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사회 건설을 위하여 항쟁하던 1980년대의 익산 지역의 시민운동.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군사독재를 겪은 한국 사회는 민주정의 실현과 정착, 경제 민주화,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러한 목표를 안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하나의 정치적 세대로 형성되었다. 민주화운동 세대는 1980년 광주항쟁과 군부독재 정권 아래 대규모 민주화운동의 경험...
-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북한의 남침으로 전라북도 익산 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6·25 전쟁의 과정에서 익산 지역은 630여 명의 참전유공자를 배출하였고, 대한민국 해병대 최초의 전투이자 승전지 중 하나로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미군에 의한 이리역 오폭사건처럼 수많은 민간인 희생의 아픔도 겪어야 했다. 휴전 이후...
-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기산리에 있는 근대기 유학자 전우의 묘역과 제각. 간재선생 유적(艮齋先生遺蹟)은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기산리에 있는 근대 성리학자 간재 전우(田愚)[1841~1922]의 묘역과 현산재를 말한다. 간재 전우는 82세에 사망한 후 익산 선영에 묻혔다. 전우의 초명은 전경륜(田慶倫)·전경길(田慶佶)이며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
-
1988년 부대원들을 구하고 순직한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군인. 강병식(康秉植)[1953~1988]의 본관은 신천(信川)이다. 아버지는 강윤상이고, 어머니는 김순이이다. 강병식은 1953년 지금의 익산시 오산면 신지리에서 태어났다. 이리동중학교와 이리고등학교를 거쳐 1971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75년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강병식은 소위로 임관하였...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정치인. 강세형은 1899년(고종 36) 6월 전라북도 익산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동경 조치대학교[上智大學校]와 독일 베를린대학교[伯林大學] 철학과에서 공부하였다. 이후 동국대학교 교수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강세형(姜世馨)[1899~1960]은 1899년 6월 21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부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와세...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인성(姜仁聲)[1897~1930]은 1897년 1월 13일 익산군 웅포면 상제리[현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제성리]에서 태어났다.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5일 영명학교 교사 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박연세(朴淵世) 등과 함께 이튿날인 3월 6일에 군산 서래장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전...
-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고종의 초상화. 고종황제 어진(高宗皇帝御眞)은 일월오봉도 병풍을 배경으로 익선관과 황색 곤룡포를 착용하고 어좌(御座)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고종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전라북도 익산시 신동에 있는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나 기법으로 보아 채용신(蔡龍臣)[1850~1941]이 제작한 것으로...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고총권(高寵權)[1867~1959]은 1867년 11월 26일 익산군 황화면 마전리[현 충청남도 논산시 황하면 마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일에 천도교 익산교구장인 박영진(朴永鎭)과 정대원(丁大元) 등 여러 천도교인들과 함께 여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논의하여 망성면과 금마면 등의 연락 책임을 맡았다....
-
1936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문신 김규석의 시집. 『국헌시집(菊軒詩集)』은 김규석(金圭錫)[1844~1908]이 지은 한시를 둘째아들 김영국(金永國)이 모아 1936년 무렵에 펴낸 시집이다.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에 있는 원광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규석은 조선 후기의 문관으로, 자(字)는 구서(龜瑞), 호는 국헌(菊軒), 본관은 광산(...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광덕(金光德)[1885~1945]은 1885년 1월 14일 익산군 왕궁면 도순리[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오전 8시경 강성교(姜聖敎)의 집에서 송종석(宋宗錫)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18일 후 1시경 많은 사람이 모인 익산시장(益山市場)[현 금마...
-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애국지사. 김근배(金根培)[1847~1910]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자는 광원(光元), 호는 매하(梅下)이다. 아버지는 김현교(金顯敎)이고, 아들은 김종호(金鍾昊)이다. 김근배는 1847년 7월 15일 지금의 익산시 모현동에서 태어났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조옥승(曺玉承)에게서도 시문을 배웠다. 1866...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만순(金萬順)[1893~1966]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아버지는 구한말에 사헌부감찰을 지낸 김내문이다. 김만순은 1893년 지금의 익산시 오산면에서 태어났다. 미국 남장로회 소속 전킨(W. M. Junkin)[한국명 전위렴(全緯廉)] 선교사가 세운 익산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남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병수(金炳洙)[1898~1951]는 1898년 10월 18일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유강리에서 태어났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병수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李甲成)의 권유로 독립선언서 200여 매를 가지고 1919년 2월 25일 군산으로 내려갔다. 이튿날인 2월 26일 영명학교 교사...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병호(金秉鎬)[1865~?]는 1865년 1월 13일 충청남도 공주군 목룡면 조정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익산으로 이주해 낭산면 호암리에 거주하고 있던 김병호는 1919년 3월 2일에 천도교 이리교구장 이중열(李仲悅), 정대원(丁大元)·이유상(李有祥) 등의 천도교인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해 논의하고 여산읍의...
-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김봉우(金鳳友)는 1882년 지금의 익산시 목천동 목상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10월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익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봉우는 익산군 관동(冠洞)에 살던 이창오(李昌五) 집을 비롯한 익산 일대의 여러 촌락에서 총기를 징발하는 등 군수품 모집 활동을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
-
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김시복(金時福)[1885~?]은 1885년 전라북도 익산군 남일면 용자포에서 태어났다. 1908년에서 1909년까지 2년 동안 전국적으로 펼쳐진 의병 항쟁 중 호남 지역은 그 어떤 지역보다 전투가 치열하였다. 호남 의병을 토벌하기 전에는 한일 합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제는 1909년 9월부터 2개월 동안 무자비한 탄압과 살육을...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덕(金龍德)[1926~1995]은 1926년 4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서 태어났다. 광주사범학교 재학 중이던 1943년 3월 무등독서회(無等讀書會)를 조직하고 전통 역사관 및 독립사상 확립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무등독서회는 김용덕을 비롯하여 홍환균·최규학·옥대호·노동훈·안동영·이경채...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성(金龍成)[1911~1943]은 1911년 8월 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현영동에서 태어났다. 김제 백구면에 있는 부용공립보통학교(芙蓉公立普通學校)[현 부용초등학교] 재학 중 안영묵(安榮黙)의 영향으로 강한 항일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부용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김제청년동맹 백산지부에 가입하여 농민조합을 조직하고...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교육자. 김원룡(金元龍)[1909~1950]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아버지는 유헌(悠軒) 김종원(金鐘遠)이다. 김원룡은 1909년 지금의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서 태어났다. 1916년 여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22년 전주공립농업학교 중퇴 후 1923년 전주도립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1926년 김제 월촌공립보통학교에,...
-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의학자. 김재백(金在百)[1932~2009]은 1956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뒤 1971년 대학원에서 약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6년부터 1961년까지 국립화학연구소 과장, 1961년부터 1965년까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이화학과장을 역임하였다. 1965년 원광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1978년 원광대학교 약...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치옥(金致玉)[1879~1927]은 1879년 10월 14일 지금의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무단통치하에 감시가 엄중한 상황이던 1918년에 목사인 배은희(裵恩希)와 함께 종교인과 일반인을 규합하여 지하 독립운동 조직에 착수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 천도교인이 많았...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한규(金漢奎)[1900~1961]는 1900년 1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신룡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6월경 김한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으로 입국한 김진성(金振聲)을 중심으로 고정식, 이순명, 김교우 등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대해 논의하였다. 김한규 등은 1920년 8월 14일 군산에서 완구용 육혈포...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해균(金海均)[1910~?]은 지금의 익산시 함라면에서 태어났다. 1929년 3월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하여 1934년 졸업하였다. 1931년 9월 경성제국대학 경제학연구회에 가입하여 사회주의사상을 학습하였다. 1931년 10월 조선공산당재조직사건에 연루되어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었지만 불기소 처분을...
-
근현대 전라북도 익산에서 활동한 유학자. 김형재(金亨在)[1909~1988]는 전라남도 나주 출신의 현대 유학자로, 말년을 익산에서 보냈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호는 일청(一靑)이다. 김형재는 1909년 나주에서 태어났다. 전라북도 순창 출신의 성리학자 노사(盧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학맥을 이은 율계(栗溪) 정기(鄭琦)[1879~1950...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화곤(金華坤)[1899~1944]은 1899년 10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일본 동경의 정칙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세이소쿠영어학교]에 유학 중 일본인들에 의한 동포들의 차별과 수모를 직접 경험한 후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투쟁을 결심하고 1926년 학교를 중퇴하였다. 귀국한 김화곤은 1927년...
-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김흥여(金興汝)[1889~?]는 목화상을 하다가 일제의 침탈에 맞서 국권 회복을 위하여 김성찬(金性贊)·정판성(鄭判成) 등과 함께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익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2월 김흥여는 동지 수십 명과 함께 총과 칼을 지니고 익산 근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조선말 유학자 소승규의 문집. 『난곡유고(蘭谷遺稿)』는 조선 후기와 개항기에 활동한 학자 소승규(蘇昇奎)[1844~1908]의 문집이다. 소승규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발산리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고 글재주가 뛰어나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이에 관직에 미련을 버리고 인산(仁山) 소휘...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환(盧桓)[1916~1994]은 1916년 12월 13일 지금의 익산시 황등면 율촌리에서 태어났다. 전주북중학교 교사로 재직 당시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며 다가올 조국 독립의 미래를 위해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다가 1942년 10월 31일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1943년 9월 20일 일제는 유치장에 있는 노환에게 교...
-
1894년 전라북도 익산 지역을 비롯한 삼남 지역을 중심으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이다. 동학교도들은 동학 금지령을 빙자한 지방관들의 횡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신원운동(伸寃運動)을 전개하였다. 동학교도들의 신원운동은 마침 익산 등 전라도 일대에서 일어난 민란...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4일. 이리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날 장터에는 미리 약속된 3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주동자는 군산 영명학교의 교사 문용기(文鏞祺)[1878~1919]였다. 영명학교가 있던 군산에서 고향인 익산으로 건너온 문용기는 기독교 계열 인사들과 몰래 만났고 3월 26일의 이리 만세 시위에 이어 4월 4일에 다시 시위를 전개...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개항기 문인 김근배의 시문집. 『매하유고(梅下遺稿)』는 1910년 국권피탈에 항거하여 자결한 매하(梅下) 김근배(金根培)[1847~1910]가 쓴 글을 5권 2책으로 묶어 1947년에 간행한 책이다. 김근배의 시와 글, 사상과 행적, 교유 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헌자료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종암동에 있는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경상북도 경산시...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근대기 한학자 정상진의 문집. 정상진(鄭象鎭)[1850~1927]은 개항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전라북도 익산 지역을 대표한 한학자이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와 그 제자들과 교유하였으며, 『몽률집(夢栗集)』 5권 5책의 필사본을 남겼다. 권4까지는 저자의 글이며, 권5는 저자의 부친과 저자가 타계하였을 때 다른 이들이 보내온 만사이다....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용기(文鏞祺)[1878~1919]의 호는 관제이며, 아버지는 문윤재이다. 문용기는 1878년 5월 19일 지금의 익산시 오산면 오산리 관음마을에서 태어났다. 1901년 군산의 영명학교 한문교사로 부임하였고, 1907년 전라남도 목포에 있는 왓킨스학교에 교사 겸 학생으로 입학하여 영어를 공부하였다. 1911년 왓킨...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근대기 시인 이희선의 시집. 이희선(李羲善)[1874~1945]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난 한학자이자 시인으로서, 개항기인 1891년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이 부사과에 이르렀다. 하지만 시국이 좋지 못하자 고향에 돌아와 직접 경작하면서 경전과 역사책을 두루 섭렵하였다. 특히 시 짓기를 좋아하여 친구들과 함께 시 모임인 사자암...
-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박관옥(朴寬玉)[1880~?]은 1880년 전라북도 익산군 우북면[현 익산시 왕궁면]에서 태어났다. 김경섭(金景燮)의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하였다. 1909년 5월 11일 밤 박관옥은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동료 의병 8명과 함께 총을 휴대하고 익산군 우산면 동하리 이장인 강성옥(姜成玉)의 집에 뛰어들었다. 박관옥 등은 백성으로부...
-
전라북도 익산의 원광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종교인. 박길진(朴吉眞)[1915~1986]의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법명은 광전(光田), 법호는 숭산(崇山)이다. 할아버지는 박성삼(朴成三)이고, 아버지는 원불교 교조(敎祖)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다. 박길진은 1915년 8월 15일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태어났다. 서울 배재고등보...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도현(朴道玄)[1865~1919]은 1865년 2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오산면(五山面)에서도 큰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오산면은 1919년 3월 26일에 펼쳐졌던 만세 시위로 인해서 일본군 제4연대 1개 중대가 주둔하며 삼...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박병렬(朴柄烈)[1881~1940]은 1881년 지금의 익산시 삼기면 간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의사였던 박영호이다. 미국인 선교사 맥커친(L. O. McCutchen)[한국명 마로덕(馬路德)]의 지도로 설립한 삼기면 서두리의 서두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1919년 4월 4일 이리 장날에 만세 운동이 일어...
-
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박복순(朴福淳)[1888~?]은 전라북도 익산군 두남면 장정리 출신으로 도기를 제조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1907년 일제가 정미조약(丁未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구체화하자 국권 회복을 위해 삼남의병대장 유지명(柳志明) 부대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박...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사국(朴士國)[1888~1934]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야은(野隱)이다. 아버지는 박병돈(朴秉敦)이다. 박기상(朴岐爽)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박사국은 1888년 9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9일 원수리 정영모(鄭永模)의 집에서 이정(李侹)·이병석...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수문(朴水文)[1897~1937]은 1897년 7월 7일 지금의 익산시 용동면 화배리에서 태어났다. 서울 유학 중 3.1운동에 참여한 후 귀향하여 문용기(文容基)·박도현(朴道玄)·서정만(徐廷萬)·장경춘(張京春) 등의 주도로 1919년 4월 4일 이리 장날에 열린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기독교인과 학생 등 200여 명...
-
일제강점기 활동한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문(朴永文)[1904~1919]은 1904년 10월 12일 지금의 익산시 오산면 신지리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동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영문은 3.1운동이 일어나자 귀향하여 금마면 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4일에는 문용기(文容基)·장경춘(張京春)·박도현(朴道玄) 등이 주도한 이리 장날의 만세 시위에...
-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박영오(朴永五)[1874~?]는 1874년 전라북도 익산군 서일면 관암리에서 태어났다.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부장(部將)으로서 익산과 김제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 2월 24일 김시백 등 동료 4명과 함께 고산군[현재의 완주군 일대] 서면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발하였고, 4월 7일에도 김제군 공동면[현 김제시 백구면]...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진(朴永鎭)[1882~1928]은 1856년 5월 21일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 황화정[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황화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일 당시 천도교 익산교구장이었던 박영진은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익산교구의 임원과 교인들을 모아 독립운동의 실행 방법을 의논하였다....
-
일제 강점기 익산군수를 지낸 관료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영철(朴榮喆)[1879~1939]의 본관은 충주(忠州)이고 호는 다산(多山)이다.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박기순(朴基順)이다. 박영철은 1879년(고종 16) 2월 2일에 태어났다. 1901년 일본 동경에 있는 성성의숙(成城學校)을 졸업한 뒤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1903년에 일본 육사 15기로 졸업...
-
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장. 박이환(朴駬桓)[1873~1953]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야은(野隱)이다. 아버지는 박윤서(朴潤瑞), 형은 박영환(朴永桓)이다. 박이환은 1873년 3월 12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06년 4월 25일 정읍군 태인면 종성리에서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이 의병을 일으키자 이규홍(李圭弘)·문형모(文亨謨) 등...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배헌(裵憲)은 1896년 4월 27일 지금의 익산시 주현동에서 태어났다.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을 쟁취할 목적으로 1913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입학하여 1917년부터 1919년까지 학우회 제3대 토론부장으로 활동하며 혁명정신과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신흥무관...
-
전라북도 익산시의 남성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교육자. 백남규(白南奎)[1891~1956]은 1891년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호는 일석(一石)이다. 호남의 대유학자인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916년 서울 중앙학교를 졸업한 뒤에 일본으로 건너가 1919년에 동경수학전수학교(東京數學專修學校)를 졸업하였다....
-
전라북도 익산에서 활동한 교육자. 백남혁(白南赫)[1907~1982]은 1951년 이리농과대학의 초대 학장을 지냈다.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호는 목인(牧人)이다. 백남혁은 1907년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서 태어났다. 1927년 고창고등보통학교(高敞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2년 동경농업대학(東京農業大學)을 졸업하였다. 근...
-
2015년 익산 왕궁리 유적과 익산 미륵사지가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건. 전라북도 익산시의 백제 문화를 대표하는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과 익산 미륵사지[사적 제150호]가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어 세계유산(世界遺産)으로 등재(登載)되었다. 익산 왕궁리 유적과 익산 미륵사지의 세계유산 등재는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2006년부터 추진해...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변규섭(邊圭燮)[1911~1945]은 1911년 3월 19일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 5월, 전주고보(全州高普)를 퇴학한 이석용(李碩鎔)을 만나 조국의 독립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청년 및 노동자 등 민중의 단결을 촉구하는 격문을 제작해서 7월 17일 금마면 장터에 게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
전라북도 익산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소리꾼 정정렬에 관한 이야기. 정정렬(丁貞烈)[1876-1938]은 일제 강점기 때 ‘국창(國唱)’으로 이름을 떨친 판소리 명창이자 ‘근대 창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전라도 익산군 망성면 내촌리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전라도 김제군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근대 5명창’[개화기부터 일제 강점기 사이에 활약...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규의 문집. 『북산산고(北山散稿)』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 임규(林圭)[1867~1948]가 남긴 문집이다. 임규는 1895년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서 수학하였으며, 유학생을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쳤다. 이후 최남선과 함께 귀국하여 국학 관계 서적을 간행하고 많은 민족주의자...
-
1960년 제1공화국의 독재와 부패정치를 저지하기 위해 발발한 4·19혁명의 익산 지역 활동.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정부의 언론 자유 탄압 및 부정선거에 대한 반민주주의적 태도에 대항하여 반독재민주화투쟁으로 발전한 혁명으로, 당시 지방 대학에서는 익산 지역 학생 시위가 전국적으로 가장 먼저 일어나 민주화 수호를 앞당기는 역할을 한다. ‘4·19혁명’ 또는 ‘4월혁명’은,...
-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3·1운동 당시 익산에서는 천도교 조직을 활용하여 만세 운동을 계획하는 한편 기독교계와도 연계하여 천도교와 기독교 두 종교계가 함께 하였다. 특히 1919년 4월 4일 시위는 1,0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여 시가행진을 벌였고 일본 헌병대가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여 현장...
-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서성군(徐成君)[1881~1909]은 1881년 익산군 우북면 치실리[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일제가 정미조약(丁未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구체화하자 국권 회복을 위해 1909년 5월 이기준(李己準)의 의진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성군은...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재석(徐載錫)[1909~1968]은 1909년 2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 학생들이 광주여고보 3학년인 박기옥(朴己玉) 등을 희롱하자 이를 본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준채(朴準埰) 등과 싸움이 벌어졌다. 이는...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정만(徐廷萬)[1889~1919]의 본관은 대구(大丘)이며, 서공유(徐公有)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서정만은 1889년 6월 13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익산군 오산면(五山面)[현 익산시 오산면]에서도 큰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서정만은...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근대기 유학자 송영식의 문집. 송영식(宋瓔植)[1883~1948]은 표옹(瓢翁) 송영구(宋英耈)[1556~1620]의 후손으로서,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지역에서 태어났다. 근대 시기의 유학자로서, 신학문에 밀려 유학과 한문이 쇠퇴하는 속에서 평양, 개성, 부여 등 옛 도읍의 흥망성쇠와 금강산, 지리산의 절경에 대하여 뛰어난 작품을...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선백중(宣百仲)[1890~1931]은 1890년 7월 15일 익산군 황화면[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서 태어났다. 1921년 5월경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결성된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에 가입하였다. 조선독립단은 홍주의병(洪州義兵), 파리장서운동(巴里長書運動)에 참여했던 이내수(李來修)가 대동단(大同團) 사건 이후...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내원(蘇來元)[1890~1967]은 1890년 7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국권 회복을 위하여 1919년 9월에 가산을 정리하여 자금을 마련한 뒤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상해로 망명한 소내원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정리한 가산을 모두 군자금으로 내놓았고 정부 요인으...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정치가. 소선규(蘇宣奎)[1903~1968]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계산(桂山)이다. 소선규는 1903년 11월 30일 지금의 익산시 팔봉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경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29년 후쿠시마[福島]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미군정하에서 서울시 부시장을 지냈으며, 1950년 5월에는 민국당(民...
-
일제강점기 불합리한 소작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소작인들이 익산 지역에서 벌인 운동. 익산의 자연환경은 농업에 적당하며 기후 또한 온난해서 농작물 발육에 좋았다. 특히 비교적 이른 시기에 수리조합이 설립되는 등 수리시설이 갖춰지면서 한해와 수해의 피해를 비교적 적게 받았던 쌀농사는 익산을 대표하였다. 1899년 군산 개항 이후 익산에는 농장을 개설하려는 많은 일본인들이...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진석(蘇鎭碩)[1897~1928]은 1897년 9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창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김광덕(金光德)과 송종석(宋宗錫) 등이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다 체포되자 3월 28일 오후 3시경에 또다시 익산시장(益山市場)[현 금마면 동고도리의 시장]에서 독립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진형(蘇鎭亨)[1886~1936]은 1886년 6월 19일 지금의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충청남도 논산군 성동면으로 이주하여 공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안종운(安鍾雲)과 함께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을 지원하던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였다. 1918년 대한광복회가 일제에 노출되자 소...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소홍규(蘇洪奎)[1882~1952]는 1882년 1월 28일 지금의 익산시 망성면 어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충청남도 대전군(大田郡)[현 대전광역시] 대전면(大田面) 김현태(金顯泰)의 집에서 조상연(曺相連)·윤명화(尹明化) 등과 의논하여 당일 인동장터의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향토사학자. 송상규(宋祥圭)[1929~1998]의 호는 상산(常山)이며, 아버지는 송병옥(宋炳玉)이다. 사학자인 송호정이 아들이다. 송상규는 1929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1954년 익산중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익산고등학교에서 교사 및 교감을...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일성(宋一成)[1893~1960]은 1893년 6월 3일 익산군 북일면 현영[현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다음날 당시 천도교 익산교구장인 박영진(朴永鎭), 이리교구장 이중열(李仲悅) 등과 함께 익산 지역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확산될 수 있도록 논의하였...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종석(宋宗錫)[1883~?]은 1883년 9월 6일 익산군 왕궁면 도순리[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오전 8시경 강성교(姜聖敎)의 집에서 김광덕(金光德)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많은 사람이 모인 익산시장(益山市場)[현 금마면 동고도리의...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송진행(宋鎭行)[1870~?]은 1870년 지금의 익산시 삼기면에서 태어났다. 이석용(李錫鏞)의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에 동료 의병들과 함께 진안군 원일면 좌산리와 창북리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1912년 2월 1일에는 장수군 수서면 매암리와 진전면 호병리 등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확보하였다...
-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송태식(宋泰植)[1884~1946]은 1884년 12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도순리에서 태어났다. 송영식(宋永植)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1907년 전라북도 완주에서 100여 명을 규합하여 봉기한 유지명(柳志明)의 의진에 가담하였다. 유지명 의진은 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군기(軍器)를 자체적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을...
-
1927년 민족주의 독립운동 세력과 사회주의 독립운동 세력이 연합하여 조직한 신간회의 익산 지회. 1919년 3·1운동 직후 사회주의 사상과 노선이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하여 1920년대 사회주의 독립운동 세력이 형성됨으로서 민족 독립운동 흐름은 민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으로 양분되었다. 그러나 일제에 항쟁하여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서로 협동 단결해야 한다는 자각이 생겼고 두...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심홍택(沈弘澤)[1909~1959]은 1909년 6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에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동참하여 동맹휴교를 결심하였다. 심홍택은 1929년 12월 8일 강대성, 강상덕, 황한희 등과 함께 시위를 계획하고 “광주...
-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양중석(楊重錫)[?~1907]은 지금의 익산시 왕궁면 출신으로,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항거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양중석이 속한 의병 부대는 알 수 없지만 주로 익산, 강경, 여산 등지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아 이 지역 의병부대에 참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의병들의 항일투쟁은 일본군와의 직접적인 전투뿐만 아니라 군자금 모집, 친일...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엄창섭(嚴昌燮)[1892~1973]은 1892년 12월 12일 태어났다. 익산 제석교회 출신의 기독교인이며, 엄병옥(嚴秉玉)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1919년 3월 5일, 당시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에 다니고 있던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3.1운동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고 만세 시위를 결심하였다. 이틀 후인 3월 7일...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엄칠중(嚴七仲)[1898~1961]은 1898년 1월 1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당시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에 다니고 있던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3.1운동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고 만세 시위를 결심하였다. 이틀 후인 3월 7일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으로 간 엄칠중은 강금옥을 통해 만난 엄창섭(...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여산동헌에 있는 척화비. 여산척화비(礪山斥和碑)는 1866년 병인양요 이후 서양 제국이 개항을 요구하는 가운데 1871년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흥선대원군이 서양 제국에 대한 항전 의식을 고양하기 위하여 전국 여러 곳에 세운 석비 중 하나이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일본공사관의 요구로 철거되었다가 1915년...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후기 유학자 송상현의 문집. 송상현(宋商鉉)[1824~1875]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다.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 출신이며, 경사(經史)에 밝은 유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문집으로는 5권 2책의 수고본(手稿本) 『오하잡언(梧下雜言)』을 남겼다고 하는데, 현재는 2권 2책의 복사본만이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에 있는 원광대학교 도서관에...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봉우(劉奉祐)[1861~1947]는 1861년 7월 18일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이튿날인 3월 2일, 당시 천도교 이리교구장인 이중열(李仲悅)을 비롯한 천도교인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이후 최재붕(崔在鵬)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서...
-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의사이자 교육자. 윤부병(尹富炳)[1911~1997]은 1911년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태어났다. 만주(滿洲)의 건국대학(建國大學)을 졸업하였고, 이리 호남의원(湖南醫院)의 원장을 지냈다. 이리시 초대 교육위원회 부의장을 지내면서 이리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여 환도...
-
전라북도 익산의 남성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정치가. 윤제술(尹濟述)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호는 운제(芸齊)이다. 윤제술은 1904년 1월 29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전주에 살고 있던 심농(心農) 조기석(趙沂錫)으로부터 2년 동안 서예를 배웠다. 1919년부터는 계화도(繼華島)에 은거하...
-
개항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한일병합 전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익산 지역은 대체로 낮고 평탄한 구릉지와 넓은 평야가 많아서 의병 투쟁에는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의병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과 익산 출신 의병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익산 지역의 의병 활동은 평야지대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주로 군자금...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강만(李康晩)[1921~1956년]은 1921년 5월 21일 익산군 황화면[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충청남도 논산군에 편입]에서 태어났다. 1941년 공주농업학교 4학년 재학 중에 여름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이강만은 7월 27일 오후 7시경 친구인 영촌량부(榮村亮夫), 송본길생(松本吉生)과 함께 당시 음식점을 하던...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철학자이자 향토사학자. 이강오는 1920년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전북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58년부터 전북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1960년부터 시작한 한국의 신흥종교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1967년에는 전북대학교 내에 신흥종교연구소를 설립하였다. 1976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장에 취임한 이강오는 전라...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겸중(李謙重)[1912~1948]은 1912년 10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 4월 전주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김규선(金圭鮮), 최월상(崔月上), 정재향(鄭在鄕), 고창동(高唱東), 박재선(朴在善) 등과 함께 학교 내에 공산주의연구독서회(共産主義硏究讀書會)를 조직하였다. 김규...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권재(李權載)[1922~?]는 1922년 2월 10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삼담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서울 경기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권재는 같은 학교 동기생인 송택영(宋澤永) 등과 함께 민족의 독립과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목적으로 조선인해방투쟁동맹(朝鮮人解放鬪爭同盟)을 조직하고 기관지 발행과 선전물 작성 등...
-
개항기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규홍(李圭弘)[1881~1928]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원오(元五), 호는 오하(梧下)이다. 아버지는 중추원의관을 지낸 이기영(李棋榮)이고, 어머니는 장상문(張相文)의 딸 인동장씨(仁同張氏)이다. 이규홍은 1881년 지금의 익산시 팔봉동에서 태어났다. 1906년 4월 박이환(朴駬桓)·문형모(文亨謨)와 함께 태인에서 최...
-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이기영(李琪榮)[1849~1922]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부인은 장상문(張相文)의 딸 인동장씨(仁同張氏)이다. 아들은 이규홍(李圭弘), 이규련(貳圭連)이다. 이기영은 1849년 7월 29일 전라북도 익산군 팔봉면 석암리[현 익산시 팔봉동]에서 태어났다. 중추관의관을 역임하였으며, 1907년 아들 이규홍이 의진을 결성하자 가...
-
일제 강점기 미곡 수탈을 위하여 지방 개발이란 미명하에 시작된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근대화 과정. 개발과 척식이라는 미명하에 시작된 익산의 근대는 미곡을 중심으로 한 일제의 수탈과 착취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일제 강점기 익산은 이른바 근대의 창(窓)과 같은 도시이다. 일본에게 제1차 세계대전은 경제 호황을 불러왔다. 유럽의 공장이 전쟁의 잿더미로 변하는 동안,...
-
두 번의 대규모 폭발 사고가 발생한 전라북도 익산시 익산역에 관한 이야기. 위도 북위 약 35도 56분, 경도 동경 약 126도 56분[약 35° 56‘N, 약 126° 56’E]. 현재 익산역이 위치하고 있는 좌표이다. 이 좌표에서 27년의 시간을 두고 두 번의 대규모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1950년 7월 11일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기 B-29기 여러 대가 이리역에 폭탄을...
-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7월에 미군의 오폭으로 양민 수백 명이 죽임을 당한 사건. 민족적 비극인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인적·물적 피해를 막심하게 입혔다. 그중에서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해당하는 당시의 전라북도 이리시에서는 1950년 7월 11일 오후 2시부터 30분 동안 당시 이리역 부근 등에 미국 공군 소속 B-29 중폭격기 두 기가 폭탄을 투하하여 철도 근무자와 승객,...
-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발생한 열차 폭발사고 이리역 폭발사고는 1977년 11월 11일 이리역[현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발생한 열차 폭발사고이다. 1993년에 발생한 구포역 열차 전복 사고와 더불어 최악의 철도사고로 꼽힌다. 전라북도의 집계에 따르면 사망자 59명, 중상자, 185명, 경상자 1,158명 등 총 1,402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재산피해의 경우 전파된 가옥이...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석(李秉釋)[1894~1930]은 1894년 1월 19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9일 원수리 정영모(鄭永模)의 집에서 이정(李侹)·박사국(朴士國)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논의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 천도교인이 많...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상운(李相云)[1927~1945]은 1927년 3월 6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이리농림학교(裸里農林學校) 2학년 재학 중에 동기생인 장지환·김구·김영준·호중기, 후배 서기용·김봉수·강동석·박기춘 등과 함께 비밀결사 화랑회(花郞會)를 조직하였다. 이후 선배 장이규·김직수·김환용과 교...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유상(李有祥)[1876~1941] 1876년 6월 8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에서 태어났다. 이유상은 1919년 3월 2일에 천도교 이리교구장 이중열(李仲悅)·정대원(丁大元)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해 논의하고 여산면과 용안면의 연락과 동원 책임을 맡았다. 이중열로부터 「독립선언서」 100매를 받아 오...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환(李載煥)[1889~1951]은 1889년 11월 12일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1915년 만주로 건너가 대한광복회에 가담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1917년 국내에 들어왔다. 1919년 9월경 이재환은 우재룡·소진형·권영만 등과 함께 전국의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을 확보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것을...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정(李侹)[1884~1925]은 1884년 10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9일 원수리 정영모(鄭永模)의 집에서 박사국(朴士國)·이병석(李秉釋)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논의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난 후 천도교인이...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중열(李仲悅)[1869~1928]은 1869년 6월 18일 익산군 북일면 현영[현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에서 태어났다. 호는 좌암(佐庵)이다. 1919년 3월 1일에 천도교 이리교구장으로 재직하던 중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유봉우(劉奉祐)·이유상(李有祥) 등의 교인들과 함께 익산에서 독립 만세...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서예가이자 사업가. 이집천(李集阡)[1900~1959]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하당(荷堂)이다. 할아버지는 이석순이고, 아버지는 이배원(李培源)이다. 아들은 이화영이다. 이집천은 1900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서 태어났다.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하여 1919년 니혼대학[日本大學] 법학...
-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이춘기(李春基)[1905~1989]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춘전(春田)이다. 아버지는 이윤덕(李潤德)이다. 이춘기는 1905년 12월 20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1922년 함흥상업학교(咸興商業學校)를 졸업한 뒤 1923년부터 16년 동안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의 원산지점과 이리지점 등에서...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형우(李亨雨)[1897~?]는 1897년 1월 1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발발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익산에서도 천도교와 기독교 등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당시 이형우는 용안면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고 함라와 웅포 등지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
전라북도 익산시 마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학교 건물. 이리농림학교는 1922년 조선총독부에서 최초로 세운 5년제 관립 학교이다. 1925년 도립이리농림학교로 전환된 후 1928년부터 수의축산과 설치를 요청하여 1931년 수의축산과 설치 인가를 받게 되었다. 수의축산과가 설치 운영된 것은 국내에서 이리농림학교가 최초였다. 축산과 교사는 ‘수의축산과(獸醫畜産科)...
-
전라북도 익산시 평화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익옥수리조합의 사무소와 창고. 수리조합은 근대기 쌀 생산량 증대를 위하여 토지 개량과 수리 사업을 명분으로 창설된 기관이다. 익옥수리조합은 1920년 임익수리조합과 임익남부수리조합이 합병하면서 설립된 대규모 수리조합이다. 익옥수리조합의 초대 조합장은 일본의 수리왕으로 불리는 후지이 간타로[藤井寬太郞]가 선출되었다. 익옥수리조합은...
-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에 있는 일제 강점기 철도 역사. 익산 구 춘포역사는 1914년 건립 당시 이리[현 익산]와 전주를 연결하는 전라선의 보통역으로 시작하였다. 익산 구 춘포역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중 하나로 전형적인 소규모 철도 역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익산 구 춘포역사는 역사동 외에 화장실 및 부속 창고, 부속 건물 등으로 이루어...
-
전라북도 익산시 주현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 농장 사무실. 익산 주현동 구 일본인 농장 사무실(益山珠峴洞舊日本人農場事務室)은 1914년 일본인 오하시[大橋]농장의 사무실로 건립된 일식 2층 목조 건물이다. 오하시 요이치[大橋與市]는 일본 기후[岐阜]현 출신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은행을 소유할 정도로 대부호였다. 오하시는 농장 개설 당시 주임이었던 에다요시...
-
전라북도 익산시 중앙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병원 건물. 익산 중앙동 구 삼산의원(益山中央洞舊三山醫院)은 김병수(金炳洙)[1898~1951]가 1935년 개인 의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김병수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가담하다가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3개월을 복역하였다. 출옥 후 학업을 마치고 난 뒤 군산야소교병원에서 근...
-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일본식 가옥.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益山春浦里舊日本人農場家屋)은 1940년대 지었다고 전하나 건축물 대장에는 1922년 건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은 이리농림학교 출신의 일본인이자 호소카와[細川]농장의 농업 기술자였던 에토[江藤]가 살았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익...
-
전라북도 익산시가 「고도 보존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 즉 고도로 지정된 일. 2004년 「고도 보존에 관한 특별법」에 의하여 경상북도 경주시, 충청남도 공주시·부여군과 함께 전라북도 익산시가 고도(古都)로 지정되었다. 이후 익산시는 고도지구 지정, 고도보존계획의 수립 등을 거치면서 익산시 금마면과 왕궁면에 지정된 고도지구에서 가로 경관 개선 사업...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후기 문인 소휘면의 문집. 소휘면(蘇輝冕)[1814~1889]은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1776~1852]의 제자로서 문장과 경학에 뛰어났다. 벼슬은 사헌부지평에 이르렀으나 일절 취임하지 않고 학문과 강학 활동에 전념하였다. 문집의 양은 17권 8책에 달하며, 권1의 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문장이다. 성리설과 경학에 뛰어난 작품이...
-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익산 지역에서 경영한 기업과 은행. 군산 개항 이후 일본인의 이주가 증가하면서 군산과 가까운 익산 지역에도 일본인이 이주하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익산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미곡을 가공하는 정미업, 양조업 등에 종사하였고 기업 활동에 필요한 금융기관도 설립하였다. 익산 부근의 평야에서 생산하는 미곡은 생산량이 많기 때문에 벼인 채로 운반하면...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개화기 유학자 소진석의 문집. 『일암유고(一菴遺稿)』는 개화기 유학자 소진석(蘇鎭碩)[1869~1910]이 남긴 문집이다.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 출신인 소진석은 과거 공부에는 매달리지 않고 인산(仁山) 소휘면(蘇輝冕)의 문하에서 경학과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소진석은 세상을 뜰 때까지 『강설(講說)』 두 권과 여러 유고들을 남겼는데,...
-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던 시기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 역사.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민족 말살 정책과 식민지 수탈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가혹한 통치와 수탈에 저항하여 익산 지역에서는 3.1운동을 비롯하여 다양한 저항운동을 전개하였다. 총독부는 1914년 ‘부제’와 ‘군제’를 선포하면서 전주와 같은 전통 도시는 축소하여 전...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규(林圭)[1867~1948]의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자는 형여(亨如), 호는 우정(偶丁)이다. 임규는 1863년 9월 2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 무렵 당시 익산군수이던 정기우(鄭基雨)의 잔심부름을 하는 통인으로 지내다가 188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895년 게이...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영택(林榮澤)[1901년~1957]은 1901년 10월 9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23년 일제의 관립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1924년 설립되어 1946년에 국립 서울대학교로 통합] 설립 계획에 반대하여 이상재(李商在)·이승훈(李昇薰)·조만식(曺晩植) 등의 민족주의자들이 조직한 조선민립대학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의 창...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혁근(林赫根)[1898~1934]은 1898년 1월 3일 익산군 익산면 마동리[현 익산시 마동]에서 태어났다. 1924년 1월 1일 익산읍에서 조용관(趙容寬)·임종식(林宗植)·김영휘(金永輝) 등 9명과 함께 사회주의 비밀결사 갑자연구회(甲子硏究會)를 조직한 뒤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25년 12월 17일...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경춘(張京春)[1887~1919]은 1887년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익산군 오산면(五山面)에서도 큰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오산면은 3월 26일에 펼쳐졌던 만세 시위로 인해서 일본군 제4연대 1개 중대가 주둔하며 삼엄한...
-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장준석(張準錫)[1903~1962]의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호는 천운(天圓)이다. 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장치명(張致明)이다. 장준석은 1903년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에서 태어났다. 경성 중동학교(中東學校)를 졸업한 후 중국 북경(北京)으로 건너가 평민대학(平民大學)...
-
1945년 8·15해방 이후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남겨진 일본인 소유의 주택. ‘적산(敵産)’은 ‘적의 재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인 소유의 주택을 비롯한 기업, 토지 등 각종 부동산과 동산류가 이에 포함되는데, 그중 주택은 ‘적산가옥’이라 칭한다.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어도 현재까지 익산을 포함한 전라도 지역에는...
-
근현대의 한학자 김형재가 전라북도 익산의 동산서원에서 집필한 역사서. 『전고문헌(典故文獻)』은 유학자이자 한학자인 김형재(金亨在)[1909~1988]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에 이르는 역사, 문화, 인물, 유학, 지명 등 다양한 분야의 자료들을 편집하여 1973년에 간행한 책이다. 9권 2책으로 저술한 책을 발췌하여 상하 2권으로 간행하였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에...
-
일제의 패망 후 한반도로 귀환한 해외동포인 전재동포들을 구호하는 사업. 해방 직후 전 세계 분포되어 있는 한국인은 500만 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250만 명의 해외동포들이 귀환하였다. 주로 인천과 부산을 통해 귀환한 250만 명의 해외동포들의 유입은 식량, 주택 등 기본적인 의식주 이외에도 보건위생, 물자난, 실업, 교육문제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형태의 문제를 야기할 정도...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은거한 학자이자 애국계몽운동가. 정교(鄭喬)[1856~1925]의 본관은 하남(河南)이며 호는 추인(秋人)이다. 정교는 1856년(철종 7) 7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1894년 궁내부주사를 시작으로 1895년 4월 수원부 판관을 역임하였으며, 7월에 장연군수에 임명되었으나 8월에 을미사변이 발생한 후 사임하였다. 정...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동식(鄭東植)[1850~1910]의 본관은 연일(延日)이며 자는 경필(敬必)이다. 아버지는 사헌부지평을 지낸 정제호(鄭濟鎬)이다. 아들은 정희면(鄭煕冕)이다. 정동식은 1850년 3월 4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876년(고종 13) 무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친군별영초관 겸 선전관(親軍別營哨官兼宣傳官)에 임명되었다가...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진용(鄭晉容)[1893~1965]은 1893년 7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두여리에서 태어났다. 황해도 서흥군(瑞興郡)의 계명학원(啓明學院) 교사로 일하고 있던 1932년 7월에 동지들과 함께 조국의 독립과 민족정신 고취를 목적으로 비밀결사 교육자동지회(敎育者同志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32년 8월 정진...
-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정판성(鄭判成)[1883~?]은 1883년 익산에서 태어났다. 국권 회복을 위하여 김성찬(金性贊)·김흥여(金興汝) 등과 함께 이규홍(李圭弘)의 의진에 가담하여 익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2월 정판성은 동지 수십 명과 함께 총과 칼을 지니고 익산 근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남헌(趙南憲)[1923~1996]은 1923년 1월 10일 지금의 익산시 남중동에서 태어났다. 1937년 전주공립공업전수학교에 입학한 뒤 송정섭(宋正燮) 등과 교류하면서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운 일제의 황민화(皇民化) 정책에 반대하며 독립운동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하였다. 1940년 1월 말경에는 전주(全州)에서 이상훈(...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관(趙容寬)[1885~1950]은 1885년 6월 29일 지금의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익산 지역의 3.1운동의 주동자로 구속되어 고문을 받고 한쪽 눈을 실명했다고 한다. 1920년 8월 군산노동공제회(群山勞動共濟會)를 창립하였고, 1924년 군산노동연맹(群山勞動聯盟) 대표로 활동하면서 조선노농총동...
-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장. 조재영(趙載榮)[?~1909]은 익산 출신으로, 호는 춘파(春坡)이다. 1908년 둘째 아들인 조승호(趙承鎬)와 함께 익산에서 항일 의병을 일으켰다. 홍주(洪州)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민종식(閔宗植)이 패전하고 일본군에게 체포되자, 조재영은 민종식 부대의 의병 40여 명을 모아 의전을 재정비하였다. 또한 익산의 이규홍(李圭弘), 임실의 이...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근대기 한학자 소진덕의 문집. 『지산유고(遲山遺稿)』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동촌리에서 태어난 근대 시기의 한학자 소진덕(蘇鎭德)[1869~1943]의 문집이다. 3권 1책의 석판본으로, 1947년 1월에 간행하였다. 서문은 1935년 3월 소학규(蘇學奎)가 지었으며 발문은 1946년 조영래(曺榮來), 한익교(韓翊敎), 아들 소화...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경제인. 지태순(池泰淳)[1902~1979]의 본관은 충주(忠州)이고 호는 익성(益城)이다. 아버지는 지창석(池昌錫)이다. 아들은 지성양(池成洋)이며, 손자는 지승룡(池承龍)이다. 지태순은 1902년 6월 27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났다. 구한말에 한학을 공부하였고 익산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친일 법조인. 최대교(崔大敎)[1901~1992]의 본관은 강화(江華)이며, 호는 화강(華岡)이다.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 최현중(崔顯中)이다.. 최대교는 1901년 지금의 익산시 삼기면에서 태어났다. 1926년 2월 경성제1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호세이[法政]대학 예과(豫科)에 입학하였다. 1929년 호세이...
-
개항기 익산 출신의 항일 의병. 최윤보(崔允甫)[?~1909]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신작리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정규군인 진위대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자 이기준(李己準)의 의진에 참여하여 국권 회복에 나섰다. 최윤보는 1909년 5월...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장윤(崔長潤)[1916~1984]은 1916년 12월 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삼담리에서 태어났다. 1945년 3월경에 중국 산서성(山西省)에 주둔한 일본 헌병대에서 통역으로 재직 중이던 최장윤은 임시정부 화북지구 특파원인 이규학(李圭鶴)을 사형 직전에 구출하여 함께 탈출하였다. 이를 계기로 최장윤은 광복군에 입...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개화기 유학자 송순보의 문집. 개화기 유학자인 송순보(宋淳輔)[1853~1906]의 문집으로, 4권 1책의 필사본이다. 성리학에 대한 의견과 더불어 경사(經史)에 대한 의의(疑義)를 밝히고, 중국의 역사적 사실과 경서의 뜻을 논하고 있다. 『평재유고』 필사본은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에 있는 전북대학교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송순보는 지...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언론인. 하경덕은 1897년 지금의 익산시 춘포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1913년 전주 신흥학교(新興學校)와 1915년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를 졸업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925년 하버드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28년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9년에 귀국한 하경덕은 조선중앙...
-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익산 지역의 역사. 익산시는 전라북도 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노령산맥의 지맥인 천호산과 미륵산이 동부에 있다. 서북부에 함라산 줄기가 이어져 남서로 향하는 구릉과 대소 하천이 비옥한 평원을 이루고 있다. 북으로는 금강을 경계로 충청남도 논산시와 부여군이 맞닿아 있으며, 서로는 옥구평야와 남으로는 만경강을 경계로 김제평야에 접하고 있다...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건표(洪建杓)[1923~1975]의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자는 경중(敬中), 호는 호산(壺山)이다. 홍건표는 1923년 9월 17일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에서 태어났다. 1939년 경복중학교 재학 중이던 홍건표는 같은 학교 학생이던 이현상(李賢相)·장의찬(張宜燦)·주낙원(朱樂元)·성익환(成益煥)·명의택(明...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순갑(洪淳甲)[1896~1929]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경제과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9월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홍순갑...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영섭(洪永燮)[1855~1922]은 1855년 3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지자 3월 2일에 당시 천도교 익산교구장 박영진(朴永鎭)은 임원과 교인들을 모아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각 면의 연락 및 동...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염규(黃濂奎)[1922~2003]는 1922년 11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 다송리에서 태어났다. 치문학교(致文學校)[현 김제시 백구면 유강리의 치문초등학교] 교원으로 일하던 중 1943년 10월부터 1944년 2월까지 5학년 수업시간에 일제를 비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혐의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정환(黃廷煥)[1905~1948]은 1905년 1월 28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서 태어났다. 중동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6년 5월 16일 순종황제가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중앙고등보통학교의 이동환(李東煥)·박용규(朴龍圭), 중동중학(中東中學)의 곽재형(郭載炯)·김재문(金裁文)·황정환(黃廷煥) 등...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하규(黃河奎)[1921~1950]는 1921년 12월 29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1943년 5월 15일에 광복군 제1지대 제1구대에 입대한 뒤 중국 하남성(河南省) 봉구현(封丘縣)에서 광복군의 초모 공작 활동에 참여하였다. 1944년 3월에는 중국 난징[南京]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인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에 입당하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