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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515
한자 長潭書社
영어음역 Jangdamseosa
영어의미역 Jangdam Private School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89년 8월연표보기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정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개항기 성리학자였던 유중교(柳重敎)의 강학소.

[개설]

장담서사(長潭書社)이항로(李恒老)의 제자인 유중교가 제천으로 옮겨와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공간으로서 현재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의 장담마을에 있는 유중교의 고택을 가리킨다.

[장담서사의 설립]

장담서사는 화서학파 학자인 유중교가 춘천의 가정마을로부터 제천의 장담마을로 이주하면서 개설한 강학소를 말한다. 유중교는 가평·춘천 등지를 전전하면서 한포서사(漢浦書社)·옥계서사(玉溪書社)·가정서사(柯亭書社)를 개설하여 강학하였다. 1889년 8월 제천의 장담마을로 옮기자 여러 문인들이 스승을 좇아서 장담마을, 또는 인근 마을로 이주하였고, 유중교의 거처에서는 주기적으로 강학이 열렸다. 이에 따라 유중교가 강학하던 고택은 자연스럽게 ‘장담서사’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장담서사에서는 열흘마다 강학을 열고 3월과 9월 말에 향음례(鄕飮禮)를 개최하였는데 제천을 비롯한 청풍·단양·충주 일대의 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었다.

[호좌의진의 중심지, 장담서사]

1893년 봄 유중교가 별세한 후, 장담서사에서 주용규·서상렬 등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스승의 문집을 발간하는 활동이 시작되었다. 문집 간행을 위한 본부가 설치되었으며 유인석이 인근의 구곡마을로 이주하여 문인들을 이끌었다. 흑의령 이후에 유인석이 주도하는 대규모의 향음례가 개최되었으며 1895년 단발령 이후에는 이곳에서 변란에 대처하기 위한 ‘처변삼사(處變三事)’가 논의되었다. 이 때문에 장담서사는 의병론자들의 사상적 결속을 다지는 중심지가 되었다.

1906년에 이르러 제천 지역에 남아 있던 유중교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자양영당(紫陽影堂)’이 설립되어 유중교가 존숭하던 여러 스승들, 즉 주희(朱熹), 송시열(宋時烈), 이항로의 영정을 유중교의 영정과 함께 모셨다. 유중교의 고택은 자양영당 성역화 사업의 과정에서 복원되었으며, 현재는 자양영당을 관리하는 사무소로 이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장담서사는 구한말 화서학파의 학문적 요람으로서 이후 호좌의진의 지도부를 이끌어갔던 의병론자들을 배양한 산실이자 실제 의병 거사가 실행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역사적 장소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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