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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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瀅 |
영어음역 | Heo Hyeong |
이칭/별칭 | 미산(米山),허결(許潔),허준(許準),소미산(小米山)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선옥 |
성격 | 한국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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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허련 |
어머니 | 완산 이씨 |
형 | 허은(許溵)|허락(許洛)|허함(許涵) |
출신지 | 전라남도 진도군 |
성별 | 남 |
생년 | 1861년 |
몰년 | 1938년 |
본관 | 양천(陽川) |
호 | 미산(米山) |
초명 | 허결(許潔) |
[정의]
전라남도 진도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가계]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미산(米山). 19세기 남종문인화의 대가 소치(小癡) 허련(許鍊)의 아들이다. 허련의 나이 44세에 넷째아들로 태어났고, 초명은 허결(許潔)이었으나 후에 허형(許瀅)으로, 만년에는 다시 허준(許準)으로 개명하였다.
[생애]
허형은 어렸을 때 아버지 허련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나 화업을 이어갈 큰아들 허은(許溵)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허은의 호인 미산(米山)을 물려받고, 허련의 화필을 전수받았다. 다산 정약용의 장남 정학연(丁學淵)의 문하에서 시와 서를 배웠다. 1912년 강진으로 이주하였고, 1921년 목포에 정착하여 가난한 삶 속에서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다 1938년 타계하였다.
[활동사항]
허형은 아버지 허련(許鍊)의 재주를 그대로 이어 특별히 독창적이지는 않으나 능숙한 필치를 구사하였다. 산수 및 모란(牡丹), 노송(老松) 등을 그렸으나 산수보다 사군자(四君子)에 수작(秀作)을 냈다.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63세의 나이로 묵매를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작품]
허형의 화풍은 부드러운 붓놀림으로 화면 전체를 가득 메우는 구성과 수많은 미점으로 명암과 양감을 살려 포근한 느낌을 자아낸다. 허형의 대표작으로는「미점산수도」, 「사계십곡병」, 「노매일지십곡병」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허형은 두 아들 남농 허건(許楗)과 임전 허림 형제를 통하여 자신의 예술혼을 꽃피우게 하였으며,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도 유년시절 허형에게 그림을 배우는 등 가문의 화맥을 잇는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