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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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養性軒實記 |
영어공식명칭 | Yangseongheonsilgi |
이칭/별칭 | 『양성헌선생실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현진 |
[정의]
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도희령의 문집.
[저자]
도희령(都希齡)[1539~1566]의 자는 자수(子壽), 호는 양성헌(養性軒)이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아버지는 진사 도득린(都得麟)이다. 어머니는 야성송씨(冶城宋氏)로, 송희동(宋熙仝)의 딸이다.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와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에게 수학하였다. 경상남도 함양 지역 유학자 소세양(蘇世讓),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1515~1580],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1520~1578], 개암(介庵) 강익(姜翼)[1523~1567], 매암(梅庵) 조식(曺湜)[1526~1572] 및 남명 조식의 문인 덕계(德溪) 오건(吳健)[1521~1574],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1529~1590], 각재(覺齋) 하항(河沆)[1538~1590] 등과 교유하였다. 특히 남명 조식이 지기(知己)[자기의 속마음을 참되게 알아주는 친구. 지기지우]로 인정하였다. 1560년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정자, 봉상시봉사 등을 지냈다.
[편찬/간행 경위]
1884년 1월과 2월 후손 도석균(都碩均)이 자신과 유필영(柳必永), 정재선(鄭載善)[1845~?]의 발문을 붙여 간행하려고 하였다. 이후 1909년 7월 하순에 후손 도재균(都宰均)이 자신의 발문과 8월 상순에 곽종석이 지은 서문을 합쳐 간행하려 하였다. 그러다 1911년 12월 하순에 방계(傍系)[시조(始祖)가 같은 혈족 가운데 직계에서 갈라져 나온 친계(親系)] 후손 도청일(都淸一)이 자신의 발문을 붙이고 1912년 2월 구은정에서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총 2권 1책의 목활자본이며, 전체 크기는 31.0×20.0㎝이다. 사주쌍변이고, 반곽은 20.0×16.8㎝이며, 행마다 경계가 있다. 10행 18자이고, 주는 쌍행이며,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이다.
[구성/내용]
권1에는 11수의 시가 실려 있다. 오건, 노진, 이후백, 남계(蘫溪) 임희무[1527~1577] 등과 연구(聯句)[한시(漢詩)에서 짝을 맞춘 글귀]로 지은 것이 많다. 권2에는 교유 인물들의 기록에서 추린 척유(摭遺), 노진 등이 지은 만사, 8세손 도영원(都永元)이 지은 가장, 1899년 허유(許愈)가 지은 행장, 1911년 장석영(張錫英)이 지은 묘지명, 조긍섭(曺兢燮)이 지은 묘지명 및 송호곤(宋鎬坤)이 지은 비음기가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양성헌실기』는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도희령의 시문집으로, 도희령의 생애와 교유를 통하여 16세기 남명학파 인물 정보와 활동 상황을 고찰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