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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모를 건강하게 키워내는 들노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C020103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도장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옥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농사법 변화시기 일제강점기 - 일제강점기에 일본사람들의 영농지도로 허튼모심기에서 줄모심기로 농사방법이 변하였다.
들소리 중단시기 1970년대 후반 - 마을의 인구가 줄어들고 농약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들소리가 중단되었다.
마을지 도장 마을천봉지기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내가 앞소리를 할 것인게 뒷소리를 받아야 재미가 있제]

젊었을 때 매구도 잘 치고 잘 놀았다는 김양기 씨는 지금까지도 도장 마을 들소리를 기억하고 계신다. 그런데 문제는 뒷소리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앞소리에 맞추어 뒷소리를 받아주어야 하는데 경로당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길고 유장한 들소리가 너무 어렵게만 느껴진다. 모심는 소리의 뒷소리는 서투르게나마 따라하다가 논매는 소리로 이어지자 모두들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오랜 시간동안 입 밖에 내보지 않은 까닭이다.

“모 한 번 숭궈 봅시다

(그럽시다)

내가 앞소리를 헐 것인게 뒷소리를 받아야 재미가 있제.

어허어헤이헤 상사뒤이여

에헤에요 상사뒤이여

어울려지네 어울려지네

에헤에여 상사뒤이여

상사소리가 어울려지네

에헤에여 상사뒤이여

수는 작아도 소리는 크네

에헤에여 상사뒤이여

여기도 심고 저기도 심고

에헤에여 상사뒤이여

방고르게 숨궈보세

그만 저만 끝을 내고

에헤에여 상사뒤이여

논을 한번 메보세

에헤 나헤에야 에헤 에헤이야 나아 보세

(어려워서 못 하겄네)”

[일 년에 뺨 한 번씩 맞는 것은?]

도장 마을에서는 하늘에서 내린 비에 의지해 농사를 짓는 논을 천봉지기 논이라고 한다. 천봉지기 논은 물이 새지 않도록 논둑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도장 마을에는 논둑과 관련된 재미있는 수수께끼가 전한다. “일 년에 뺨 한 번씩 맞는 것이 무엇이냐?” 이에 대한 답은 바로 ‘논둑’이다. 논둑의 흙이 단단해지라고 가래나 삽으로 탁탁 치기 때문에 생긴 속담이다.

물이 부족할 때는 두레로 물을 품어 올린다. 둘이서 품기도 하고 넷이서 쌍두레를 품기도 했다. 물을 품는 일은 농사 중에서도 가장 고된 일이라고 한다. 얼마나 고된지 ‘물을 품을 때는 상투까지 아프다’는 말이 전한다.

“힘들어. 상투까지 아프다고 해요.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아프다는 거여. 되다는[힘들다는] 거에요. 물품기도 힘든데 수까지 시어야[세어야] 한께 더 힘들어”(김양기)

물을 품을 때 얼마나 품었는지를 알 수 있도록 두레를 세는 소리를 한다. 낮은 데 있는 논은 천 두레까지 품고 교대하지만 높은 곳에 있는 논은 삼백 두레나 오백 두레를 품고 교대를 한다. 한 사람이 숫자를 세면 다른 사람이 ‘으응’ 하고 받는 식으로 소리를 이어간다.

“열이로다 응

열한나 응

열에 다섯

어느 새끼

열 야달 응

열 아홉 응

사오이십 응

스물 한나

어느 새끼”

어느 새끼는 ‘어느새 그렇게 올라갔나’라는 의미라고 한다. 숫자를 빨리 채워야 교대를 할 수 있으니 ‘어느 새끼’라는 가사 속에는 빨리 빨리 숫자가 채워지기를 고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줄모 전에는 허튼모로 심었어]

마을의 어르신들은 줄모가 나오기 전까지는 허튼모를 심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옛날 일본놈들이 와서 그 사람들이 영농지도를 할 때 그 때부터 줄모를 했지. 옛날 우리 한민족은 흐튼모(허튼모)를 심었어. 드물게 하지도 말고 배게도[촘촘하게] 하지 말고 방고르게 하라고 하면서 모를 심어. 그것을 흐튼모라고 해.”(김양기)

못줄을 따라 일렬로 심는 줄모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가르쳐준 농법이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줄모를 심고 개량 못자리를 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줄모 이전에 했던 상사소리가 제대로 된 상사소리였다고 입을 모은다.

당시에는 품앗이를 해서 모를 심고 논을 맸다. 논을 매는 과정은 화순의 다른 지역과 동일하다. 먼저 초벌은 호미로 매고 한 벌, 군벌, 만들이까지 총 4번을 매면 논매는 일이 끝난다.

초벌을 호미질로 하는 이유는 땅을 뒤집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땅의 힘을 길러주기 위해 봄에 산야초를 뜯어다가 논바닥에 깔아주었다. 초벌을 맬 때 그 산야초를 뒤짚어 엎어주어야 하므로 호미로 매는 것이다. 한벌매기를 할 때에는 손으로 매면서 초벌매기로 호미질할 때 생긴 덩어리를 깨준다. 며칠 있다가 군벌매기를 할 때에는 그 나머지 풀을 매준다.

[만들이 할 때에는 징글 징글 놀았어]

만들이를 할 때에는 보통 백중 무렵이다. 이날은 논매기 작업의 마지막 마무리를 하며 하루를 논다. 부자들은 농사장원이라고 하여 머슴을 소에 태운다. 이날은 논매는 사람들끼리 얼굴에 진흙을 바르고 숯검댕이도 바르고 장난치며 즐긴다. 징도 치고 꽹과리도 치며 잔치 분위기를 낸다. 부잣집에서는 닭죽과 술을 대접한다.

“징글징글 놀아부러.”라는 김양기 씨의 말 속에 옛 추억이 묻어난다. 일하는 것도 힘든데 노래까지 부르려고 하면 더 힘들 것 같다는 우문에 마을 어르신들의 현답이 이어진다.

“아니 그래도 재미가 있어. 재미진께 계속 일만 하는 것 보다는 소리를 하다보면 어느새끼 일이 끝나불어. 공부 못하는 사람과 공부 잘 하는 사람의 차이는 공부 잘하는 사람은 안 힘들게 해. 일도 안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잘 하는 것이여. 소리를 하면 힘이 덜 들어.”(김양기)

[우리 마을 들소리도 참 듣기가 좋았어요]

2012년 도장골 밭노래 한마당 축제에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 들소리 보존회 회원들이 초청되었다. 90세 가까운 홍승동 씨의 들소리를 들으며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홍승동 씨의 들소리는 「물품는 소리」를 시작으로 「모찌는 소리」, 「모심는 소리」, 「초벌매기」, 「한불매기」, 「군벌매기」, 「만들이 소리」로 계속 이어졌다.

“가까운 곳인데도 들소리가 다르다는 것이 참 묘하네요. 우리 동네 가네 아재[아저씨]도 참 잘 하셨는데.”(김성인)

우봉 마을의 들소리를 듣고 있던 김성인 씨는 멀지 않은 지역인데도 들소리가 서로 다르다며 신기하게 여겼다. 도장 마을에도 홍승동 씨 못지않게 들소리를 잘하던 가네 아재가 있었다고 한다. 가네 아재는 몇 년 전 고인이 되신 김종택 씨를 이르는 말이다. 도장 마을에서 들소리를 하지 않은 지는 어느새 40년 가까이 되었지만 도장 마을 사람들은 친환경 농법을 통해 땅을 생각하고, 벼를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하는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정보제공]

  • •  김범순(남, 1938년생, 도장골 밭노래 한마당 축제 위원장)
  • •  김성인(남, 1958년생, 도암 역사 문화 연구회장, 도장 밭노래 마을 영농 조합 법인 총무)
  • •  김양기(남, 1923년생, 도암면 도장리 도장 마을 주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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