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김정희 유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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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정현[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 등 500여종에 이른다. 1786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가문인 경주 김씨는 조선 시대 대표적인 훈척가문으로 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김노경(金魯敬)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영조의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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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김정희 유배지에서 열리는 추사 기념 문화 예술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조선 시대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 대정골에 유배되어 9년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 불후의 명작인 「세한도」를 남기고 지역민의 교육에도 힘써 대정고을이 예향의 고장으로 자리 잡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를 기념하여 2002년부터 매년 추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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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아직까지 ‘대정(大靜)’이라는 명칭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대정읍은 1416년(태종 16) 대정현이 설치되었을때 대정현청을 두었던 곳이다. 대정현은 1864년(고종 1)에 군으로 승격되었으며, 1880년다시 현으로 환원되었다. 1895년 전국 23부의 지방 제도 하에서 제주부 대정군 우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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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와 관련된 정신적·사회적 활동의 결과물로 다음 세대로 계승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지정·관리하는 문화유산. 「문화재 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것”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으며, 유형·무형 문화재와 기념물·민속 문화재 등으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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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있는 역사적·고고학적·예술적 자료를 수집·보존·진열하여 일반인에게 전시하는 시설. 박물관은 넓은 의미에서 미술관이나 과학관 이외에 기술관·공립 기록 보존소·사적 보존 지역까지 포함할 수 있다. 박물관의 분류는 설립 주체에 따라 국립 박물관·공립 박물관·사립 박물관 등으로 나눌 수 있고, 전시 자료의 내용에 따라 종합 박물관과 전문 박물관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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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유배생활을 했던 곳. 조선 시대 유배 중에 가장 가혹한 조치인 절도안치(絶島安置)는 중죄인을 원악(遠惡)의 도서에 유폐시키는 형벌이다. 조선 시대는 당쟁 때문에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유배가 활용되었고, 더욱이 원배(遠配)보다 도배(道配)로서 절도안치가 선호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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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선조 중엽에 대정현의 성(城) 일대를 동성리와 서성리로 분리하여 부르다가, 1864년(고종 1) 동성리가 안성리와 인성리로 나뉘었다. 대정현의 성 일대에 자리 잡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나, 안성리라는 명칭이 정확하게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1416년(태종 16)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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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와 제주시 용담동 사이에 있는 도로. 지방도1135호선의 총연장은 29㎞이며, 이 중 서귀포시 구간은 12.8㎞이다. 지방도1135호선은 중산간 지역을 개발하기 시작한 1967년부터 산업도로라고 불리어지다가 1981년 8월 25일 대통령령 제17348호로 국도 95호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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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항이 주산지인 방어를 주제로 한 특산물 축제. 방어는 농어목 전갱이과의 물고기로 횟감이나 초밥 재료로 인기가 높다. 방어는 가을이 되면 월동을 위해 캄차카 반도에서 남으로 회유하는데, 마라도가 주요 월동지로 이 지역 특산물인 자리돔을 먹이로 겨울을 보낸다. 매년 10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마라도를 중심으로 방어 어장이 형성된다. 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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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대정현(大靜縣)에 남아있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유배 생활과 관련된 흔적. 조선 시대의 대정현(大靜縣)은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과 안덕면, 한경면 일대로서 오늘날까지 대표적인 유배지로 인식되고 있다. 1495년(연산군 2) 환관 김순손(金舜孫)이 연산군의 난폭함을 지적하였다가 충군형을 받고 유배된 이래 조선 왕조 동안 총 60여 명이 유배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