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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761
한자 改新敎
영어음역 Gaesingyo
영어의미역 Protestantism / Reformed Church
이칭/별칭 프로테스탄트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천갑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 중인 그리스도교의 분파.

[연원]

개신교가 한국 사회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특히 1882년 한미통상조약 이후 미국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부를 필두로 하여 캐나다, 호주, 영국 등에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파송되었다.

선교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선교부 사이에 경쟁과 중복 선교가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교부들 사이에 선교지 분할협정이 체결되었으며, 그 결과 각 지역은 특정 교파가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대도시의 경우에는 여러 교파가 동시에 선교할 수 있었지만, 그 밖의 지역에서는 특정 선교부만 진출하도록 협정이 체결되었다. 당시 성남 지역은 북장로교 선교부의 선교 구역으로 할당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 성남 지역에서는 장로교가 뚜렷한 강세를 보이게 된 것이다.

[선교과정]

1883년부터 시작된 미국 장로회 공의회(Council of Mission Holding the Presbyterian Form of Government)는 1901년부터 1906년까지 호주 장로교와 캐나다 장로교까지 합하여 한국인 목사, 장로들을 가입시켜 합동공의회(United Council) 시대를 열었다.

합동공의회에서 결정된 예양협정(Commity Agreement)에 따르면 남장로교는 아직 선교사의 발길이 닿지 않은 충청도의 남서 해안과 전라도 선교 구역을 할당받았다. 이에 따라 남원 지역은 남장로교의 선교 구역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1907년 9월 17일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각 지방에는 대리위원을 두고 노회 업무를 위임 처리하도록 하였다. 독노회 설립에 남원 지역이 포함된 북전라 지역 총대로는 선교사 이눌서, 최의덕, 전위렴, 마로덕과 장로 최흥서(임피), 최중진(태인)이 참여하였다.

1908년 제2회 독노회에서 각 지방을 담당하는 8대리회가 설치되는데 남원 지역이 포함된 북전라 지역 대리회도 함께 설치되어 노회 업무를 위임받아 처리하게 되었다. 독노회의 대리회 기간 중 1908년 남원읍교회와 1909년 남원군 신풍리(新豊里)에 신풍리교회가 새로 설립되었다.

1910년을 전후로 임실, 남원, 운봉 등 교회의 당회 권리는 류서백 목사가 맡도록 대리회에서 허락하였다. 류서백 목사가 담당한 지방은 ‘흥덕지방’ 또는 ‘남원지방’이라고 불렀다.

전라남북지방대리회에서는 독노회가 존속한 기간인 1907~1911년까지 무려 41차례나 회집하며 5년 동안 북전라 지역 각 교회에서 노회 업무를 처리하였다. 대리회에서는 각 지교회 당회 권리를 지역 담당목사에게 맡기고 또 맡은 자를 변경하는 일도 의결하였다.

장로교회는 그 동안 하나의 독노회로서 전국 일원을 대상으로 관리하던 것을 경상북도 대구 남문안예배당에서 지역별로 노회를 설립하고 1912년 9월에 총회를 조직하였다.

총회 설립을 위해 7노회를 조직할 때 북전라대리회와 남전라대리회 회원들이 모여서 전라노회를 창립하였다. 전라노회 창립회원 27명 중에 임실, 남원, 운봉 지역을 담당하는 류서백 목사도 포함되었다.

제1회 전라노회에서 전주 지방 선교사들의 담당 지역은, 전주 서편은 이눌서 목사가 담당하였고 전주 남편은 최의덕 목사가 담당하였으며, 동편과 북편은 각각 강운림 목사와 마로덕 목사가 담당하였다. 이에 따라 최의덕 목사는 임실, 남원, 운봉, 정읍, 태인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5회 전라노회에서 전주 지방 시찰위원에는 최의덕, 이눌서, 마로덕 목사가 포함되었다. 당시에는 담당 선교사나 목사가 직접 담당 지역의 교회의 치리(治理)와 사경회, 성경 교리 문답, 부흥회 등을 주관하였다.

1917년 9월 제6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는 전북노회와 전남노회로 전라노회를 분립하는 것이 승인되었다. 전북노회 제1회 노회에서 전북노회 지역의 각 교회 주일학교 상황은 주일학교 교사가 107명이고 주일학교 학생이 2,127명으로 그 규모가 상당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많았으므로 전북노회에서는 대제직회 때나 대사경회 때 각 직원을 격려하여 교회 주일학교 확장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당시 전북노회에서는 주일학교 확장운동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교회설립]

전라노회의 전주읍 동남과 남편 지방을 담당하였던 선교사 중 한 사람인 위인사 선교사의 전도로 1906년 11월 16일 비홍교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1945년 10월에 해방으로 인해 귀국한 유갑득을 중심으로 비홍교회가 재설립되었으며, 1982년 10월 3일 비홍교회는 낙원교회(예장통합)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장로회 사기(史記)에는 1908년 남원읍교회(현 남원제일교회)가 설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그 시초는 1904년 조원집이 열정적으로 전도함으로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조원집은 딸을 데리고 당시 시장터였던 현 광한루(廣寒樓)에서 노방 전도를 하면서 남원읍 지역의 최초 교회인 남원읍교회의 초석을 세웠다.

하지만 조원집이 천민 출신임이 알려져 결국 남원읍교회를 떠나게 되자 1905년 남원읍교회는 최극재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이 때 초가 네 칸을 매입하고 예배를 드렸는데 동년 8월 최의덕 선교사의 집례로 원입 교인 40명을 문답하고 원입시켰다.

1915년 4월 1일 위인사 선교사가 운봉 지역에 임시 예배처소를 마련하여 예배 모임을 가진 것이 1916년 12월 7일 설립된 운봉교회(예장통합)의 시초가 되었다.

1957년 9월 7일 조요섭 선교사의 지원으로 남원읍 동충리 344번지 제재소 창고를 임대하여 남원동북교회가 설립되면서 남원읍교회가 기독교장로회 소속 남원읍교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남원동북교회로 분리되었다. 이전의 남원읍교회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전북노회 소속이었다.

남원노회는 전북노회에서 분립하고 남원·임실·순창 3개 지역을 통합하여 전북남노회라 불러오다가 지역성을 살려 남원노회라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황]

『2006 전북기독년감』에 따르면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 소속이 55개 교회로 남원 지역에서 가장 큰 교세를 형성하고 있다. 그 다음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16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소속 15개,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소속 11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소속 7개 등이 활동하고 있다.

다음으로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6개, 대한예수교장로회(연장) 소속 5개,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 4개, 브니엘총회 소속 4개,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3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총회) 소속 3개, 그리스도의교회 소속 2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소속 2개,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소속 2개 등이 활동하고 있다.

그 외 1개 교회만 있는 교파로는 고신개혁 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여목), 대한예수교장로회(독노회), 대한예수교장로회(연장), 대한예수교오순절성결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개혁),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정통),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중앙) 등이 활동하고 있다.

2007년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남원노회에는 교회 90개, 교인 13,892명, 세례 교인 8,362명, 목사 102명, 장로 145명 등이 소속되어 있다. 남원노회는 임실, 남원, 순창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순수한 남원 지역의 예장통합 소속 교회는 앞서 제시한 55개이다.

[참고문헌]
  • 『2006 전북기독년감』(전북기독신문사, 2006)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http://www.nwpck.or.kr)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http://www.pc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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