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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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玉溪集 |
영어공식명칭 | Okgyejip |
이칭/별칭 | 『옥계선생문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영숙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출신인 옥계 노진의 문집.
[저자]
노진(盧禛)[1518~1578]의 자는 자응(子膺), 호는 옥계(玉溪)·우재(迂齋)이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며,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에서 태어났다. 정희보(鄭希輔)[1488~1547]에게 배우고 김인후(金麟厚)[1510~1560], 조식(曺植)[1501~1572], 임훈(林薰)[1500~1584], 노수신(盧守愼)[1515~1590], 홍인우(洪仁祐)[1515~1554] 등과 교유하였다. 신계서원(新溪書院)에 배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노진의 아들 노염(盧焰)이 유고(遺稿)를 초록(抄錄)하여 임진왜란 이전에 목판본으로 초간본을 간행하였다. 이후 손자 노척(盧脊)이 병화로 유실된 초간본을 수집·증보하고, 정온(鄭蘊)[1569~1641]의 서문을 받아 1633년(인조 11)에 목판본으로 중간본을 간행하였다. 그 뒤 후손 노극수(盧極壽), 노완수(盧琬壽), 노봉수(盧鳳壽) 등이 나머지 유고와 기록을 수집하고 김세균(金世均)[1812~1879]의 서문을 받아 1873년(고종 10)에 속집(續集)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옥계집(玉溪集)』의 원집(原集)은 7권 4책, 속집(續集)은 4권 2책이다. 원집, 속집 모두 목판본이다. 계선(界線)이 있으며, 광곽은 22.8×18.5㎝이다. 10행 20자에 상하이엽화문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가 있다.
[구성/내용]
원집의 권1에는 시, 부, 표(表), 전(箋), 소(詔)가 있다. 시는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오언배율, 칠언율시, 칠언배율, 오언고시, 칠언고시가 차례대로 있다. 권2에는 제문(祭文)이 있다. 조식·김인후·오건(吳健)[1521~1574]의 제문, 서원의 향사(享祀) 제문, 선고(先考)[돌아가신 아버지]·형제·부인의 제문 등이 있다. 권3에는 행장과 묘비지(墓碑誌)가 있다. 권4에는 소(疏+), 계(啓), 장(狀), 서(書) 등이 있다. 노모 봉양을 위하여 관직을 사직하는 소, 조헌(趙憲)[1544~1592]에 대한 추고(推考)[벼슬아치의 죄과(罪過)를 추문(推問)하여 고찰함]의 명을 중지해 줄 것을 청한 계, 이황(李滉)[1501~1570]의 증시(贈諡)를 청한 글 등도 있다. 권5에는 잡저, 주(奏), 논(論), 기(記), 서(序) 등이 있다. 이어서 세계도(世系圖)가 있고, 연보가 있다. 권6에는 임훈(林薰)[1500~1584]이 지은 행장, 이정구(李廷龜)[1564~1635]가 지은 시장(諡狀)[재상이나 유교에 밝은 사람에게 시호를 내리도록 임금에게 건의할 때 그가 살아 있을 때 일들을 적어 올린 글]과 묘지명, 신도비명 등이 있다. 권7에는 사제문(賜祭文)·사액제문(賜額祭文) 등이 있고, 당대 문인들이 지은 만장(挽章)이 있다.
속집(續集)의 권1에는 시와 가(歌)가 있다. 권2에는 제문, 묘비지(墓碑誌), 계(啓), 장(狀)이 있다. 권3에는 서(書), 잡저, 논(論), 책(策)이 있다. 권4에는 이후백(李後白)[1520~1578]·김인후 등의 증시(贈詩)·송별시 등, 백광훈(白光勳)[1537~1582]이 지은 만장(挽章), 허엽(許曄)[1517~1580]이 지은 제문과 「서원청액소(書院請額疏)」 등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옥계 노진은 16세기 조정과 재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인물이며, 『옥계집』은 조선 문인들의 활동상과 교유 관계 및 문학·사상 등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