤창형(尹昌亨)과 정의 현감 상인첨(尙仁詹)의 일을 조사함과 동시에 문무시재(文武試才)를 시행하고 민정(民情)을 살피기 위해 안핵겸순무어사(按覈兼巡撫御史)로 제주에 파견되었다. 이와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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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의현에 소속된 봉수. 남산봉수는 달산봉수·독자봉수와 교신했다. 달산봉수와의 직선거리는 4.5㎞, 독자봉수와의 직선거리는 3.9㎞이다. 정의성과 인접해 있어서 주변의 상황을 정의현에 연락하는 역할을 하였다. 소속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대체로 봉수대들은 해안에 접한 곳이거나 해안으로부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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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남원1리의 옛이름은 쉘록개[쉘록깨], 쉘롯개[쉘롣깨], 제산잇개[제사닏깨·저사닛개]이다. 쉘록개의 한자 표기로 금로포·금록포 등이 있다. 남원2리의 원래 이름은 옷귀[옫뀌]·옥기[옥끼] 또는 서옷귀이다. 차자표기로 의귀촌이라 하였고, 18세기 초반부터 동쪽 지역과 서쪽 지역을 구분할 때부터 서옷귀을이라 하여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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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남원읍(南元邑)은 동쪽으로는 표선면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효돈동·영천동과 접하고 있다. 남원읍은 17개 행정리[남원1리·남원2리·태흥1리·태흥2리·태흥3리·위미1리·위미2리·위미3리·하례1리·하례2리·신례1리·신례2리·한남리·수망리·의귀리·신흥1리·신흥2리]와 9개 법정리[남원리·태흥리·한남리·수망리·의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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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의현에 소속된 봉수.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 하동 서북쪽에 있는 높이 136m의 달산봉에 위치하고 있는 달산봉수는 남서쪽으로 토산봉수, 서쪽으로 남산봉수와 교신하였다. 달산봉수는 조선 초기부터 존재했다. 토산봉수와의 직선거리는 6.1km, 남산봉수와의 직선거리는 4.5km이다. 소속별장 6명, 봉군 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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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행정동. 서귀포시 중심부에 위치한 동으로, 호근산 아래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1981년 서귀읍과 중문면을 병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할 때, 옛 법환리·서호리·호근리 일대를 관할하는 대륜동이 신설되었다. 대륜동은 큰가름 일대에 형성된 마을이라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대륜(大倫)’이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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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에 있는 조선 시대 성터. 대정성지는 조선 시대 제주도의 3읍성 중 하나로 대정현에 축성된 성곽 유적지를 말한다. 행정 구역상 대정성지는 대정읍 안성리, 인성리 및 보성리 일대에 걸쳐 자리 잡고 있다. 제주읍성으로부터 대정성지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50km 정도이다. 제주도는 1416년(태종 16)에 제주목과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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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부를 관할하고 있던 옛 행정 구역. 조선이 개창된 이후 제주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었다. 이는 이미 고려 시대 원에 의해 설치된 목마장에서 생산된 제주의 말이 대명 외교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전시(戰時)에는 전쟁 수행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기 때문이었다. 중앙 정부의 이와 같은 인식은 제주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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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인성·보성리 일대에 있는 성곽. 대정현성은 대정현이 설치된 2년 후에야 축조되었다. 즉, 1418년(태종 18) 대정현감 유신(兪信)에 의해 1개월만에 완성되었다. 대정현성은 제주읍성이나 정의현성과는 달리, 당시에 동․서․남․북에 각각 문이 있었으나, 북문은 후에 폐쇄되었다. 문 위에는 모두 초루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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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대정현 관아 성문 밖에서 수문장 역할을 하였던 12개의 석상. 돌하르방은 조선 시대 제주 삼읍인 제주·정의·대정성의 성문 입구에 세워져있던 석상(石像)으로, 수호신적 역할, 주술종교적 역할, 위치표식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돌하르방은 우석목·무성목·벅수머리 등으로 불리웠는데, 해방 후에 ‘돌하르방’으로 통일되었다. 김석익의 『탐라기년』에는 17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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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에 위치한 정의현에 소속된 봉수. 서귀포 성산읍 신산리 망오름이라 불리는 독자봉에 위치한 독자봉수는 서쪽으로 남산봉수, 북동쪽으로 수산봉수와 교신하였으며, 직선거리는 남산봉수와 3.9km이고 수산봉수와 7.3km이다. 소속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독자봉수는 조선 전기 사지악봉수 혹은 오음사지악봉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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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사용하는 돌과 관련한 언어나 언어적 용법. 돌 방언은 돌 일과 관련한 일체의 어휘를 말하는 것으로, ‘속돌·왕돌·먹돌’ 등 돌의 종류와 ‘끌·알기·돌자귀·돌도치·메’ 등 돌을 다루는 연장, 그리고 ‘고지돌·방에·돌구시·등돌·돌하르방·팡돌’등 돌로 만들어진 생활 용품 등이 여기에 속한다. 1. 돌의 종류 o속돌: 화산의 용암이 갑자기 식어서 생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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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대포동에 있었던,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시대 대정현 동쪽의 방어 요충지에 설치된 군대의 경계 감시소. 제주도는 왜구의 침입을 방어할 목적으로 김녕·조천·도근천·애월·명월·차귀·동해·서귀·수산 방호소 등 9개의 방호소가 설치되었으며, 이중 동해방호소는 대정현 동부 지역을 감시하는 방어유적으로 원래 강정마을에 있었던 가래방호소(加來防護所)를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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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동홍동은 일찍부터 이 마을을 ‘홍로’ 또는 ‘홍리’로 불렀는데, 정확한 의미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자로 홍로(烘爐)라 하였다. 그러다 동쪽 지역은 ‘동홍로’ 또는 ‘동홍리’라 하였으며, 한자로 동홍로(東烘爐)라 하였다. 후에 로(爐)자가 빠져 동홍(東烘)이라고 한 것이다. 동홍동은 이 마을의 동쪽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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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 위치한 정의현에 소속된 연대. 말등포연대는 제주읍성의 139리, 정의현성에서 동남 20리에 해당하는 연대로 북동쪽으로 협자 연대, 남서쪽으로는 천미 연대와 교신했으며, 직선거리로는 협자 연대와 5.3km이고 천미 연대와 6.9km이다. 소속별장 6명, 연군[직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신양리에서 해안선이 일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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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 위치한 오름. 물영아리오름은 산정에 화구호를 가진 오름으로, 총면적은 717,013㎡이며, 둘레 4,339m, 해발 508m, 비고 128m이다. 2000년에 전국에서 최초로 습지 보전 법에 의한 습지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예로부터 이 오름의 산신이 노하면 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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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의 민간에서 오랫동안 함께 전승해온 제반 풍속. 민속은 민간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살면서 형성하고 전승해 온 제반 습속을 두루 일컫는다. 민간 사람들은 지배층 사람들이 제도화해 놓은 규범적인 것에 생활이 제약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오랫동안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면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여러 가지 생활을 일정한 방향으로 양식화한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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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와 제주시 건입동을 연결하는 도로. 번영로는 제주특별자치도 동부 지역 중산간을 연결하는 35.9㎞ 거리의 도로이며, 평화로와 더불어 제주도 도로의 효시라 할 수 있다. 1973년에는 서귀포 주민들의 노력 부담과 재일 교포의 도움으로 표선~성읍 간 8.8㎞ 도로가 포장되었으며, 1989년까지 총연장 36.5㎞의 도로가 6m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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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법정동. 서귀포 신시가지 남동쪽 해안 일대에 형성되어 있는 해안 마을로, 1981년 서귀읍과 중문면을 병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할 때, 옛 법환리를 법환동으로 하였다. 법환동의 옛 이름은 ‘법환이[법환잇개]’ 또는 ‘법한이[법한잇개]’이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法還浦·法汗浦이다. 마을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15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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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법정동. 서귀포시 동남쪽에 있는 해안 마을로, 1981년 서귀읍과 중문면을 병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할 때, 옛 보목리 일대를 보목동이라 하였다. 보목동은 일찍부터 ‘볼레낭개·볼레남개’로 불렸고, 한자 차용 표기로 ‘보애목포(甫涯木浦)’ 또는 ‘보목포(甫木浦)’로 표기되었다. 보리장 나무[볼레낭]가 많은 ‘개[浦]’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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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전 근대 시기에 봉[횃불]과 수[연기]로써 급보를 전하던 통신 방법. 봉수의 봉(烽)이라 함은 후표(候表)의 뜻으로 불을 피워서 통보하는 것을 의미하며, 시목(柴木)에 불을 질러서 그 연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을 수(燧)라고 하여, 낮에는 연기, 밤에는 봉화를 들어 통보하는 제도를 말한다. 봉수의 횟수는 거(炬) 또는 거(擧)로 나타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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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제주도의 불교 전래에 관해서는 크게 존자암(尊者庵)과 관련한 남방 전래설과 삼국 시대에 전래 되었다는 북방 전래설이 있다. 전래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유물로는 곽지사지(郭支寺址)의 삼국 시대 도기편과 강림사지(江臨寺址)의 신라 시대 토기편, 고내리 사지의 통일 신라 시대의 질그릇, 수정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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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빙철에 지진 메밀전에 소를 넣고 말아 만든 떡. 서귀포 지역의 혼례와 상례 그리고 기제사 등 의례에서 빠지지 않은 보편적인 음식이 빙떡이다. 서귀포 지역마다 빙떡의 이름이 달리 불리는데 이는 지역적 특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빙떡은 서귀포 여성들의 보편적인 부조 음식으로서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이 깃들여 있는 상징적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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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민간 신앙 유적. 사계리에는 여러 당이 있고 1개의 포제단도 있다. 당으로는 본향당인 큰물당, 일뤳당인 청밧당, 그리고 개당이 있다. 큰물당은 큰물 서쪽의 밭 귀퉁이에 있고 청밧당은 사계초등학교 동쪽 100여 m 지점의 도로변 밭 한 쪽에 있다. 개당은 토끼동네 포구 안쪽에 있는데 성창굽개당이라고도 한다. 이밖에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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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민간 신앙 유적. 사계리에는 여러 당이 있고 1개의 포제단도 있다. 당으로는 본향당인 큰물당, 일뤳당인 청밧당, 그리고 개당이 있다. 큰물당은 큰물 서쪽의 밭 귀퉁이에 있고 청밧당은 사계초등학교 동쪽 100여 m 지점의 도로변 밭 한 쪽에 있다. 개당은 토끼동네 포구 안쪽에 있는데 성창굽개당이라고도 한다. 이밖에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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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중심의 서북쪽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 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산방현(山房縣)은 1300년(충렬왕 26년)부터 1416년(태종 16년)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산방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339번지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 일대에는 북동으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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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삼달리의 옛 이름은 와겡이 또는 분드릿개이다. 와겡이는 지금의 삼달1리 일대이며, 분드릿개는 지금의 삼달2리 일대의 지명이다. ‘와겡이’와 ‘분드릿개’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다. 18세기 중후반에 삼달리(三達里)로 바뀌었다. 삼달리는 ‘세 가지 덕’의 뜻으로 인위적으로 만든 이름으로 보인다. 1416년(태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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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법정동. 1981년 서귀읍과 중문면을 병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할 때 옛 상효리 일대를 상효동이라 하였다. 상효동은 일찍부터 ‘웃세돈·웃쉐둔’으로 불리어 왔다. 한자로는 상우둔(上牛屯)[웃쉐둔]이라고 하였다가 상효돈(上孝敦)[웃효돈], 상효(上孝)[웃효돈]이라고 하였다. ‘쉐둔’은 소를 떼로 모아서 기르는 곳을 말하는데, 상효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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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법정동 서귀동은 삼매봉 서쪽에 형성된 서귀포시의 중심 마을로, 1981년 서귀읍과 중문면을 병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할 때, 서귀리 일부를 서귀동으로 하였다. 서귀포(西歸浦)라는 명칭은 중국 진나라 때의 방사(方士)인 서복(徐福)이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영주산[한라산]을 찾으러 왔을 때, 정방폭포에 서불과지(徐巿過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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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남부에 위치한 행정시. 서귀포시는 북쪽으로 한라산 정상 분수계를 경계로 제주시와 접하고 있는 행정시이다. 한라산[1,950m]은 종상화산(鐘狀火山)의 산형을 형성하여 급한 경사를 이루고, 산록면은 완경사를 이루나, 북사면보다는 약간 경사도가 큰 편이다. 해안 저지대는 평지를 이루고 있지만 다소 좁은 편이다. 하천은 비교적 잘 발달하여 효돈천·정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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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민간에서 전승되는 것으로, 초자연적 존재가 태초(太初)에 행한 창조 활동에 관한 이야기. 서귀포 신화는 서귀포시 주민들이 생활하는 동안 접하게 되는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의 기원과 그 질서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연유로 시작되었는지를, 신을 중심으로 하여 진실하다고 믿고 신성시하여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서귀포시 주민들은 이 신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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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칠십리(西歸浦七十里)’라는 말은 조선 시대에 지금의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었던 정의현성의 관문에서 서귀포의 서귀진[또는 서귀포 방호소]까지 거리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뒤에, 오늘날은 서귀포를 상징하는 말로 개념이 확대되었다. 조선 시대 초기에, 제주도를 세 고을[제주목·정의현·대정현]로 나누고 난 뒤에, 정의현청의 관문에서 서귀포의 서귀진의 관문까지 거리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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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법정동. 1981년 서귀읍과 중문면을 병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할 때, 서호리 일대를 서호동으로 하였다. 서호동은 19세기 말경에 ‘호근머들·호근머흘’[好斤磊·好近磊]에서 분리되어, 마을 서쪽에 있다는 데서 서호근리(西好近里)라 했다가 서호리(西好里)로 되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유례는 알려지지 않는다. 서호동은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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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1981년 서귀읍과 중문면을 병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할 때 옛 서홍리 일부를 행정적으로 서홍동이라 하였다. 서홍동은 홍로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서홍로(西烘爐)라로 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서홍동은 ‘홍로’ 또는 ‘홍리’라고도 불렀는데, 한자로 홍로(烘爐)라 하였다. ‘홍리’는 마을 모양이 봉우리로 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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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홍동 일대에서 발원하여 연외천의 본류와 합류하는 하천. 서홍천은 서홍동 2568번지 부근에서 발원하여 하류에서 연외천과 합류하여 바다로 나가는 건천이다. 연외천의 지류이며 유로 연장은 5.7㎞, 유역 면적은 1.37㎢이다. 서홍천은 물이 발원하는 지명에서 하천명이 유래됐다. 서홍천은 본래 홍로촌을 경유하기 때문에 '홍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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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조선 초의 제주도 정의현 출신 열녀. 정씨는 정의현[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사람으로 한림원의 8품 벼슬인 직원(直院) 석방리보개의 처이다. 고려 말에 그의 남편이 합적(哈赤)의 난 때 죽었는데 그녀의 나이 20세 였다. 정씨의 자색이 고와 안무사·군관 등이 그녀를 협박하여 강제로 취하려 했으나 정씨는 스스로 죽음을 맹세하고 칼을 품어 자결하려 하여서 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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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성산리 지역은 1818년(순조 18)경에 구좌읍 김녕리에서 사람이 이주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여러 성씨들이 정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산리의 옛 이름은 잣메이다. 한자로는 성산(城山)이라고하는데, 산 모양이 성과 같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성산리는 1416년(태종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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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성산읍의 ‘성산(城山)’은 산 모양이 성과 같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제주도에서도 자연 경관이 뛰어난 지역으로, 유명한 관광지와 역사 관련 문화재, 그리고 천연기념물이 많은 곳이다. 또한, 성산읍은 연근해 어업의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행정적으로는 14개의 행정리와 12개의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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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성산읍의 ‘성산(城山)’은 산 모양이 성과 같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제주도에서도 자연 경관이 뛰어난 지역으로, 유명한 관광지와 역사 관련 문화재, 그리고 천연기념물이 많은 곳이다. 또한, 성산읍은 연근해 어업의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행정적으로는 14개의 행정리와 12개의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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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속하는 법정리. 서귀포시 동남부에 위치한 성읍리는 조선시대 500여 년 동안 정의현(旌義縣)의 현청(縣廳)이있었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 중심지는 현재 중요민속자료 재188호 성읍민속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성읍리의 옛 이름은 ‘진사을’이라 하여 '진사리(眞舍里)’ 또는 ‘진사리(晉舍里)’로 표기하였다. ‘진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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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읍 민속 마을에서 차조 ‘오메기떡’과 보리누룩으로 양조한 민속주. 서귀포시 성읍민속마을은 해발 125m의 중산간 지역에 위치한 마을이다. 1423년부터 현청이 설치된 이래 조선말까지 500여 년 동안 정의현(旌義縣) 소재지로서 중산간 지역의 음식문화가 잘 보존된 곳이다. 주변에 평평한 농토가 잘 조성되어 있어 예전부터 조[粟]농사를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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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조선 시대 정의현의 읍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조선 시대 정의현의 읍치였던 성읍 마을은 1423년(세종 5) 정의현 읍치를 성산읍 고성리에서 이곳으로 옮긴 이래 1914년 행정구역의 개편 때까지 고을의 중심지로 500년 동안 이어져 왔다. 현존하는 조선 시대 읍성 가운데 전통적인 모습이 가장 잘 남아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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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에 위치한 정의현에 소속된 연대. 소마로연대의 동쪽으로는 천미 연대, 서쪽으로는 벌포 연대 그리고 북쪽으로는 매 오름이 있다. 천미 연대와의 직선거리는 5.2km이고, 벌포 연대와는 6.7km이다. 소속 별장 6명, 연군[직군] 12명이 배치되어 있다. 표선면 한지동 마을의 동쪽에 위치한 이 연대는 바다와 4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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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행정동. 송산동은 시의 중심부에서 동쪽 지역에 있는 동으로, 1981년 서귀읍과 중문면을 합쳐 서귀포시로 승격할 때, 서귀리 일부와 토평리 일부, 동홍리 일부, 그리고 보목리를 병합하여 송산동이라는 행정동을 설치하였다. 송산동의 ‘송산(松山)’은 서귀초등학교 북서쪽 소나무가 우거진 동산인 ‘솔동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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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주도 서귀포 지역의 열녀. 정의향교 계집종인 송천향(宋千香)은 송시중의 딸로 정의현의 관리 강시한(康時漢)에게 첩으로 들어갔다. 나이 20세에 아들을 하나 얻었는데 일찍이 남편이 병으로 눕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하늘에 축원하였으나 남편이 죽었다. 남편의 뒤를 따르려 했지만 어린 자식의 울음소리에 차마 죽지 못하였다. 젊은 과부는 정절을 잃기 쉽다는 오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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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해발 200m에 위치하여 남원읍 마을 중 가장 높은 중산간 마을에 해당하며, 적어도 18세기 초부터는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수망리의 옛 이름은 믈라·물우라·무라이며, 한자로는 수망(水望)으로 표기한다. ‘수망’의 수(水)는 물의 훈독자 표기이고, ‘망(望)’은 라의 유사음 보라의 훈가자 표기이다. 이는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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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17세기부터 수산리와 흘전촌으로 구분되었는데, 수산리[지금의 수산1리]의 옛 이름은 ‘물미’로, ‘믈미, 믈메’[지금 대수산봉]라는 오름 북서쪽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흘전촌[지금의 수산2리]의 옛 이름은 ‘홀앏’, ‘홀앞’ 또는 ‘곶앏’, ‘곶앞’으로, ‘덤불 숲의 앞’이라는 뜻이다. 고려 시대 수산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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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 수산진성은 조선 시대의 관방 시설 가운데 하나이다. 관방 시설은 험준한 곳에 시설을 만들어 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 시대 제주의 관방 시설은 대부분 왜구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3개 읍성 및 9개 진성, 25개소 봉수와 38개소 연대가 있었다. 1434년(세종 16) 정의현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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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시흥리는 구 남제주군과 북제주군의 경계에 자리 잡은 마을로 상동과 하동 두 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동은 서쪽 동네이고, 하동은 해안에 이루어진 동네다. 주위 바닷가에 신석기 시대의 토기가 발굴되어 오래 전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시흥’은 문자 그대로 ‘비로소 흥성하는 마을’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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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신례리는 남원읍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래 하례리와 한 마을로, 고려 시대 때부터 형성된 지역이다. 신례리의 옛 이름은 예촌이다. 예촌이라 부르기 전에는 한자로 호아촌(狐兒村) 또는 호촌(狐村)이라 표기한 것으로 보아 여△을, 여을이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중반에 호(狐)를 예(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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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귀포시 대정현에 유배된 문신. 신명규(申命圭)는 1618년(광해군 10)에 출생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원서(元瑞) 혹은 군서(君瑞), 호는 묵재(默齋) 혹은 적안(適安)이다. 조부는 대사성 신민일(申敏一)이고, 아버지는 신상(申恦), 어머니는 성산 이씨(星山李氏)이다. 자제로 신임(申銋)이 있다. 신명규는 1662년(현종 3)에 증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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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신산리는 난산리 남쪽 바닷가에 위치한 해안 저지대 마을로, 1천여 년 전에 그등개 일대에 사람이 들어온 후 점차 마을이 커졌다고 한다. 신산리의 옛 이름은 귿등개, 그등개, 그등애 또는 신산르이며, 한자로는 말등포(末等浦) 등으로 쓰였다. ‘애’는 개[浦]의 변음인데, 그등의 뜻은 확실하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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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신천리에서 신석기 시대 토기가 확인되어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과 어업을 주로 하는 반농 반어촌 마을이나 토질은 비옥하지 않다. 신천리의 옛 이름은 ‘내깍’이며, 민간에서는 ‘냇기’ 또는 ‘내끼’라고 한다. ‘내의 끝’이라는 뜻이다. ‘천미(川尾)’는 ‘내깍’의 한자 차용 표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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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신풍리 지역에서 선사 시대 유물이 발견된 것으로 볼 때 이 시대부터 거주지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넓은 평지에서 바다를 접하고 있는 반농 반어촌이다. 신풍리는 “새롭고 풍요로운 마을을 지향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풍리의 옛 이름은 ‘내깍, 내끼’ 또는 ‘웃내깍, 웃내끼’이다. 내끼는 내[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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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법정동. 신효동은 처음에 ‘쉐둔·쉐돈’이라 불리다가 후에 ‘새쉐돈’이라고 불렸으며, 나중에 신효(新孝)라고 불렸다. ‘쉐둔[牛屯]’은 소를 모아서 기르던 곳을 이르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효동은 1416년(태종 16) 정의현이 설치될 때 정의현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400여 년 전에 ‘구석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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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신흥리는 남원읍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온천리라 하다가 행정구역 개편 때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신흥리(新興里)는 새로 일어나는 마을이라는 데서 새로 붙인 이름이다. 신흥리의 옛 이름은 여옷내 또는 여웃내인데, 지형 형세가 마치 여우가 누워 있는 모습이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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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와 서귀포시 지역에 1430년부터 세종의 지시로 세워진 10개의 국영 목마장. 십소장은 1430년대부터 지역주민들을 동원한 축성 정책과 목마장 예정지 내의 기존 거주민들을 장외로 옮기는 이주정책, 그리고 국가소유인 국마와 주민소유의 사마를 공동으로 방목시키는 정책을 통해 형성되었다. 당시 목장규모는 1개 목장의 주위가 45리~60리였으며, 제주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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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제주 4·3 사건 때 무장대에 희생된 주민을 기리는 비석. 성읍리는 원래 조선시대 정의현의 중심지였고, 일제 강점기에도 1915년부터 1934년까지 면사무소가 있었던 곳이다. 또한 4·3사건 초기에는 성읍지서가 있었고 일찍이 민보단 등이 조직되어 주민들이 경비를 섰기 때문에 특별한 사건이 없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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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8일, 18일, 28일에 가서 기원하는 당. 여드렛당은 제일이 음력 8일, 18일, 28일인 당으로 본향당, 일뤠당과 더불어 가장 보편적인 유형의 당에 해당한다. 여드렛당은 대개 토산여드렛당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한다. 이에 따라 서부 지역에서는 정의본향, 동잇본향 등으로 지칭되기도 하는데 ‘정의’는 정의현, ‘동잇’은 ‘동쪽의’정도의 뜻이다. 오늘날 여드렛당의 분포는 동쪽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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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전 근대 시기에 봉[횃불]과 수[연기]로써 급보를 전하던 통신 방법에 이용된 대. 연대(煙臺)는 변경의 긴급한 사정을 중앙이나 또는 변경의 다른 기지, 그리고 해당 지방의 주민에게 알려서 위급할 때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설치한 전통 시대의 통신 방법에 이용된 유적이다. 조선 시대의 읍지류에 따르면, 제주도 내에는 25개소의 봉수대와 3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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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가지의 서쪽을 관통하여 흐르는 하천. 연외천은 서귀포시 서홍동 북쪽 한라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천지연폭포를 경유, 서귀포항을 통해 바다로 들어간다. 서귀포시의 중심 하천이며, 유로 연장은 9.06㎞, 유역 면적은 18.65㎢이다. 주민들은 ‘솟밧내’ 또는 ‘솜반내’라 부르는데, “소(沼)[천지연]의 바깥에 있는 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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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일반적으로 열녀는 남편에 대해 정절을 지킨 여성을 말한다. 남편이 죽은 뒤 수절을 한다거나, 따라 죽는다거나, 외간 남자의 정조 유린 위협에 죽음을 무릅쓰고 대항해 정절을 지킨 여성들이다. 조선은 유교적 위계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로 모든 사회 질서가 남성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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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오름. 해발 고도가 326.4m인 오름으로, 성읍 민속 마을 북쪽 약 1.8㎞ 지점에 위치한 성읍 마을의 "뒷산"이다. 분화구는 화산체의 남동쪽으로 터진 말굽형이다. 오름 사면 대부분은 초지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시대 제주 목사가 성읍리[당시 진사리]를 정의현 읍치(邑治)로 삼을 때 풍수지리적으로 영주산을 주산으로 삼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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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효동에 있는 조선시대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관아건물 터. 영천관은 지방관이나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정의현과 대정현을 왕래하거나 국영목장의 목마를 점검 할 때 숙소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영천관의 위치에 대해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8권 정의현 누정(樓亭)조에 “영천관은 영천천(靈泉川) 서쪽 언덕에 있어 영천사(靈泉寺)와 동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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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행정동. 1981년 서귀읍과 중문면을 병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할 때 토평리 일부와 상효리를 합하여 영천동이라 칭하였다. 영천동의 명칭은 이 마을에 위치한 영처니오롬[영천악(靈泉岳)]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천동은 1416년(태종 16) 정의현이 설치될 때 정의현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81년 7월 서귀읍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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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하예동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예래현(猊來縣)은 1300년(충렬왕 26)부터 1416년(태종 16)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예래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서귀포시 상예동 1239번지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현재 상예1동·하예1동 마을 중심인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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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에 있는 정의현의 첫 읍성 터. 옛 정의현성은 정의현이 설치될 당시 정의현의 첫 읍성이다. 즉, 정의현의 읍치가 성읍리로 옮겨 가기 이전, 정의현으로 일컬어지던 곳이다. 옛 정의현성의 위치는 현 고성리사무소 서북쪽 일대인 고성리 1153, 1219, 1315번지 일대이다. 옛 정의현성의 축성 시기는 확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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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의현 출신의 문신. 본관은 군위(軍威). 자는 흥숙(興叔), 호는 조헌(兆軒)이다. 아버지는 오현(吳晛), 할아버지는 오덕립(吳德立), 증조부(曾祖父)는 오수간(吳守幹)이고, 외조부는 1666년(현종 7)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지낸 고홍진(高弘進)이다. 형제로는 오정신(吳廷臣)·오정인(吳廷寅)이 있다. 오정빈(吳廷賓)은 숙종대 문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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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옥돔에 미역이나 무를 넣어 끓인 국. 옥돔은 이마가 옥처럼 튀어나와 잘생긴 생선이라 하여 옥두어(玉頭魚)라고도 한다. 흰살 생선인 까닭에 비린내가 적고 살이 단단할 뿐만 아니라 담백한 맛이 뛰어나 서귀포에서 가장 고급으로 치는 생선이다. 옥돔국은 제수용이나 귀한 손님의 접대용으로 빠지지 않는 유서 깊은 서귀포 지역 음식이다. 옥돔에 관한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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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온평리 지역은 탐라 전기의 적갈색 토기가 확인되어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보인다. 오름이나 하천이 전혀 없는 거의 암반으로 이루어진 조금 높은 밋밋한 평원으로 된 마을이다. 온평리의 옛 이름은 열온이 또는 열운이다. 혼인지(婚姻池) 전설과 관련된 맺은 곳[결혼한 곳]의 뜻이다. 19세기 중반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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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장례가 끝난 뒤 하는 놀이. 마을에 장례가 생기고 호상(好喪)일 경우 상두꾼들은 사전에 마을 어른들 중에 덕망 있고 비교적 재력이 있는 사람을 비밀리에 지목해 두었다가 장례절차가 끝나고 돌아올 무렵이면 가마를 꾸미고 지목해 둔 사람을 원님으로 모셔 가마에 태우고 마을까지 내려온다. 상두꾼 중 일부는 미리 내려와 원님으로 지목된 집에 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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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호근동에 있는 조선 시대 과원 터. 1653년(효종 4) 이원진(李元鎭)이 편찬한 『탐라지(耽羅志)』 과원조(果園條)에 정의현 지역에 정자, 독학, 별과원, 우전, 금물, 향목, 원통, 성산 8개소가 등장한다. 이 자료에 의하면 식재된 감귤류는 당유(唐柚) 2그루, 산귤(酸橘) 4그루, 유자(柚子) 119그루 외에도 새로 심은 각종 과수 20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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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위미리는 적어도 18세기 중반 이전에 형성되었다고 하며, 해안변에서 중산간 지역까지 길게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위미리의 옛 이름은 쉐미, 뛔미, 뛔밋개라 부르고, 한자로 우미촌(又尾村) 또는 우미포(又尾浦)로 표기하였다. ‘우미’라는 명칭은 마을 북쪽에 큰동산·족은동산·쇠동산이 있는데 쇠동산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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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형벌 제도인 유형(流刑)을 집행받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유배된 죄인. 제주 유배는 고려 시대에 시작되었지만 조선에 이르러 오형(五刑) 제도가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섬이라는 고립성과 폐쇄성, 그리고 한양과 가장 먼 지역 중 하나라는 지리적인 특징은 추방과 격리라는 유형의 본질에 가장 잘 부합되는 지역으로 1392년(태조 1)부터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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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의귀리에서는 탐라 전기의 토기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1,000여 년 전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약 450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의귀리의 전 농토가 감귤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며 대다수의 주민이 감귤 재배에 종사하고 있다. 의귀리의 옛 이름은 옷귀[옫뀌], 옥귀[옥뀌],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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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로 재임하였던 이익태(李益泰)가 기록한 기행문. 이익태[1633~1704]는 1694년(숙종 20) 7월부터 1696년(숙종 22) 9월까지 제주목사로 재임하였다. 『지영록(知瀛錄)』은 이익태가 제주목사를 제수받고 부임하기까지의 과정, 재임 기간 중의 업무와 제주 관련 역사, 그리고 임기를 마치고 떠나기까지의 행적을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문집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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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사람들이 형성해 온 지리적 현상. 서귀포시는 제주도 한라산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형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서 사면은 3°~5°의 매우 완만한 경사이며, 남북 사면은 5° 정도로 약간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한국 최남단에 위치하여 남쪽으로 해양을 끼고, 북쪽으로는 겨울철의 북서 계절풍을 가로막는 높은 한라산을 등지고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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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의현감이 정사를 보던 관아 건물. 일관헌이라는 편액의 뜻은 해를 가장 먼저 바라볼 수 있는 집이라는 의미이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척자(尺子)』의 “중국에서 신성시하는 태산 정상에 봉우리가 셋이 있는데 그 중 동쪽의 것을 ‘일관’이라 하여 닭이 울 때 일출을 본다[태산상유삼봉 동일일관 계명시견일출(泰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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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구 남제주군) 동부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옛 행정 구역. 1273년(원종 14년) 원의 직할령이 되었던 탐라가 고려에 환속되어 1년이 지난 1295년(충렬왕 21년)에 제주의 행정단위는 제주목으로 개편되었다. 이와 더불어 1300년(충렬왕 26년)에 이루어진 탐라의 행정단위 개편 즉, 탐라 지역의 행정단위가 분화․확대 개편된 사실은 당시 탐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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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1리 일대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 1416년(태종 16년) 5월 6일에 제주도 안무사 오식(吳湜)과 전 판관 장합(張合) 등이 제주를 삼읍으로 나눌 것을 건의하여 정의현을 두었다. 정의현이 설치될 당시의 정의현성은 지금의 위치가 아닌, 성산읍 고성리에 위치하였다. 사실 정의현성의 위치는 애초부터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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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정의현[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관아 동·서·남문 밖에 세워 성안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성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였던 12개의 석상. 돌하르방은 조선 시대 제주 삼읍인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의 성문 입구에 세워져있던 석상(石像)으로, 성안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성을 지키는 수문장으로서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 돌하르방은 우석목·무성목·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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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정의현[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관아 동·서·남문 밖에 세워 성안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성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였던 12개의 석상. 돌하르방은 조선 시대 제주 삼읍인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의 성문 입구에 세워져있던 석상(石像)으로, 성안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성을 지키는 수문장으로서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 돌하르방은 우석목·무성목·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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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민속 마을. 제주 성읍마을은 1416년(태종 16) 지금의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되었던 정의현청이 1423년(세종 5) 지금의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로 옮겨진 이래 1914년 군현제가 폐지 될 때까지 500여 년간 정의현에 의해 관리되었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제주 성읍마을은 유형·무형의 많은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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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성읍민속마을 내에 위치한 전통가옥. 구한말 정의현의 객사 앞에 위치한 가옥으로, 원래 객주집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의 가옥은 조일훈의 조부가 1901년에 건립하였다. 넓은 터에 안거리[안채], 밖거리[바깥채], 사이에 있는 모거리가 ㅁ자형으로 네거리집이다. 제주 성읍마을 객주집은 정의현의 주요도로였던 남문길에 ‘노다리 방죽’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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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 있는 전통 초가. 민가(民家)라는 것은 항상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인문 환경의 독자적인 성격으로 인해, 지역마다 다른 양상을 보이게 마련이다. 제주의 초가(草家) 역시 제주 지역이 갖는 독특한 인문 환경과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한 민가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서귀포 지역에도 이러한 민가 형식의 초가가 다수 중요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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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의 역사. 1. 대정현(大靜縣) 대정현은 1416년(태종 16)부터 1910년까지 서귀포시 중심부 서쪽인 옛 중문면과 안덕면·대정읍 일대에 있었던 옛 행정 구획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대정현의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정의현(旌義縣)과의 경계까지 57리이고, 남쪽으로 바다까지 10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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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진(鎭)의 외곽을 둘러서 축조한 성곽. 진(鎭)은 삼국 시대 말부터 조선 시대까지 설치되었는데, 조선 시대에 들어오면서 순수한 의미의 군사적 거점 지역의 성격을 띠게 되면서 북방 변경 지역뿐만 아니라 남방의 해안 지역에도 진이 많이 설치되었고, 이 진을 둘러서 성곽이 축조되게 되었다. 제주도에도 제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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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에 위치한 정의현에 소속된 연대. 천미연대는 동쪽으로는 말등포 연대와 응소(應召)하였고, 서쪽으로는 소마로 연대와 응소하다가 이후 벌포 연대와 직접 교신하였다. 말등포 연대와의 직선거리는 6.9㎞이고 소마로 연대와는 5.3㎞이다.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천미연대의 유래는 표선면 하천리와 성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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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2년(명종 7) 왜구가 천미포(川尾浦) 쪽으로 접근해 와서 난동을 부린 사건. 1552년(명종 7) 5월에 포르투갈인을 포함한 200여명의 왜적이 중국 상인 등과 함께 8척의 배에 나눠 타고 정의현(旌義縣)[지금의 표선면] 천미포에 흘러 들어와 사람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였다. 2일간이나 전투가 계속되었던 사건으로, 200여 명의 왜구 중 70여 명은 직접 상륙하여 약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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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행정동. 천지동의 ‘천지(天地)’는 ‘천지연(天地淵)’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천지동은 1416년(태종 16) 정의현이 설치될 때 정의현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81년 7월 서귀읍 일원과 중문면이 통합되어 서귀포시로 승격되면서 서귀동의 일부[옛 서귀 1·2리의 일부]와 서흥동의 일부를 합쳐 천지동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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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년 제주도의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를 서문(序文)으로 써서 제작한 제주도 지도와 서문. 3단 형식으로 된 이 지도는 상단과 하단에 서문을, 중간에는 지도를 배치하였다. 하단 말미에 “강희 기축 정월 이등 개간(康熙己丑正月李等開刊)”라고 되어 있어, 강희 기축년인 1709년 정월에 이(李) 아무개 등에 의해 처음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이 아무개는 1707년(숙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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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태흥리는 고려 말 경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해, 조선 후기에 현재의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면적은 좁으나 수산 자원이 풍부하여 수산 양식의 적지이다. 태흥리(泰興里)는 한자의 뜻 그대로 크게 흥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새로 붙인 것이다. 태흥리는 전에 펄개[펄깨] 또는 개[깨]라 하여 벌포(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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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속하는 법정리. 토산리는 고려 시대 속현(屬縣)의 하나로 유서 깊은 마을이다. 표선면의 여섯 개 법정리 가운데 가장 서쪽에 위치한다. 전형적인 농촌마을로서 감귤재배가 주요 소득원이다. 토산리는 토산봉[옛 이름은 토산오름] 일대에 형성된 마을이다. 토산1리는 토산봉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웃토산’, 또는 토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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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에 위치한 정의현에 소속된 봉수. 토산봉수는 동쪽으로는 달산봉수와 서쪽으로는 자배봉수와 응소하였으며, 직선거리로는 자배봉수와 9.3km이고 달산봉수와 6.1km이다. 소속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봉수대가 서쪽 봉우리에 있는 이유는 산 정상에 위치했을 경우 자배봉이 앞에 있는 오름에 가로 막혀 서로 교신이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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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1리와 토산2리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토산현(兎山縣)은 1300년(충렬왕 26)부터 1416년(태종 16)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토산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표선면 토산리 1475-1번지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 일대에서는 14~15세기 분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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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대대로 살고 있던 씨족 집단의 성씨.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는 제주의 토성(土姓)이 고(高)·양(梁)·부(夫)라고 하였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와서는 토성이라는 명칭이 없어지고 본주(本州)의 성씨에 고(高)·양(梁)·부(夫) 이외에 고씨의 사위인 문(文)씨가 추가되었다. 이로 인해 고(高)·양(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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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법정동. 토평동은 ‘돗드르’, ‘돗벵듸’라고 불렸으며, 이것의 한자 표기가 토평(土坪)이다. 돗드르[猪坪]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나 확실하지 않다. 1416년(태종 16) 정의현이 설치될 때 정의현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864년(고종 1) 정의군 우면 토평리가 되었다. 1914년 정의군 우면의 토평리와 동흥리의 각 일부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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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서귀포시 표선면은 제주특별자치도의 동남부에 위치한다. 동쪽은 천미천(川尾川)을 경계로 성산읍과 인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송천(松川)을 경계로 남원읍과 접하고 있다. 농업·수산업·축산업 등 1차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 동남부의 관광 중심지로 부각되면서 관광서비스산업 등 3차산업이 발달하고 있다. 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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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서 거주 공간과 묘지를 조성하는 데 이용되었던 상지술(相地術)이자 토지관(土地觀). 풍수는 땅속에 있는 기(氣)의 흐름을 파악하여 자리를 잡음으로써 재앙을 막고 복을 추구하는 일종의 전통적인 기술학(技術學)에 해당한다. 이것은 본래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경험적으로 터득한 지혜의 산물이다. 풍수는 글자 그대로 바람과 물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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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하례리는 적어도 1,000여 년 전부터 이 일대에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19세기 중반에 예촌(禮村) 마을 남쪽 ‘가마귀르’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례리의 옛 이름은 알여ᅀ을, 알호촌, 알예촌이다. 자연마을 ‘가마귀르’의 한자 표기는 오지(烏旨)이며, 오지리(梧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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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법정동. 하효동은 ‘쉐둔·쉐돈’이라 불리다가 후에 ‘알쉐돈’이라고 불렸으며, 한자로는 하우둔(下牛屯)으로 적었다. ‘쉐둔[牛屯]’은 소를 모아서 기르던 곳을 이르는데, 하효동은 알쉐돈[아랫쉐돈]에서 명칭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하우둔이 하효돈으로 변하였고 나중에는 하효(下孝)라고 불렸다. 신효동은 800여 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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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한남리는 현씨·오씨·고씨가 많이 살고 있어 삼성촌(三姓村)이라고도 알려졌다. 광활한 야초지(野草地)를 보유하고 있어 축산업에 적합하며, 주민 대부분이 감귤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한남리(漢南里)는 한라산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옛 이름은 ‘브등지’, ‘부등지’이며. 민간에서는 부등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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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공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행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국가 작용. 행정이란 국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행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으로 입법과 사법 이외의 국가 통치 작용의 하나이다. 즉, 행정부의 활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귀포시는 대륙[러시아와 중국]과 해양[일본과 동남아]를 연결하는 요충지이며, 천혜의 자연경관이 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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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의 역사·지리·풍속·산업 등을 조사, 연구하여 편찬한 책. 향토지는 그 지방의 문화를 이룩해 낸 주체와 객체, 그리고 매개체의 유기적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된 지방지로, 주로 조선 시대의 읍지(邑誌), 그리고 1946년 이후 편찬된 군지(郡誌)·시지(市誌)·읍지(邑誌)·면지(面誌)·마을지 등을 말한다. 1. 사찬 읍지(私撰邑誌)와 관찬 읍지(官撰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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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법정동. 호근동의 '호근'은 호도(好島), 즉 범섬에서 가까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나 확실하지 않다. 옛 이름은 ‘호근머들·호근머흘’로, 한자 표기로 호근뢰(好斤磊)라 하였다. '뢰(磊)는 제주도 방언으로, ‘돌무더기[磊]’를 ‘머들’, ‘머흘’이라 한다. 호근동은 1416년(태종 16) 정의현이 설치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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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하례리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호아현(狐兒縣)은 1300년(충렬왕 26)부터 1416년(태종 16)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호아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남원읍 하례리 238번지 일대 속칭 ‘대궐터’로 추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일대에서는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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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포시 서홍동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홍로현(洪爐縣)은 1300년(충렬왕 26)부터 1416년(태종 16)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홍로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서귀포시 서홍동 150번지 일대 속칭 ‘대궐터’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속칭 ‘대궐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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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하던 진달래 꽃잎을 지져 먹으면서 정담을 나누는 민속놀이.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전병을 만들고 진달래꽃잎 따위를 떡 안팎으로 붙여 참기름에 지져 만든 것을 화전이라고 한다. 봄철에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화전을 지져서 먹으며 정담을 나누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하루를 즐기는 것을 화전놀이라고 한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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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행정동. 효돈동은 일찍부터 ‘쉐돈[牛屯]’ 마을로 불렸는데, 이는 ‘쉐[소, 牛]’를 모아 두었던 곳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18세기 중후반부터는 효돈(孝敦)으로 불리다가 효돈동(孝敦洞)이 되었다. 1416년(태종 16) 정의현이 설치될 때 정의현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46년 제주도제가 실시되면서 제주도 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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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서 전통 시대에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긴 자녀. 효자란 자신의 부모에게 아들의 의무를 다한 사람을 일컫는다. 결혼한 여성의 경우 남편과 시부모를 위해 희생했던 반면에, 남편은 아내와 자식을 위해 희생했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이는 가부장제 사회의 전형으로 아들이 없는 경우, 효부와 효자가 없어서 대접을 받을 수 없었으므로 혈육에서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