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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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炳昊 |
영어음역 | Kim Byeongho |
이칭/별칭 | 계림(鷄林),김탄(金彈)(필명)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류덕희 |
성격 |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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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진주시 |
성별 | 남 |
생년 | 1904년 11월 16일 |
몰년 | 1959년 3월 15일 |
본관 | 의성(義城) |
호 | 계림(鷄林) |
대표경력 | 예하초등학교 교장|조선문학가동맹 진주지부장 |
상훈 | 팔등수서보장(八等授瑞寶章)[1944년] |
[정의]
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활동한 한국 현대 시인.
[개설]
김병호(金炳昊)[1904~1959년]는 1904년 11월 16일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당시 진주부)에서 출생하였다. 본적은 경상남도 진주시 평안동 201번지[진주대로1079번길 4]이며, 아버지 김상두(金相斗)와 어머니 김장아(金長兒) 사이에서 2남 3녀 중 차남이다. 첫째부인 신씨(辛氏)와 결혼하여 1남 2녀의 자녀를 두었고, 신씨가 사망하자 새로이 정옥봉과 결혼하여 3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교사로 활동하였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다수의 시작품은 물론 동시, 동화, 비평, 수필 등의 여러 방면에서 창작을 전개하였다. 김병호의 작품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당대의 현실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많으며 사회참여적 성격이 강했다. 1959년 3월 15일 위암으로 사망, 경상남도 부산 전포동의 황령산 시립공동묘지에 묻혔다.
[학력]
1925년 3월 경상남도 공립사범학교(현 진주교육대학교의 전신) 특과를 제1회로 졸업하였다.
[경력]
경상남도 진주와 인근지역에서 교사 및 교장으로 근무하였다. 1946년 2월 조선문학가동맹 진주지부장이 되었으며, 경상남도 부산 「민주신보」의 교열기자로도 활동하였다.
[활동사항]
1925년 『조선문단』에 독자투고한 시(詩) 「안진방이 꽃」이 당선되고, 192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오호대나옹(嗚呼大奈翁)」이 입선된 이후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28년 3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신시단(新詩壇)』을 창간·발행하며, 동화도 창작하였다. 1931년 3월, 8인 공동 프롤레타리아 동요집 『불별』을 간행, 이때부터 필명인 ‘김탄(金彈)’을 사용하였다.
[작품]
지금까지 밝혀진 김병호의 작품은 시 78편, 동시 17편, 동화 2편, 문학론 및 비평 10편, 수필 5편, 민요번역 1편, 과학문 18편, 기타 2편으로 시인으로서의 활동이 뚜렷하다.
「안진방이 꽃」, 「설야」, 「고적(孤寂)」 등의 작품은 계급주의 의식을 바탕으로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으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의 작품들이 많다.
[상훈과 추모]
1944년 11월 15일 ‘팔등수서보장(八等授瑞寶章)’의 훈장을 받았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최초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 주체성의 회복과 사회의식의 표출, 체험의 사실주의적 형상화는 민족저항시의 범주와 현대서정시 사이의 교량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