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504 |
---|---|
한자 | 城址 |
영어공식명칭 | Site of an Ancient Castl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희태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관방 시설인 성터 유적.
[개설]
성곽은 행정 시설물이면서 관방 시설물이다. 방어나 주둔이 목적인 성도 있겠지만 주둔하면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바로 행정성이 되기도 한다. 해남 지역의 성은 우선 읍성이나 치소성 등 행정 기능이 주가 되는 성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영진보(營鎭堡) 등 군사 목적의 성도 있다. 산성의 경우는 행정이나 영진보 등과 연관되기도 한다.
해남군 전역에 대한 성지에 대한 조사는 1986년 처음 이루어졌다. 『해남군의 문화유적』[목포대학교박물관]에 읍성지, 영진성지, 산성지로 나누어 정리를 하였다. 해남읍성지, 우수영성지, 달량진성지, 이진진성지, 어란포진성지, 금강산성지, 옥녀봉 토성지, 옥산고성지, 흑산고성지, 신월리 성지, 고다산성지, 백방산성지, 읍호리 성지, 일평리 성지, 주성산성지, 진산고성지, 금성산성지, 죽산성지, 산막리 성지, 맹진리 성지, 원문리 성지 등 21개소를 조사하였다. 2002년 조사에서는 27개소를 조사하였다.『문화유적 분포지도-해남군』[목포대학교박물관]에 현산고성지, 거칠마토성지, 수청봉 토성지, 진터산성지, 우항리 성지, 일성산성지 따위가 추가로 조사되었다.
[해남군의 읍성]
읍성은 행정 성격이 강하다. 해남군에는 현재의 해남읍 성내리 일원에 있는 해남읍성을 포함하여 몇 개소의 고현이 있었고 그곳에는 치소성이 있었다. 해남현은 백제 때 새금현(塞琴縣), 통일신라 때 침명현(浸溟縣)[일명 투빈(投濱)]이라 하다가 고려 때 해남현이 되었다. 현산면 고현리에 치소가 있었다. 일평리 성지, 일명 죽금성을 치소성으로 보고 있다. 죽금성에서 1412년(태종 12)에 옥산현지로 옮기는데 바로 삼산면 상가리 계동마을 일원이다. 옥산고성지, 일명 계동토성을 치소성으로 보고 있다. 1437년(세종 19)에 현재의 해남읍 성내리 일원으로 옮긴다. 고려 이후 조선 초기의 해남현 치소성은 현산면 일평리 성지[일명 죽금성], 삼산리 옥산고성지[일명 계동 토성], 해남읍 성내리 해남읍성이다.
죽산현은 백제 때 고서이현(古西伊縣), 통일신라 때 고안현(固安縣)[일명 同安]이라 하다가 고려 때 죽산현이 되었다. 마산면 장촌리의 죽산성지가 죽산현 치소성이다. 죽산현은 1409년(태종 9) 해남에 합해지고 진도와 합하여 해진군이 된다. 황원현은 백제 때 황술현(黃述縣), 통일신라 때 황원현이 되는데, 문내면 고당리에 치소가 있었다. 진산현(珍山縣)과 송양현(松陽縣)은 군현 편제 기록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고려시대에 해남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산현은 산이면 진산고성이 치소로 보인다. 향이나 부곡이 현으로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냉천(冷泉)부곡은 옥천현(玉泉縣), 사라향(紗羅鄕)은 옥산현(玉山縣)이 된다. 옥산현 치소성은 해남읍 남연리와 삼산면 창리에 걸쳐 있는 옥녀봉 성지로 보고 있다. 옥산현터에 1412년부터 1437년까지 해남현 치소가 있었다.
[해남군의 성곽]
군사 시설인 영진보는 성곽이 가장 중요한 시설이다. 지방의 군제는 육군은 병영, 수군은 수영이 상위의 기구이다. 해남은 전라병영과 전라수영의 관할을 받았다. 특히 전라수영은 1440년(세종 22) 황원곶, 현재의 문내면 동외리 일원에 자리를 잡고 1479년(성종 10) 전라우수영이 되면서 조선 수군의 최대 전략 지역이 된다. 이어 성을 쌓고 관아를 대대적으로 정비한다. 원문리 성지는 우수영성 입로의 가는 목에 쌓은 성이며 원문성(轅門城)으로는 전국적으로 희소성 있는 유적이다. 수영 예하로 진보가 있는데 해남에는 어란진, 달량진, 이진진이 있었다. 어란진은 1434~1530년 사이에 송지로 이진하고 진성은 1690~1765년 사이에 축조된다. 이진진은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이후에 설치되었고 1588년(선조 21)에 진을 세우고 1627년(인조 5)에 만호진으로 승격되었는데 이 무렵 진성을 쌓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량진성은 1555년 을묘왜변의 전장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해남군의 산성]
해남군에는 20여 개소의 산성이 있다. 산성은 산세를 따라서 산에 쌓은 성을 말한다. 목책(木柵)·토루(土壘)·석축(石築)을 포함하여 산의 정상부나 사면을 이용해 적으로 하여금 많은 힘을 기울여 공격하게 하고, 아군이 적을 내려다보며 방어하려는 의도에서 축조된 것의 총칭이다. 해남 지역의 산성은 테뫼식과 포곡식이 함께 나타난다. 마산면 산막리 산성, 죽산성지, 북일면 신월리 성수동 성마산 성지, 신월리 거칠마토성지, 용일리 수청봉 토성지 등은 고대산성으로 보인다. 해남 지역에 있는 대형 고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남읍 금강산성지나 산이면 금호리 금성산 성지 등은 고려시대 입보처로서 삼별초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산면 구시리의 현산고성지는 고려시대의 성터에 조선 후기에 고산 윤선도가 금쇄동 별서를 조성하기도 하였다.
[특징과 의의]
해남군지역에는 27개소 성지가 조사되었다. 행정 기능을 겸한 읍성[치소성], 군사 목적의 영진성, 지형 특징을 반영한 산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읍성은 해남읍성이 대표적이지만, 현재의 해남읍 성내리에 자리 잡기 전에 2회나 옮겼고 치소성이 확인된다. 고려시대의 죽산현, 진산현, 옥천현, 옥산현의 치소성도 확인된다. 영진성은 전라수영-전라우수영으로 이어지는 전라우수영성이 대표적이다. 수영 예하에 만호진이 설치되고 진성이 축조되는데, 어란진, 이진진, 달량진이 만호진으로 설치되었고 진성이 수축되어 해안 방어를 하고 임진왜란기에는 명량대첩의 전진기지가 된다. 산성은 20여 개소로 고대 고분과 관련성이 있거나, 고려시대 입보처이거나, 삼별초와 관련이 있다. 마장으로 전하는 성터는 장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산 고성지의 경우, 고산 윤선도가 금쇄동별서를 조영하여 해남의 인문 활동의 중심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