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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070
한자 姜昇泰
영어음역 Kang Seungtae
이칭/별칭 강승하(姜承河),용강(龍剛),영산천사(靈山天師)
분야 종교/신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조성윤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활동한 무극대도의 교주.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법명은 용강(龍剛)이다. 강승하(姜承河) 또는 영산천사(靈山天師)라고도 한다. 강영호(姜英鎬)의 아들로 1895년 5월 7일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면 하예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다.

[활동사항]

강승태는 1918년 민족 종교인 보천교(普天敎) 본부에서 포교 차 제주도에 온 강석호(姜錫鎬), 신백근(辛白斤), 김시산(金時山) 등의 설교를 듣고 한때 보천교에 뜻을 두었다.

한의원을 경영하던 강승태는 1924년부터 강증산(姜甑山)의 현몽으로 영통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스스로를 지상(地上) 대도사회(大道社會)를 건설할 사람이라고 하였다.

1930년 무극대도(無極大道)에 귀의하여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동광리에 포교 본부를 두고 스스로를 제주도의 교주(敎主)라 하였다. 또한 정도령이 나타나 조선을 독립시킨 다음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며, 그때가 되면 무극대도의 신도들은 성인의 반열에 올라 영원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그의 주장을 듣고 모여든 신자가 1천여 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1936년에는 수산교(水山敎)라는 이름으로 포교 활동을 하였고, 같은 해 제주도 남제주군 산덕면 도산리에서는 백백교(白白敎)의 일파가 되어 포교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어 날로 교세가 늘자 강승태는 1937년 제주경찰서의 다니모도[谷本] 고등계 주임에 의해 치안유지법·총포수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연행되었다. 강승태는 수개월에 걸쳐 심문을 당한 끝에 1940년 광주지방법원에서 불경, 사기, 강간 치상, 육해군형법·보안법·의사규칙 위반 등으로 징역 6년에 벌금 200원을 선고받았다.

광복이 되면서 출옥한 후, 강승태는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종교 활동을 계속하다가 1946년 무극대도를 재건하였다. 1958년 제주도 제주시 봉개동 명도암에 정착한 후 강증산을 교조로, 자신을 교주로 하는 무극대도를 창립하였다. 이후 포교 활동을 계속하다가 1960년 2월 29일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강승태가 지었다는 무극대도의 경전으로 『도화경(道化經)』, 『개벽창조문(開闢創造文)』, 『단군도전문(檀君道傳文)』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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