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양명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791
한자 揚明社
이칭/별칭 협률사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안길 12[황금동 12-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최일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09년연표보기 - 양명사 설립
성격 극장|공연장

[정의]

1909년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설립되었던 극장.

[개설]

양명사(揚明社)는 1909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세워진 창극을 공연하던 근대적 의미의 상설 극장으로 김인수, 정인준 등이 설립하였다. 극장주는 서울 출신의 이응일이었는데, 당시 징세청부인(徵稅請負人)으로 전라남도 광주에 왔다가 정착하였다. 이응일은 당시 유행하던 창극을 바탕으로 흥행하던 업종에 손을 댄 것이 양명사를 세우게 된 배경이었다고 한다. 서울의 협률사(協律社)와 비슷한 것이라고 하여 협률사로도 불렸다고 한다.

200여 평[약 662㎡] 규모의 가설 건축물로 전라남도에서 이름난 명기, 명창, 광대들을 무등산증심사, 약사암 등을 전전하면서 연습한 끝에 「춘향전」, 「심청천」, 「흥보전」, 「삼국지」 4편을 창과 함께 극화하여 공연하였다. 창극 무대를 통해 얻은 관람료 수입에 의존하였으며, 관람객은 많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간 양반이나 한량들이 사랑방에서 광대, 기생들을 불러다가 들었던 판소리를 창극 무대를 통해 대중들이 직접 보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치]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안길 12[황금동 12-2]에 있는 롯데시네마 충장로점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변천]

설립 5년 후 폐쇄되었다고 하는데, 대략 1914년에서 1915년경의 어느 시점으로 추정된다.

[형태]

가설 건축물로 장내는 높고 낮은 좌석을 만들어 가마니나 돗자리를 깔았다. 바닥은 앉도록 되었고 맨 앞쪽 무대 밑 낮은 자리는 하등석, 뒤쪽 높은 자리는 상등석이었다고 한다. 박동실의 회고담에 의하면, 당시 양명사는 지붕을 이엉[풀잎, 억새 등으로 엮은 지붕]으로 얹고 2층에는 발코니 형태의 좌석을 둔 구조였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근대 개항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창극 무대이다. 상설 극장인 양명사에서 창극을 대중에게 직접 공연함으로써 판소리와 창극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오랫동안 운영되지는 못했지만 조선인이 세운 광주 지역 최초의 극장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3.16 내용변경 [변천] 설립 후→설립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