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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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廛距離 |
이칭/별칭 | 땔감시장,문짝거리,문집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경양로 320[산수동 493-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성진 |
개관|개장 시기/일시 | 2007년 - 나무전거리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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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0년대 후반 - 나무전거리 사라짐 |
최초 설립지 | 나무전거리 - 광주광역시 동구 경양로 320[산수동 493-3] |
성격 | 판매 시설[특화거리] |
면적 | 350m 구간[동구 산수동 굴다리~계림동 로터리) |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산수동에서 계림동 로터리에 이르는 목재 판매 관련 거리.
[개설]
나무전거리는 계림로터리에서 산수동 굴다리 방향으로 가는 350m 구간을 말한다. 유래는 정확하지 않으나, 광주읍성(邑城)이 있던 시절에 땔감을 거래하던 시장이었다고 한다.
[건립 경위]
무등산 너머 청풍동이나 금곡마을 쪽에서 땔감을 지게에 지고 와서 나무전거리의 장에서 팔았다고 하며, 화순이나 광주시 외곽의 나무꾼들도 나무전거리에서 팔았다고 한다.
나무전거리 주변의 광주역, 극장가, 광주고등학교, 대인시장 등에 땔나무 장(場)이 있었던 이유는 동명동 일원에 고급 주택들이 많았고, 시내 중심가와 연결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광주시민들은 아직도 계림초등학교 옆 사거리를 산장 입구라고 부르는데, 예전 도시가 확장되기 전에 도심에서 무등산으로 넘어가는 초입이 바로 계림동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전거리는 무등산에서 땔감을 지고 와서 도시 사람들에게 팔기에 좋은 장소였을 것이다.
[변천]
1890년부터 가난한 나무꾼들이 무등산에서 땔감을 마련해 잣고개를 넘어와 나무전에 판매를 하면서 나무시장이 형성되었다. 1960년 이후 가정용 연료가 연탄으로 바뀌면서 나무시장은 사라지고, 그 대신 문짝거리와 문집이 형성되어 나무와의 인연이 이어졌다. 2010년에 중소기업청[중소벤처기업부]과 동구청의 상인회가 정부사업을 받아 간판 정비사업을 추진하였다.
[구성]
건축자재의 상권이 건축자재의 거리로 옮겨가면서 가구와 목재 등의 수요가 크게 줄었지만, 이후에 DIY[Do It Yourself,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스스로 만들수 있도록 한 상품] 인기로 인해 다시 목재를 찾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나무전거리에서는 폐건물이나 폐주택에서 뜯어낸 빈티지[vintage, 옛것으로 재구성해 사람들이 익숙함을 느끼게 하는 정서] 문짝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부엌가구나 창호, 알루미늄 창틀(sash) 등 다양한 건축자재들도 나무전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