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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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縡濚 |
영어음역 | Gim Jaeyeong |
이칭/별칭 | 김호(金浩),김성일(金聖一),김해함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484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양판석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7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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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3년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5월 11일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484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조선의열단 단원|상하이 청년동맹회 회원 |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재영(金縡濚)은 1892년 7월 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484번지에서 태어났다. 1920년경부터 1935년경까지 활동하는 동안 일본군에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 김호(金浩), 김성일(金聖一), 김해함 등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국내에서의 항일 투쟁이 여의치 않게 되자 1923년 중국 상하이로 가서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4년 4월 상하이에서 윤자영(尹滋英) 등 동지 60여 명과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를 결성하고 세력을 넓혀 활동하였다. 1925년 김원봉(金元鳳)과 의열단을 대표해서 독립운동가들을 후원했으며, 6월 5일 학생 연합회에 후원을 약속하고 그들로부터 받은 반일 내용의 전단지를 상하이 일대에 배부하였다.
1928년 상하이에서 김원봉과 약화된 의열단의 세력 강화를 위해 활동하다 검거되었고, 1930년 5월 11일 3년간의 재류 금지 처분을 받고 송환되던 중 상하이에서 탈주하였다. 1934년 광동성(廣東省) 지역을 중심으로 반일 투쟁을 전개했으며, 그 후에도 남서쪽으로 피난가면서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화개면의 호적이 6·25 전쟁 시기에 소실되어 불확실하나, 후손들은 중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