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을 주요 소재로 다룬 문학 작품. 문학은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가장 선도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온 분야라 할 수 있다. 다른 예술 분야는 물론이요, 학문 분야나 저널리즘 차원의 접근보다 상당히 앞서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계나 언론계를 자극하여 논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했다. 따라서 제주 4·3사건의 문학적 전개 양상에 대한 고찰은 4...
1961.6 출생 1965 외삼촌 결혼(현재 남아 있는 최초의 기억) 1968 노형국민학교 입학 1969 눈병이 나서 처음 병원에 가 봄(나사로병원), 부모님이 밭에 가고 없었을 때 할머니 도움을 받아가며 처음 밥을 지어 봤음 1970 소풍 때 처음으로 김밥을 싸 가지고 가서 먹어봤음 1972 불자동차 사생대회에 참가...
강덕환은 40대의 중반으로 이 사회에서는 아직 젊은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기에는 너무 젊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가질 만하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내력을 보면 그야말로 노형마을의 이모저모를 일러줄 이야기꾼으로서 적임자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노형동의 자연마을 중 하나인 ‘다랑굿(월랑)’에서 태어나 현재도 계속 이곳에서 살고 있다. 초등...
문학을 좋아하여 대학 시절에 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강덕환은 1992년에 『생말타기』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그는 문학 관련 단체에 가입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다.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본부 회원이면서 제주도지회(제주작가회의)의 회원이다. 제주작가회의에서는 1998년 창립 당시부터 활동하면서 사무국장, 젊은작가포럼 위원장, 이사,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이사이자...
강덕환의 집안에서는 설 명절을 계속 음력으로만 했다. 정부에서 강력하게 양력설을 권장할 때도 바꾼 적이 없다. 명절 때 어른들은 한복을 입었다. 묘제 때는 소복을 입지만 제사나 명절 때는 입지 않더라고 한다. 아이들 설빔으로는 새 옷을 입는 정도였지 한복을 입지는 않았다. 세뱃돈은 그가 초등학교 시절엔 10원 정도였고, 5원짜리 종이돈도 받았다. 중학생이 되니까 100원...
강덕환이 어렸을 때 살던 집에는 처음엔 ‘안거리(안채)’ 하나밖에 없었다. ‘밖거리(바깥채)’는 마차와 소가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