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731 |
---|---|
한자 | 張寅植 |
영어음역 | Jang Insik |
이칭/별칭 | 묵암(黙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보경 |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활동사항]
1848년(헌종 14) 3월 이의식(李宜植)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850년(철종 1) 6월에 사직하고 떠났다.
1848년 정의현감 강이진(姜履鎭)[1798~1865]과 수산진조방장 김기찬(金沂瓚)이 방두포 해변에 일본인 선장 다나카 등 5명이 정박하였다고 보고하자 사정을 묻고 감시하였다.
1848년 12월 산마감목관 김영초(金瀛礎)를 파면하고 김경희(金景希)를 임명하였으며, 제주의 환곡이 지나치게 많다고 비변사에 보고하여 절반으로 줄어들게 하였다. 탐라의 도읍지에 종(鍾)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에 따라 만호 장석좌(張錫佐)[?~1878]로 하여금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에 있는 미황사(彌黃寺)의 큰 종을 구입하게 하여 탐라포정사(耽羅布政司)의 문 밖에 종각을 건립하고 달았다.
또한 공진루(拱辰樓)를 중수하였으며, 상현사(象賢祠)를 영혜사(永惠祠)라고 개명하여 당시 제주도에 유배 온 추사의 제액(題額)을 받아 현판을 걸었다. 삼성사(三姓祠)에 숭보당(崇報堂)을 건립하여 재생(齋生)을 두어 학업을 장려하였으며, 북성 안에 심고당(審古堂)을 건립하여 무사의 사격 연습 장소로 삼았다.
1849년(헌종 15) 전임 제주목사 이의식이 1848년(헌종 14)에 철폐한 남학당, 서학당, 우학당 등 세 학당을 다시 개설하여 학문을 장려하였다.
[상훈과 추모]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위치하고 있는 제주향교에 사상장공인식숭유우문비(使相張公寅植崇儒右文碑)가, 1851년(철종 2) 5월에 세워졌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 소재의 제주 삼성혈에는 목사장후인식추사비(牧使張侯寅植追思碑)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 비석거리에는 목사장공인식휼민선정비(牧使張公寅植恤民善政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