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6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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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生儀禮 |
영어음역 | Pyeongsaeng Uirye |
영어의미역 | Life Cycle Ceremony |
이칭/별칭 | 일생 의례,통과 의례,관혼상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오선영 |
[정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 주민들이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지내는 의례.
[개설]
평생 의례는 인간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족 구성원 또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시기의 의례, 그리고 사후(死後)에 산 사람들과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 주는 여러 가지 의식이다. 평생 의례는 주로 관혼상제(冠婚喪祭)로 통칭되어 오다가 최근 그동안 간과해 오던 출산 의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 통과 의례, 일생 의례(一生儀禮)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인간은 평생 의례의 각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고, 구성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평생 의례는 베풀어지는 의례 안의 요소 중에서 지역적 특색을 보이기도 한다.
[출산 의례]
갓 혼인을 한 부부에게 출산은 한 가정을 완성하는 동시에 집안의 대(代)를 잇는 중요한 일이다. 아이에게는 출산이 인생의 출발점이다. 제천 지역에서의 기자(祈子)는 여느 지역과 다르지 않다. 절에 가서 치성을 드리고, 산꼭대기나 바위에 가서 정성을 드린다. 한편 제천 지역에서 지극 정성으로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널리 알려진 영험한 곳이 있다.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 주막거리의 중바위, 원박리의 아들바위와 청풍면 교리의 아들바위 등이다. 또한 봉양읍 연박리에는 마을에서 10여 분 떨어진 뒷산에 골안바위가 있는데, 임신을 한 여자가 바위 위에 있는 홈에 돌을 던졌을 때 돌이 홈에 들어가면 아들을 낳고, 떨어지면 딸을 낳는다고 한다.
출산이 있는 집안에서는 삼신, 산모와 갓 태어난 아이에게 부정이 미치지 않도록 금줄을 친다. 아들이면 금줄에 고추와 솔깝[솔가지]를 끼고, 딸을 낳으면 솔깝만 끼운다. 집안에 따라 아들일 때 금줄에 돌멩이를 끼워 아이가 단단히 자라기를 바라기도 한다. 만약 산가(産家)에 부정이 들면 부정을 들게 한 사람이 ‘벌을 먹어야’ 한다. 삼신에 물을 떠 놓고 잘못한 사람이 앞에서 빌고 절한 뒤 ‘벌을 먹는다’. 이는 짚을 잘게 썰어 넣은 물을 마시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는 부모의 보살핌과 삼신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다.
[혼례]
1960~1980년대 초까지 제천 지역의 혼례는 신부 집 마당에 초례청을 차리고 식을 올리는 전통 혼례였다. 당시의 혼인 적령기는 남자가 20세 전후, 여자가 18세 전후였다. 이때는 총각 처녀에게 결혼에 대한 결정권이 없었으며, 중매를 통해 부모의 결정으로 혼인을 하였다. 중매를 하는 중신아비는 혼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간혹 말을 부풀리기도 하면서 상대 부모에게 “한말만 해, 한말만 하면 되지.”라며 허락을 구하였다. 그래서 중신아비는 거짓말을 ‘한말’ 하는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제천시 중앙동 일대에 전한다.
신부 집에서 사주(四柱)를 받을 때 준비하는 것들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리 나타난다. 가가례(家家禮)이지만 대체적으로 제천시 수산면 일대에서는 상에 물을 떠 놓거나 시루떡을 해 놓고 사주를 받는다. 제천시 봉양읍 일대에서는 큰 그릇에 물을 떠 놓고 그 안에 미나리를 한 주먹 넘게 꺾어 넣고 사주를 받는다. 꺾어도 꺾어도 다시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신랑 신부에게 앞으로 자손이 많기를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혼인을 하고 신행(新行)을 온 신부는 시댁에서 삼일을 지내고 친정으로 인사를 간다. 신랑과 함께 가는데 신랑은 ‘재양 걸음’을 간다고 하고, 신부는 ‘삼일 도배기’를 간다고 한다. 삼일 도배기를 다녀온 신부는 이제 신랑 집 식구가 되어 한평생을 지낸다.
[상례·장례]
제천 지역에서는 집안에 어른이 돌아가시려는 기미가 보이면 서둘러 안방으로 모신다. 사랑방에서 돌아가셔도 객사(客死)로 여겨 방안으로 시신을 모실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두 3일장을 치르지만 불과 50년 전만 하여도 거의 5일장을 모셨고, 형편이 좋은 집에서는 7일 또는 9일장을 모셨다. 그래서 염을 하고 나면 ‘토롱’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토롱은 시신을 넣은 관을 마당이나 밭에 땅을 조금 파고 가묘(假墓)이다. 또한 동제(洞祭)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믿음이 강하게 이어지고 있는 지역에서는 동제 기간에 초상이 나도 토롱을 만든다.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의 경우가 그렇다.
염을 마치면 상주(喪主)들은 성복(成服)을 하고 비로소 조문을 받는다. 성복 이전에는 두루마기의 팔을 한쪽 빼고 있으며, 조문객이 와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 발인(發靷) 전날 저녁은 조문객이 가장 많은 때이고, 상여를 맬 사람들[상두꾼]이 다 모여 연습을 한다. 빈 상여를 꾸며 놓고 발을 맞추어 보는 것으로 제천시 봉양읍과 청풍면 일대에서는 ‘대돋음’이라고 한다. 이는 상두꾼들이 미리 상여 드는 연습을 하고, 또 술을 받아먹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상가(喪家)에 다녀와서 상문살이 닿으면 괜히 실없이 앓기도 하는데, 심한 경우 사람이 미치기도 한다. 그래서 상가에 가기 전에 양밥[방법]을 하기도 한다. 상가로 출발하려고 집을 나설 때 집 뒤에 있는 장독에 가서 장을 한 숟갈 떠먹고 간다. 이것으로 양밥이 된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비슷한 상황에 지관(地官)이 하는 양밥이 있다. 하관을 할 때 상주가 부모를 땅에 묻는 것이 기가 막혀 기절을 하면 지관은 한지에 한자(漢字)로 “天地無定○ 人間無重喪”이라고 얼른 적고, 그 종이를 태워 재를 물이나 술에 타서 상주에게 먹인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상주가 탈 없이 깨어난다. 묘를 쓰고 집으로 돌아오면 삼우제(三虞祭)를 지내고, 상식(上食)을 올린다.
[제례]
제례는 가까운 조상을 기억하고, 기일(忌日)에 지내는 기제(忌祭)와 5대조 이상의 조상의 묘를 찾아 지내는 시제(時祭)가 있다. 집안에서 지내는 기제는 4대조까지 모신다. 조상이 마지막 살아 계신 날을 제일(祭日)로 정하기 때문에 제일은 돌아가신 전날 밤이 된다. 예전에는 자정이 되어야 제를 올렸지만, 자식들이 타지로 나가면서 제사를 지내는 시간이 점차 빨라져 돌아가신 당일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대부분 제물을 집에서 손수 장만했기 때문에 제사 일주일 전부터 부인들은 제물 준비를 시작하였다. 제주(祭酒)를 담고, 장에 나가서 좋은 물건들을 구입해 온다. 만약 동네에 초상이 있거나, 집안에 중병을 앓는 사람이 있으면 그 기간의 제사는 지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또한 가가례(家家禮)라고 여기기 때문에 집안에 따라 다르다.
[변천]
제천 지역의 평생 의례는 지금의 삶의 모습에 맞게 변화되어 가고 있다. 집안에서의 출산과 상례는 거의 행해지지 않고, 제천시에 있는 병원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마을마다 있었던 곳집은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었다. 촌로(村老)들은 시골에 젊은이들이 줄어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제례의 경우 지금도 집집마다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혼례 또한 예식은 결혼식장에서 하지만 결혼식 전후에 날을 잡아 마을 잔치를 하는 일이 간혹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