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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하원리호적중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1495
한자 濟州河源里戶籍中草
영어음역 Jeju Hawon-ri Hojeok Jungcho
영어의미역 Second Draft of the Hawolli Family Registers in Jeju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동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문서

[정의]

조선 후기 제주 지역에서 작성된 고문서.

[개설]

『제주하원리호적중초』는 하원리에 있는 고문서 중의 일부로서, 호주를 중심으로 그 호의 구성원에 대한 사항을 기록한 호적 대장을 작성하기 위한 초본이었다.

[구성과 형태]

기재 양식은 지역명, 작통의 차례, 통수(統首)의 직책, 편호의 차례, 주호와 협호의 차례로 이루어져 있다. 주호는 직책, 혹은 신분·성명·나이·본관을 기입한 후 삼대의 성명과 직책, 외조의 성명·직책·본관 등이 열거되었다. 이어서 솔거자의 명단이 기록되었다.

특히 솔거자 중에서 처첩, 혹은 며느리에 대해서는 성명·나이·본관, 삼대의 직책과 성명, 외조의 직책·성명·본관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어서 호의 인구 수와 남녀별 상황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호적중초의 말미에는 하원리의 총 호수와 인구의 합계 및 남녀별 인구를 각각 제시하였다.

[내용]

『제주하원리호적중초』는 대정현에서 작성하여 하급 행정 단위인 하원리에 나누어준 것으로, 행정의 편의를 위하여 이임(里任)들에게 지급된 것이다. 이 호적중초는 호적 대장과 함께 식년마다 작성되었으며, 1898년 이후에는 해마다 작성되었다.

현재 하원리에 남아 있는 호적중초는 총 36권이다. 그러나 인계 인수서인 「전장기(傳掌記)」에 의하면 총 40권이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후 문서를 보관하고 이관하는 과정에서 일부가 유실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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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재 남아 있는 호적중초의 작성 연도

하원리 호적중초는 식년마다 정해진 원칙에 따라 작성되었지만 거의 동일한 형태로 기록되었다. 가경(嘉慶) 1810년 호적중초의 예를 들면, 표지에는 ‘가경십오년정월일경오식하원리호적중초(嘉慶十五年正月日庚午式下院里戶籍中草)’라고 쓴 뒤, 식년식에 의하여 각 호를 편호하여 작통한 후 주호를 중심으로 기록하였다.

호적중초가 작성된 후 대정현감이 서압(署押)을 하고 각 리에 분급하였다. 그 과정에서 리정(厘正), 감고(監考) 들은 중초의 내용을 살피고 실제적인 내용과 상이한 것은 수정을 한 후 호적중초를 관리하는 별유사(別有司), 존위(尊位) 등에게 인계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호적중초는 각 리의 상황을 보다 자세하게 기록한 자료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호적 대장에 기입되지 않은 3세 미만의 남녀의 출생과 사망까지도 빠짐없이 기록되고 있다.

그 외에도 하원리 이래(移來)와 이거(移去), 더부살이하고 있는 자, 그리고 도망, 혹은 표류자에 대한 자세한 상황 등 인구의 이동 및 변동 사항들을 기록하여 실제의 인구, 거주 상황 및 변동 상황을 자세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제주하원리호적중초』는 100여 년에 걸친 내용을 제시하고 있어 지역 내의 총 인구의 변동 및 가족 제도를 역사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그리고 1898년 이후의 호적중초는 호적법 개정에 따라 매년 작성되었으므로 보다 자세한 변동 상황이 제시되고 있으며, 편호 방식과 관련하여 5가작통법에서 10가작통제로의 변화, 그 시대의 호등(戶等)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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