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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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박갑주(朴甲胄)는 강원도 원주에서 살았다. 1907년(순종 1) 이강년(李康秊)이 제천 지역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키자 휘하의 의병을 거느리고 합류하여 의진의 별초(別抄)로 활약하였다. 싸리재·죽령 전투 등에서 맹활약하였으며, 복상골 패전 이후 의진이 북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영월 전동(錢洞)에서 용맹을 떨쳤다. 이후 부대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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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에서 뱃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백운면 뱃재 유래」는 경순왕(敬順王)[? ~978]이 황산사(黃山寺)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용화산 암벽에 조각된 미륵불에게 절을 올렸다는 지명유래담이다. 백운면 화당리에서 강원도 원주로 넘어가는 고개를 뱃재 또는 배령(拜嶺), 배치(拜峙)라고 한다. 또한 백운면 방학리에는 경순왕의 이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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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방학리에 있는 다리.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방학리의 자연 발생 마을인 부수동의 지명을 따와 부수동교라 이름 붙였다. 왕복 2차선 교량으로 총연장은 70m, 총 폭은 8m, 유효 폭은 6.4m이다. 높이는 4m, 경간 수는 5개, 최대 지간장은 14m이며, 설계 하중은 DB-24톤, 통과 하중은 43.2톤이다. 상부 구조는 RC슬라브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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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의병 이배인의 문집. 이배인(李培仁)[1873~1945]의 본관은 전주, 자는 학연(學淵), 호는 술헌(述軒)이다. 강원도 춘천군 남산면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는 습재(習齋) 이소응(李昭應)이다. 이배인의 글은 여러 곳을 유리하면서 산실(散失)되었으나 후에 아들인 이문백(李文白)이 선친의 원고를 수습하여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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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천남동과 영천동을 연결하는 다리. 제천시의 관문인 신당공원 입구에 위치한 하소1동 신당개마을의 지명을 따서 신당교라 이름 붙였다. 4차선 교량으로 총연장은 70m, 총 폭은 20m, 유효 폭은 16m이다. 높이는 2.1m, 경간 수는 5개, 최대 지간장은 14m이며, 설계 하중은 DB-24톤, 통과 하중은 50톤이다. 상부 구조는 철근 콘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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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기(敬器), 호는 습재(習齋)·사정거사(思靖居士). 후에 이의신(李宜愼), 이직신(李直慎)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소응(李昭應)[1852~1930]은 춘천에서 태어나서 성재 유중교(柳重敎)에게 배웠다. 유중교가 화서 이항로(李恒老)의 심설(心說)을 보완한 것을 계기로 화서학파가 양분될 정도의 논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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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산지와 산지 사이에 발달한 넓고 평탄한 지형. 제천평야는 제천시에 있는 완만하고 평평하게 이어지는 침식 분지 지대이다. 충청북도 내륙 지방은 강원도와 인접하여 깊은 산골이 연상되나 제천은 이웃한 단양과 달리 평야 지대가 발달해 있다. 넓게는 제천 시내의 동쪽으로는 송학산, 무등산, 왕박산, 가창산 등의 서편, 서쪽으로는 시랑산 동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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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한동직(韓東直)은 강원도 원주 출신이다. 오위장을 지낸 전직 관료 출신으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원주에서 의병이 일어났을 때 참여하였다가,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이 친일 관료를 베고 충주성을 장악하면서 기세를 올리자 병력을 이끌고 제천으로 달려와 참진(參陣)하였다. 가흥에 주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