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허용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786
한자 耘虛龍夏
이칭/별칭 이학수,이시열,박용하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태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연표보기 - 운허용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0년 - 운허용하 대성학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1919년 『한족신보』 주필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 운허용하 광한단 결성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9년 - 운허용하 보성학교 교장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29년 - 운허용하 조선혁명당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61년 - 운허용하 『불교사전』 편찬
활동 시기/일시 1963년 - 운허용하 대통령 표창 수상
몰년 시기/일시 1980년 11월 18일연표보기 - 운허용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운허용하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운허용하 출생지 - 북한 평안북도 정주시
학교|수학지 대성학교 - 북한 평양직할시
활동지 동창학교 - 중국 봉천
활동지 봉선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묘소 봉선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승려
성별

[정의]

경기도 남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가계]

운허용하(耘虛龍夏)[1892~1980]의 속명은 이학수(李學洙), 이명은 이시열(李時說)이다. ‘운허(耘虛)’는 법호이고, ‘용하(龍夏)’는 법명이다. 1892년 음력 2월 25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고안면(高安面)[현 북한 평안북도 정주시] 안흥리(安興里)에서 아버지 이종빈(李鐘彬)[1869~1919], 어머니 배천 조씨(白川 趙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주 이씨(全州 李氏) 안원대군파(安原大君派) 23세손이며, 춘원 이광수와는 8촌간이다.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과 딸을 두었으나, 외아들 이우근은 6·25전쟁 중 북한으로 갔고, 딸과 사위는 행방불명되었다.

[활동 사항]

운허용하는 17세까지 집에서 한문을 배우고 결혼하였다.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후 평양의 대성학교에 입학하였지만, 일본의 탄압으로 1912년 학교가 강제 폐교되었다. 이후 이학수에서 ‘이시열(李時說)’로 개명하고 만주로 건너가 중국 봉천의 동창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는 등 민족 교육을 계속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 정신 고취를 목적으로 설립된 민족 운동 단체인 한족회(韓族會)의 기관지로 창간된 『한족신보(韓族新報)』의 주필 역할을 맡았으며, 1920년에는 독립운동 단체인 광한단(光韓團)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뒤이어 1921년 1월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잠입하였다가 평안북도 신의주부에서 구속되었고, 다시 서울로 왔지만 일본 경찰의 추적이 이어지자 기차로 강원도 평강군의 평강역까지 도주한 뒤 강원도 회양군에 있는 봉일사(鳳逸寺)에 은신하였다. 이때부터 불문에 귀의하여 ‘박용하(朴龍夏)’로 이름을 바꾸고, 경송(慶松)을 은사로 삼아 강원도 고성군의 유점사(楡岾寺)에서 불교초등과를 이수하였다.

운허용하는 유점사를 거쳐 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양주군 진접면 부평리]의 봉선사(奉先寺)에서 월초거연(月初巨淵)의 지도와 보호를 받으면서 불교인으로서 수행에 전념하였다. 하지만 1929년에는 다시 만주로 건너가 중국 봉천의 보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조선혁명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등 3년 동안 독립운동에 투신하다가 일제의 습격을 피해 탈출하여 다시 봉선사로 돌아왔다. 봉선사로 돌아온 후에는 강원(講院)을 설립하고 후진 양성에 몰두하였으며, 일제 강점기 말인 1944년 3월 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지역으로 이광수가 이주해 오자 식량을 지원하는 등 정착에 도움을 주었다.

해방 1년 후인 1946년 9월부터는 봉선사에 부설된 광동중학교의 교사로 이광수를 초빙하여 연말까지 교사로 재직하게 하였으며, 이광수가 1950년 6·25전쟁 당시 납북되어 사망한 이후에는 1976년 이광수의 부인 허영숙 등 이광수의 유족들과 함께 봉선사 주지로서 사찰 경내에 춘원 이광수 기념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주로 후진 양성과 불경 번역 등에 전념하다가 1980년 11월 18일 입적하였다.

[저술 및 작품]

운허용하의 주요 저서 및 번역서로는 1961년 국내 최초로 편찬된 『불교사전』을 비롯하여 『불교의 자비』, 『불교의 깨묵』, 『한글금강경』, 『정토삼부경』, 『대교지문』 등이 있다.

[묘소]

운허용하의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있는 봉선사 경내에 있다.

[상훈과 추모]

운허용하는 196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1991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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