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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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馹孫遺墟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수동2길 74[원평리 667]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재현 |
건립 시기/일시 | 1906년 - 김일손 유허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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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464년 2월 13일 - 김일손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498년 8월 14일 - 김일손 사망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수동2길 74[원평리 667] |
성격 | 비 |
양식 | 비좌이수|팔작지붕 |
관련 인물 | 김일손 |
재질 | 석재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청계서원 내에 있는 탁영 김일손의 유허비.
[개설]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자는 계운(季雲)이고 호는 탁영(濯纓)·소미산인(小微山人)이며 시호는 문민공이다. 본관은 김해이다. 김일손은 조선 전기에 정여창과 함께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에 합격한 이래 이조좌랑과 이조정랑 등 주요 요직을 지냈으나 연산군 무오사화 때 희생되었다. 남계서원에 향사되는 일두 정여창과는 관포지교로 지냈다고 한다.
[건립 경위]
김일손은 일찍이 청계서원이 세워진 2018년 현재 위치에 ‘청계정사(靑溪精舍)’를 세워 후학을 양성했었다. 이에 지역의 유림들이 1906년(광무 10)에 그를 기리는 유허비를 먼저 세우고, 1907년에 청계서원을 건립하였다.
[위치]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청계서원 내에 있다. 청계서원은 함양군청에서 수동면소재지를 거쳐 국도3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남계서원의 북측에 있다.
[형태]
김일손 유허비는 비좌이수(碑座螭首)를 갖추고 있다. 귀부는 비신에 비해서 규모가 작고 익살스럽지만 여의주를 물고 있다. 방형의 머릿돌에는 두 마리의 용이 가운데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힘찬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머릿돌에도 채색을 했는지 붉은 색채가 간간이 보인다.
[금석문]
비명은 ‘탁영김선생유허비(濯纓金先生遺墟碑)’이다. 정헌대부 공조판서 겸지경연 의금부 춘추관사 동균관사 한산 조종필이 적었고[正憲大夫工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春秋館事同均舘事 漢山趙鍾弼 識], 가선대부 전행충청도관찰사 하동 정태현이 썼으며[嘉善大夫前行忠淸道觀察使河東鄭泰鉉 書], 선생의 14세손 통정대부 전하양군수 용복이 전(篆)하였다[先生十四世孫通政大夫前行河陽郡守 容復 篆]. 비문의 내용은 2004년에 함양문화원에서 정리한 『함양금석문총람(咸陽金石文總覽)』에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현황]
김일손 유허비는 청계서원의 정문인 취도문(就道門) 오른쪽에 있는 1칸의 팔작지붕 양식의 비각 안에 보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