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7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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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江洞立岩-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용강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혜정 |
현 소재지 | 용강동 입암마을 선돌 - 광주광역시 북구 용강동 632-11 옛 입암마을 입구 논 가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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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속 신앙 유적|선돌 |
관련 인물 | 김덕령 장군 누이 |
크기(높이,둘레) | 180㎝[높이]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용강동에 있었던 입암마을에서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선돌.
[개설]
입암마을에는 들판 한가운데 한 길 반 정도[약 2.6~3.2m] 되는 선바위가 있는데, 이 때문에 입암이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 입암마을에는 동쪽에 섶나무가 많은 섶바탕이 있고, 남쪽의 들은 곱은골[또는 정자골]이라고 부르며, 서쪽 비암 아래에는 한방쟁이라고 부르는 들판이 있다.
입암마을 입구의 논 가운데에는 선돌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金德齡)[1568~1596] 장군의 누이가 큰 돌덩이를 치마폭에 싸가지고 가다가 입암마을에 1기,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신촌마을에 1기,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화암마을에 1기를 떨어뜨렸다고 한다.
[위치]
용강동 입암마을 선돌은 옛 용강마을에서 입암마을로 진입하는 길옆의 논 가운데[광주광역시 북구 용강동 632-11]에 세워져 있다.
[형태]
선돌의 크기는 높이 180㎝이며, 아랫부분은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뾰족한 상협하관(上狹下寬)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의례]
용강동의 옛 원용강마을과 하신마을 등지에서는 당산제를 모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따라서 입암마을에서도 마을 당산제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선돌 또한 마을 신앙의 대상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인근 마을들의 당산제가 중단된 지 오래되어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다.
[의의와 평가]
용강동 입암마을 선돌은 논 안에 자리 잡고 있어 농사일에 방해가 되는 데도 불과하고 마을 사람들은 치우지 않고 그 자리에 세워두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용강동 입암마을 선돌이 지닌 과거 공동체 신앙의 의미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