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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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圭常 |
영어음역 | Won Gyusang |
이칭/별칭 | 성문(聖文),옥파(玉坡)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출생 시기/일시 | 186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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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5년 |
활동 시기/일시 | 1896년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
거주|이주지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호좌의진 좌군장 |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가계]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성문(聖文), 호는 옥파(玉坡).
[활동 사항]
원규상(元圭常)[1868~?]은 제천시 봉양읍의 공전마을에 살던 선비이다.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할 때 전투 부대 중 하나인 좌군을 이끄는 좌군장으로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이 충주에서 돌아와 제천을 중심으로 방어전을 벌이던 1896년(고종 33) 4월 안성해(安成海)가 친병(親病)으로 우군장을 사퇴하자 대신하여 한 달 남짓 그 자리를 맡았다.
5월에 후군장 신지수(辛芝秀), 별영장 이인영(李麟榮)과 함께 일본군의 거점이던 충주 가흥을 공격하여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였으나 소모 부대와의 연합 작전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성공하지 못하였다. 의병에 실패한 이후에는 제천에 남아 유인석의 해외 활동을 지원하였다.
1905년(고종 42) 유인석의 지시로 제천의 의병론자들이 척사적 성격의 ‘제천 향약’을 시행할 때 근우면 직월을 맡아 일진회의 발호를 막았다. 한편 이병선(李秉善)에 이어 봉양 면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