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색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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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 제주의 군제(軍制)와 봉수(烽燧)·연대(烟臺)를 기록한 문헌. 『제주삼읍군제(濟州三邑軍制)』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제주병제봉대총록(濟州兵制烽臺摠錄)』[규 4485)] 수록되어 있는데 1880년대 서귀포 지역의 군제(軍制)와 봉수(烽燧)·연대(烟臺)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편자·간행지 미상의 필사본으로, 1책(冊) 18장(張)으로 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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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색달동에 있는 용천수. 서귀포시 색달동 서쪽에 위치한 생수천의 하천 바닥 암반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로서, 과거에는 색달동 주민들의 식수와 빨랫물, 혹은 여름철 물놀이용으로도 사용해 왔으며, 현재는 수변 공간을 중심으로 주변에 어우러진 숲과 더불어 여름철 휴식 공간으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 생수물은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이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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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송산동에 위치한 천주교 교회. 제주교구의 두 번째 본당으로, 1900년 6월 12일 정의군의 한논[현 서귀포시]에서 설립되었으며, 1902년 7월경에 홍로[현 서귀포시]로 이전되었다가 1937년 8월 15일에 서귀면 서귀리[현 서귀포시 송산동]로 다시 이전되었다. 이어 1958년에 모슬포 본당, 1970년에 서귀 복자 본당, 1973년에 성산포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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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습한 땅으로, 항상 물이 있는 지역. 「습지 보전법」제2조에서는 습지(濕地)를 “담수(淡水)·기수(汽水) 또는 염수(鹽水)가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지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습지는 내륙 습지(內陸濕氣)와 연안 습지(沿岸濕地)로 구분된다. 내륙 습지는 육지 또는 섬 안에 있는 호(湖) 또는 소(沼)와 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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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탐라 초기]의 무덤. 제주도 고인돌 6형식 중에 지하형인 제2형식에 속한다. 제2형식은 남방식 유형에 속하나, 전형적인 남방식에 비해 지석 대부분을 제대로 다듬지 않은 할석을 사용하였다. 또한 지석의 숫자는 3~10매로 그 예가 다양하다. 이러한 형식은 제주도 고인돌 형식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해당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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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색달동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의 교회. 1914년 최대현 전도인의 전도 활동으로 이기언·강규언·김성하·고임생·강문호 등이 교회를 중문교회를 설립하였다. 강문호·강규언 등은 3·1 운동에 참가하여 옥고를 치룬 인물이다. 중문교회는 1956년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의 분열로 한때 교회가 분립되기도 하였으나, 1965년 4월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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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당시 소개령으로 폐허가 되어, 복구되지 않은 마을. 천서동(川西洞)은 내[川] 서쪽에 있다 하여 일명 ‘냇서왓’으로 불리우며, 천서동은 ‘냇새왓슬’의 한자 차용 표기이다. 천서동은 마을 북쪽으로 제2산록도로와 접해 있다. 4·3사건 당시 약 45가구, 120여 명 정도의 주민이 화전갈이와 목축업을 하며 살았다. 천서동은 동동과 서동으로 나뉘어진 비교적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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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색달동에 있는 천제연 암벽에 새겨진 글자. 천제연 마애명은 서귀포시 색달동 천제연 1단 폭포 서쪽 암벽에 새겨져 있다. 1767년(영조 43)에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에 유배 왔던 임관주(任觀周)[1732~?]가 유배에서 풀려 돌아가기 전 제주의 명승지를 유람할 적에 천제연에 들려 천제연의 풍광과 1단 폭포 못가에서 행해지던 활쏘기의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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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의 바닷가 마을에서 행해지는 해신 신앙의 한 형태. 제주도에는 원래 풍어제라는 이름의 의례가 없었다. 영등굿을 할 때 해녀와 어부가 함께 모여서 한 해 동안의 바다의 풍어를 기원하거나 마을의 돈지당이나 해신당에서 기원하는 형태였다. 최근에 수협이나 마을 어촌계가 중심이 되어 어부들을 중심으로 풍어제라는 이름으로 제를 지내는 곳도 생겨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