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전기의 장군. 본관은 진주(晋州). 목종(穆宗)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지기(志氣)가 있고 강하고 과감하여 주로 전공을 통하여 입신하였다. 1021년에 생을 마쳤다. 1012년(현종 3) 5월에 안찰사(按察使)로서 영일(迎日)·청하(淸河)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東女眞)을 도부서(都部署)의 문연(文演)·이인택(李仁澤)·조자기(曺子奇)와 함께 격퇴하였다. 1016년 내사사인(...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설매리에 있는 강민첨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산앙사(山仰祠)에 봉안된 강민첨(姜民瞻)[?~1021]은 진주(晋州)가 본관으로 목종 때 문과에 급제, 1012년(현종 3)에 안찰사(按察使)로서 영일(迎日)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東女眞)을 격퇴하였다. 1018년 거란[契丹]이 10만 대군으로 쳐들어오자 강감찬(姜邯贊)의 부장(副將)으로 출전하여 흥화진(興化鎭)...
역은 전근대시대의 국가권력을 중앙정부와 지방에 효율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설치한 교통통신조직의 일종이고, 원은 고려·조선 시대에 출장한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시설의 일종이다. 역(驛) 역은 우역(郵驛)이라고도 한다. 역제는 국가의 동맥으로서 군사·외교적 측면만이 아니라 교통·행정적 측면에서도 중앙집권국가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에 위치한 은열사(殷烈祠) 내의 암벽에 새겨진 글씨. 은열사 석각은 강민첨(姜民瞻)[?~1021] 장군의 사당인 은열사의 뒤편 화강암벽에 새겨진 ‘강은열공유지 (姜殷烈公遺址)’라는 글씨로서 1974년 12월 28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자연 암벽으로 이루어진 석각 바위의 전체 크기는 가로 5m 세로 1.4m이다. 암벽의 오른쪽에 남아...
진주의 봉황형국을 완성하기 위한 진압과 비보를 자세하게 기술한 작품 진주의 진산(鎭山)은 비봉(飛鳳)의 모습이요 안(安)은 금룡(金龍)이니 관기는 그 아래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무릇 사방에서 배포(排布)를 모두 봉(鳳)에 붙쳐서 이름하였으니 객사(客舍)의 앞에 누(樓)로는 봉명(鳳鳴)이 있고 관(館)으로는 조양(朝陽)이 있으며 마을 이름으로는 죽동(竹洞)이 있고 벌로수(伐老藪)와...
일반 사회인 또는 국민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평생교육은 대개 교육이 실시되는 장소를 기준으로 가정교육과 정규 학교교육 이외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지칭한다. 또한 평생교육은 시간을 기준으로 학교교육의 이전이나 다음에 오는 교육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평생교육의 의미가 분명하게 규정되지 못하는 이유는, 평생교육이 가정교육 및 학교교육과 상호 밀접한 연관 속에 실시되고 있으...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찬성사로 치사(致仕)하고 진주군(晋州君)에 봉해진 하즙(河楫)의 아들이다. 벼슬에 나가 여러 지방에서 백성들을 돌보았으며, ‘잘못된 것을 알고서 그릇 판단한다면 하늘이 벌을 내릴 것이다.’라는 글을 써서 걸어놓고 일을 보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별세로 3년 동안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있었을 때 우왕이 ‘효를 옮겨 충으로서 삼고 그 애통함을 억제하고 부...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1344년(충혜왕 복위 5) 과거에 급제한 후 1363년(공민왕 12) 전공정랑(典工正郞)으로 있으면서 홍건적의 침입을 막아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1등공신에 올랐다. 1375년(우왕 1) 전라도원수 겸 도안무사에 있으면서 임의로 정원 외의 연호군(煙戶軍)과 별민군(別民軍)을 두었다하여 파면 당하였다. 이때 후임으로 온 원수 유영(柳瑩)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