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명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358
한자 浸溟縣
영어공식명칭 Chimmyeong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신동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침명현 제정
개정 시기/일시 940년연표보기 - 침명현에서 해남현으로 행정구역명 개정
관할 지역 침명현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지도보기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일원을 주축으로 하는 통일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개설]

통일신라 9주 가운데 무주[무진주, 지금의 광주광역시] 관할의 군현 수는 15군과 43현이었다. 당시 침명현(浸溟縣)양무군(陽武郡)과 영속관계에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침명현은 백제의 새금현(塞琴縣)이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에 개칭된 것이다. 주군현 간의 영속체제를 강화하면서 행정구역명이 바뀌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양무군조에 따르며 “침명현은 원래 백제의 새금현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지금의 해남현(海南縣)이다.”라고 하였다. 『고려사지리지(高麗史地理志)』에 따르면 “본래 백제의 새금현으로 신라 경덕왕 때 이름을 침명(浸溟)[투빈(投濱)이라고도 함]으로 고쳐 양무군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에 들어 지금 이름으로 바꾸고 내속시켰다.”라고 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해남현은 본래 백제의 색금현(塞琴縣)이었는데, 신라에서 침명현으로 고쳐서 양무군의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에서 해남(海南)으로 고쳐서 영암(靈巖)의 임내(任內)로 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내용]

침명현은 현재 현산면 일원이었다. 학자에 따라서는 해남읍을 비롯하여 삼산면과 현산면·화산면이 자리한 고천암호삼산천 유역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또 치소는 현산면 고현리 현산고성을 비롯하여 일평리산성, 읍호리 고다산성, 초호리 백방산성 등에 자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변천]

해남지역은 삼국이 정립되는 시기까지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4세기 근초고왕 무렵 백제에 의해 일시적으로 복속되기는 했으나 다시금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였다. 해남이 백제의 직접적인 지배에 들어간 것은 6세기 성왕대 담로제 실시 시기와 5방(方) 1군제(郡制) 사이인 것으로 보인다. 백제 때에 새금현이었다가 통일신라 때에 침명현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양무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에 이르러 해남현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영암군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황원군(黃原郡)·죽산현(竹山縣)과 통합되어 해남현이 되었다. 1409년(태종 9) 진도군과 합하여 해진군(海珍郡)이 되었으며, 1437년(세종 19)에 이르러 다시 해남군과 진도군으로 분리되었다. 이후 주변의 향·소·부곡을 병합하거나 이속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치소는 현산면 고현에서 해진군 설치 이후 삼산면 계동으로 이동하였다가, 해남군으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해남읍으로 이전하였다. 이때 해남읍성이 축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해남 지역 행정구역 연원과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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